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07
나미비아 비자를 받는 게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좀 번거롭다. 막상 현지에서 도착 비자를 받아보면 아직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지 않은 사회에 첫 발을 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23년 7월 기준으로 총 3명의 노동력이 필요한 나미비아 도착 비자 발급 과정. 직접 겪어보니 새삼스레 신기했다.
비행기로 남아공에서 나미비아로 이동하면 착륙 전 승무원이 이 서류(사진 1. 나미비아 입/출국 신고서)를 승객들에게 나누어 준다. 착륙 전까지 기내에서 작성할 시간은 충분하니 미리 필기구와 숙소 주소를 준비해 두었다가 기내에서 이 서류에 적으면 된다. 크게 아래와 같은 항목이다.
• 간단한 인적사항
• 체류 예정인 숙박업소 주소
• 여행자가 여행 기간 동안 나미비아에서 지출하려는 대략적인 금액
(나미비아 출/입국 시 지출한 교통비 제외. 정말 대강 적으면 된다.)
• 본국(한국)에서 연락 가능한 지인 연락처 & 이름
위 서류 양식 뒷 면에는 상업 광고가 실려 있기에 따로 찍지 않았다. 종이 크기를 가늠해 보면 A4 서류보다 작은 A5 크기쯤 되어 보인다.
나미비아 수도인 빈트후크(Windhoek)에 위치한 <호세아 쿠타코 국제공항(영어: Windhoek Hosea Kutako International Airport)> 착륙 후 위와 같은 제2 터미널로 진입하면 입국 심사장이 있다. 이곳에서 아래와 같은 순서를 거쳐 10분 안에 손쉽게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 업로드해 놓은 나미비아 비자 신청 서류 양식(사진 2)이 지금도 여전히 필요하다. 이 양식은 도착 비자를 받는 사람들이 <사진 1>과 함께 추가 작성해야 하는 양식이다.
우선 입국 심사장 줄을 선다. 내 순서가 되자 직원에게 다가가 도착 비자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니 해당 직원이 비자 관련 부서에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이 부서 담당자는 카드 혹은 현금 결제 중 어떤 걸로 지불할 건지 내게 물어보았다. 카드 결제를 원한다고 하니 바로 결제를 진행해 주었다. 결제 후 영수증을 받으면 된다.
그 직원이 매우 두꺼운 장부를 가져와 펼치더니 내가 비자 비용을 지불한 내역을 표 양식에 적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항이라면 컴퓨터 정도는 있을 텐데.. 엑셀로 처리하면 계산이 맞을 텐데 저렇게 결제 내역을 종이 장부로 남기면 저걸 정리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문득 궁금해졌다. 저 장부를 적는 건 그냥 형식적으로 누가 언제 얼마를 지불했는지 기록을 남기는 용도인지, 아니면 저걸 일정 기간 후 다시 재집계를 해야 하는지 말이다. 직원들이 비자 비용이라는 공금을 횡령하지 않는지 파악하려면 수금액을 파악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자 비용을 지불한 다음, 원래 처음 만났던 입국심사장 직원에게 이 도착 비자비 결제 영수증과 도착비자 신청 양식(사진 2)을 함께 들고 가면 된다. 그럼 <사진 2>에서 담당자만 적을 수 있는 우측 상단 부분에 나와 관련한 사항을 수기로 작성해 준다. 그다음 입국 심사장에 있는 또 다른 직원을 찾아가라고 내게 말해 준다.
세 번째로 만난 이 직원은 마지막으로 비자 도장을 쾅쾅 찍어준다. 이제 도착비자 발급이 끝났다. 한국에서부터 잡다한 서류 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날렸던 나미비아 비자 발급이 끝난 것이다. 아마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 중이거나 다녀온 사람들은 이 개운한 기분을 알 수 있을 거다.
일단 골치 아팠던 나미비아 비자를 발급받자 다시금 궁금해졌다. 이 모든 직원들이 비자 발급 과정에 꼭 필요한 인력인 걸까?
마지막으로 만난 이 직원은 그저 비자 도장을 찍어주는 일만 하는 걸까? 그렇다면 입국 심사장에 앉아 있는 직원이 한꺼번에 이 일을 해 줘도 될 텐데. 왜 이렇게 업무를 세세하게 분담한 걸까..?
이후 세관 신고 코너를 지난다. 이 나라에선 신기하게 이 단계에서도 모든 짐을 검색대 안에 한 번 통과시키라고 한다.
과거에는 1천 달러 이상 잔고가 남아있는 은행 계좌 잔고 증명서, 나미비아를 출국하는 교통편 예약 증명 서류, 나미비아 체류 시 묵을 숙박 업체 예약 서류, 여행자보험 가입 서류까지 첨부자료로 모두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을 온라인상에서 많이 보았기에 그런 서류들을 모두 챙겨 갔지만 허무하게도 그런 게 필요 없었다.
순서 (1) 담당자는 저런 서류들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매우 귀찮다는 표정으로 결제 방법만을 내게 물어보았을 뿐이다. 순서 (2) 담당자는 결제 영수증을 보여주자 마찬가지로 귀찮다는 표정으로 본인이 작성할 사항을 빨리 작성해 주었고, 순서 (3) 담당자는 초고속으로 비자 도장을 꽝꽝 찍어 주었다. 결국 아래 3가지를 제출하면 끝이었다.
신용카드 (혹은 현금 1,080 NAD)
(사진 1) 기내에서 나눠준 입/출국 신고서
(사진 2) 나미비아 비자 신청 서류
굳이 순서를 (1) ~ (3) 단계로 구분해서 그렇지 이 모든 과정은 체감상 5분쯤 걸렸다 싶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나미비아 비자 신청 서류는 미리 수기로 작성해서 준비했었고, 아침 이른 시간에 도착한 항공편이라 그런지 입국자가 적어서 기다리는 줄도 없어서였다.
한국인 잣대로 살펴본다면 이런 비자 발급 과정은 정말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내국인 대상으로 지문 인식을 통해 자동 출입국 등록까지 가능한 국가 아닌가. 하지만 나미비아 비자 발급 시 컴퓨터 등 기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다면 3명의 일자리가 갑자기 줄어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실업자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이렇게 직업 기회를 가지는 게 나미비아에서는 아직 더 적절한 걸까?
기계가 인간 직업을 대신하는 속도가 가파를수록 잉여 인력으로 남은 사람들이 가치 있게 일할 수 있는 직업 망도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에서는 인공 지능이나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면서 인간 노동이 무가치해지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Chat GPT처럼 마법 같은 문제해결 도구까지 등장하며 인간이 종사하는 직업 전반은 빠르게 무가치해질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런 위기에 맞서 싸우려는 시도도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단순 노동력이 필요한 산업뿐만 아니라 창조력이 필요한 업종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방송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할리우드에서는 배우와 방송인으로 구성된 노동조합(SAG-AFTRA)에서는 인공지능이 자신들을 대체하지 않도록 보장받고자 역사적인 장기 파업을 했다. 어쩌면 인간 노동력이 기계에 반기를 드는 이런 행동이 타 산업 분야에서도 점점 더 거대해질지 모른다.
나미비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 있는 여러 나라들을 거치며 아직도 내 눈엔 주먹구구식으로 보이는 노동 방식이 이곳에서는 합리적인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작은 순간이지만 이 낯선 곳에서 인간 노동이 가진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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