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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Jun 28. 2023

손짓, 발짓, 몸짓에 취하다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 1952)


비를 타며, 음악을 타며, 몸을 움직이며 노래 부르는 배우들을 보면 경외심이 든다. 사랑 이야기지만 몸이 가진 잠재력이 폭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배우들을 보다 보면 제약 없는 몸짓이 주는 아름다움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 몸집이 커져 성인이 될 때까지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경험을 우린 얼마나 자주 해 보았을까?



위대한 직업,
춤꾼


이미지 출처: IMDb.com


땅바닥 위에 배를 쓸며 도마뱀처럼 팔을 허우적대며 기어 다니다 드디어 처음 두 발로 이 지구 위에 우뚝 설 때 갓난아기는 스스로 몸을 일으킬 만큼 자신이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된다. 비록 아기일 때라 기억나진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 몸뚱이가 점점 커지고 무거워지면서 꼼짝 않고 일만 하는 인생을 살다 보면 움직인다는 건 힘든 과제로 바뀐다. 건강이라는 절박한 이유로 운동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뭘 하든 일단 팔, 다리를 신나게 힘껏 움직이면 몸과 정신을 가두었던 어떤 제약을 벗어나는 듯한 해방감이 내 안에서 솟아오른다. 덤으로 따라오는 뿌듯한 성취감, 아드레날린이 용솟음치는 활력. 이런 기운을 상상하면서도 막상 내가 자꾸자꾸 움직여 보려고 애쓰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댄서(dancer)란 그래서 위대하다. 자유자재로 내 몸 사지 끝까지 리듬에 맞춰 통제할 때 느끼는 쾌감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게 아니다. 몸이 이끄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온전히 맛보는 특별한 직업, 댄서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반응하는 감수성도 필요하지만 긴 연습을 인내할 만큼 장인정신도 필요하다. 기나긴 연습 후 마침내 무대에서 춤추는 자는 관객에게도 짜릿함을 전해준다. 자, 이제 춤꾼들의 이 위대한 움직임을 간접체험 해볼까.




CG는 없다


이미지 출처: IMDb.com



몸을 갖고 노는 쾌감을 이만큼 극대화해서 전달하는 작품이 또 있을까. 역사상 최고의 뮤지컬 영화라고 일컫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 초기. 이 시기에 영화관을 찾는다는 건 오늘날 발레나 무용을 보는 것처럼 고급 취미였다. 이 무렵 영화를 보는 건 마치 공연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이 작품은 영화 기술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시절 관객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사료 역할을 한다. 당시 영화관을 찾아오는 관객들은 화려한 정장 차림에 한껏 멋을 내고 좌석에 앉아 있다. 그렇다. 이 당시 영화를 본다는 건 특수효과나 사전 오디오 녹음 없이 실제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장면 사이에 합이 딱딱 맞으며 즐거움을 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고 듣는 시간이었나 보다.




기성품이 된
요즘 영화


이미지 출처: Unsplash의 Corina Rainer


이렇게 특별한 외출을 해서 특수효과로 가공하지 않은 춤과 노래, 연기를 날 것 그대로 감상한다는 건 오늘날엔 상상할 수도 없는 체험이다. 이젠 슬리퍼에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동네 어디든 가까이 있는 영화관에서 무료한 시간을 쉽게 때운다. 기술 발달에 따라 영화는 일종의 기성품이 되었다.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들이 공장에서 물건 찍어대듯 반복되며 3D 기법 도움까지 받아 철 따라 줄거리가 비슷한 영화들을 재탕한다. 마블 영화에서처럼 스크린에서 인간 한계를 넘는 힘을 발휘하는 캐릭터를 보아도 이제 관객은 그리 놀라지 않는다. 팝콘 무비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늘날 영화관에서 시간을 때우는 행위와 그 옛날 영화를 감상했던 경험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간이 갈수록 소중하다. 요즘 영화는 몸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인간의 잠재력을 만끽하기보다 기술로 승부를 거는 시대다. 점점 특수효과로 뒤덮인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몸의 제약을 실제로 뛰어넘는 모습보다는 CG 기술로 만들어낸 허상을 보는 건 아닐까.




행복을 느끼는 통로,


이미지 출처: IMDb.com


하지만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 통로는 결국 몸이다. 보고 싶은 걸 보고, 듣고 싶은 걸 보고, 만지고 싶은 걸 만지고, 먹고 싶은 걸 먹을 때 말이다. 내 몸을 만족시킬 때 우리는 일단 충만감을 느낀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심장박동이 뛰는 노래를 들을 때, 연인을 안으며 따스한 품을 느낄 때, 맛난 음식을 먹을 때 말이다. 하지만 기술이 몸의 한계를 대신하는 시대를 살면서 몸을 체험하는 능력은 오히려 퇴화하는 건 아닐까.


영화 속 배우들이 오랜 시간 연마한 이 모든 몸짓, 화려한 탭 댄스를 선보일 때 잘 보이지도 않는 발짓, 리듬을 정확히 느끼는 손짓. 빠른 춤과 더불어 노래까지 불러 젖히는 모습은 실로 경이롭다. 세월이 흘러도 때가 묻기는커녕 점점 유일하게 빛나는 아날로그 뮤지컬 고전, 한계를 넘는 인간의 몸짓을 보여주는 그 압도적 체험. 이 작품은 이 모든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야말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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