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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May 12. 2023

울타리 밖 미성년 이민자들이 보내는 SOS

토리와 로키타(Tori et Lokita, 2022)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떤 울타리 안에서 태어나는가는 순전히 운이다.


금수저 자식으로, 강대국 시민으로, 빈민가 사생아로, 선천적 질병을 갖고 태어나는지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이런 건 로또 당첨처럼 행운에 맡겨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울타리는 운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토리와 로키타는 이 지구에서 가난한 땅으로 손꼽히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이런 운명을 극복해 보라고, 이 남매에게 사람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가혹한 충고일지도 모른다. 똘똘한 꼬마 소년 토리는 태어날 때 주술사 아이라는 미신에 따라 버려졌다. 소녀 로키타는 많은 동생을 거느린 가난한 집에서 장녀이다. 그녀는 엄마가 바라는 대로 낯선 땅 벨기에까지 와서 가족 생계를 이어갈 돈을 벌어야 한다. 누가 이 아이들에게 이런 힘겨운 짐을 짊어주었는가.



든든한 울타리가
없다면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우리에겐 안정감을 느낄 울타리가 필요하다. 갓난아기였을 땐 엄마가 감싸주는 포대기로 내 몸의 경계를 느낀다. 몸 전체를 꽁꽁 싸매고 토닥여줘야 비로소 아기는 편안해진다.


믿을만한 울타리에 둘러싸여 세상과 내 몸 사이 간격을 느끼는 건 기본적인 생존법이다. 동물이 낯선 곳에선 배설물로 영역 표시를 하는 것처럼 인간도 ‘안전’이라는 경계를 느껴야 한다. 또래와 어울릴 만한 나이가 되면 우린 놀이를 통해 경계 짓기 연습을 이어간다. 땅 위에서 친구와 내 영역을 구분해 보는 선 긋기, 꼬마가 들어갈 만한 아지트 만들기. 내 영역을 소유할 때 느끼는 충만감은 이런 놀이가 주는 특별한 재미이다. 성인으로 자라나 쫓겨날 위험이 없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할 때까지 누군가는 아이에게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현실에서 바깥과 나 사이 이런 경계를 안전하게 유지해 주는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토리와 로키타에겐 이런 행운이 없었다.



믿을 사람은
서로 밖엔 없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불법체류자로 사는 건 하루하루가 스릴러인가 보다. 게다가 그중 미성년자는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동물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가상이지만, 제작하게 된 배경은 실제다. 유럽으로 이주한 아프리카 미성년 난민 중 체류증을 얻지 못한 아이들은 마약 산업에 몸담다가 소리 없이 실종된다는 뉴스가 사실이란 게 섬뜩하다. 토리와 로키타, 소년 소녀는 마약 거래 현장에서 불법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들이 일하는 방법은 위험천만하다. 마약업자에게 스마트폰을 모두 맡기고 밤에 길거리와 클럽을 전전해야 한다. 오늘날 기본 생존 도구인 스마트폰을 빼앗긴 채 이들은 약자가 되어 거리를 헤맨다.


둘은 낯선 타지에서 의지할 데라곤 쉼터뿐이다. 토리는 보육원에 내쳐진 채 아동 학대 위기에 목숨이 위태로웠고, 이 사내아이를 위기에서 구해준 건 로키타였다. 그러나 토리만 벨기에 체류증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둘은 실제 남매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만을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다. 각종 함정 질문에 대비하며 로키타는 토리를 친동생이라고 속이려 하지만 이민 인터뷰는 만만치 않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로키타는 공황장애에 시달린다. 인터뷰를 망친 날이면 거리에서 이마로 벽을 치며 자해를 하기도 한다. 이 소녀에게 체류증을 받는다는 건 목숨을 건지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거리에선 밀입국 브로커에게 치욕적인 몸수색까지 당하며 빚독촉을 받고, 엄마는 장녀에게 전화로 생계비를 독촉하고, 마약업자는 원할 때마다 이 소녀를 성노리개 도구로 삼는 이 운명을 떨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어떤 땅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런 극단적인 감정은 이 지구에서 국적을 갖고 있는 대다수는 공감하기 힘들다. 그런데 아프리카 소녀 로키타의 불안 불안한 눈빛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든 논리를 뒤로 하고 어서 이 친구를 누가 구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저절로 생기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민자를 받는 문제는 어느 나라나 복잡한 논쟁거리다. 경계를 허물고 이종(異種)을 받아들이려면, 이미 안전한 터전에서 번영을 누리는 집단이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낯선 이들을 받아들이려면 구성원들 간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목숨을 건
히치하이킹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영화 분위기는 마치 사회 고발성 시사 프로그램처럼 비극으로 이어진다. 로키타는 결국 불법 체류증을 받기 위해 마약 제조 시설에 감금당한 채 몇 달간 노동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눈을 가린 채 차로 실려가 스마트폰 유심(USIM)을 압수당하고 마약 원료가 되는 식물을 기르는 역할이다.


똘똘이 스머프처럼 작지만 영민한 토리는 로키타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누나를 찾기 위해 꾀를 써서 결국 은신처를 찾아내고야 만다. 불법 마약 제조시설을 탈출한 후 둘은 목숨을 건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그러나 업자가 쏜 총에 사살된 로키타. 이 소녀는 생애 마지막까지 운이 없었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토리는 말한다. 체류증이 나왔다면 로키타는 가사 도우미 교육을 받으며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고.



약소국 아이들의
비애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토리와 로키타가 서로 아프리카 토착어가 아닌 불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이었다. 오래전 제국주의 시대에 벨기에는 아프리카 식민지를 갖고 있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했던 시절이 한바탕 지나갈 동안 약소국은 살아남지 못하면 힘도 정신도 강대국에게 점유당한다.


언어를 잃는다는 건 서서히 의식을 잠식당하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도 5천여 년 동안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고유한 언어를 지킨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가끔 영화 속 로키타가 혼자 아프리카 민요를 토착어로 읊조리는 모습은 슬퍼 보였다.


경계 밖에 내몰린 약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하는 이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5.12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dQOM88Nu-yVABAAYpsh6kw==?uid=743e351dfb3f41898a3018d22148c7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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