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08
공항에서 도착비자 발급을 마치고 나니 공항 로비에 내 영문 이름을 들고 누가 서 있다. 공항엔 나 말곤 관광객들이 거의 사라졌는데 아마 저 이름은 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당신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 남자는 내게 악수를 청하면서 내가 예약한 카멜레온 백페커스 호스텔에서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 기억엔 픽업을 공항까지 나와서 해 준다는 얘기가 따로 숙소 예약 확정 메일에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공항 픽업을 신청했는지 기억이 사실 안 났다. 그래서 내 이름표가 신기하면서도 반가웠다. 사람을 이렇게 믿어도 되나. 저 자가 들고 있는 게 내 이름이니까 당연히 믿을 수밖에.
약 5만 원 선에서 1인실을 예약했더니 공항-숙소까지 차로 40여분 걸리는 거리를 픽업까지 나와 주다니. 아침부터 지갑 잃어버리기 소동 때문에 녹초가 되었던 터라 너무 반가웠다. 그가 운전해 온 봉고차에 올라타서 시내에 진입하기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나미비아 초원을 구경했다.
포장도로라는 걸 못 믿을 만큼 강한 진동을 계속 견디느라 차 안에서 각도를 잡고 찍는 건 불가능했다. 사진을 못 찍는 똥손이라 이렇게 밖에 건지질 못했다.
그런데 숙소인 카멜레온 백패커스에 도착한 후 먹거리와 점심 해결을 위해 밖으로 나가려 하니 직원이 붙잡는다. 아이패드나 여권 등 귀중품이 다 있는 휴대용 배낭을 숙소에 놔두고 가라는 거였다.
이 때는 체크인을 오전 일찍 마친 후 아직 숙소 청소가 안 되어서 방 배정도 못 받은 시간대였다. 즉, 방 열쇠가 없으니 귀중품을 맡기려면 오늘 처음 본 저 직원한테 맡겨야 한다는 소리인데 자연히 꺼려졌다.
바깥이 위험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니 갖고 나가지 말라고 다시 당부하는 거였다.
이전에 다른 여행기에서도 빈트후크에서 혼자 밖에 관광객이 짐을 들고 다니지 말라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화창하고 눈이 부시게 밝은 날씨에, 아직 낮 12시도 안 되었는데. 게다가 수도 중심가에 있는 이 숙소 근처가 위험하다니.
그런데 밖을 나서자마자 알게 되었다. 숙소 정문은 벽을 높이 올리고 잠금장치를 해 놓았으며 경비원이 24시간 상주해서 지키고 있다. 이 건물뿐만 아니라 시내 다른 건물들도 모두들 높게 담장 벽을 올렸다. 이런 풍경을 보며 대강 치안 수준이 짐작되자 길을 걸을 땐 핸드폰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지갑 때문에 불룩해진 바지 앞섬을 누르면서 티 안 나게 걸으려고 애를 썼다.
아직은 방 열쇠가 없으니 미리 경비원에게 나갔다가 오겠다고 말해놓은 후 거리를 나서자마자 내가 택시를 찾냐고 물어보는 이뿐만 아니라 사방에 서 있는 이들의 관찰 대상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일본어, 중국어 인사말을 하며 다가오는 사람들, 길을 막아서며 어디 가냐고,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 사람들. 대체로 남자들이 이렇게 길을 막으려 하거나 질문을 건넸다.
사실 나미비아뿐만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을 갈 때도 이런 삐끼들은 관광객들을 둘러쌌다. 여행 초반에는 아직 현지인들이 이렇게 접근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에 맷집 좋아 보이는 남자들이 길가에서 나를 주시하면 긴장을 많이 했다. 본능적으로 길을 건널 땐 몸집이 큰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면 걸음걸이를 재촉하며 빨리 목표 지점인 대형 마트로 들어가려 했다. 그리고 과일, 생수 등 간단한 먹거리를 샀는데..
신기한 건 계산대에서 결제를 마치고 난 후 미리 준비해 간 시장 주머니에 구입한 물건들을 넣으려 하니 직원이 제지하며 원래대로 케리어에 다시 넣으라는 거다. 당황해서 알겠다고 말하고 이동 캐리어에 짐을 실은 후 마트 출구 쪽으로 향하니 경비원이 내가 수령한 영수증과 캐리어에 있는 물품들을 다시 대조하기 시작했다.
‘아,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을 잡아내려고 하는가 보다.’
생각해 보니 마트 코너 곳곳에서도 무뚝뚝한 표정을 한 경비원들을 여럿 보았다.
물건을 계산한 품목을 재검사할 때 실내에서도 한 무리의 현지인들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바로 물건을 담았던 분홍색 다이소 천 바구니 때문이었다.
"이거 어디에서 산 거예요? 되게 튼튼해 보인다. 갖고 싶어요..!"
갖고 싶다는 말, 설마 자기한테 달라는 건 아니겠지..? 다시 실내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자 또다시 당황스러웠다. 다이소에서 천 원에 샀던 접이식 시장 가방을 두고 이들이 눈독을 들이는 거다. 손바닥 1/3만 한 천 가방을 확 펼치며 무거운 음료수 병 등을 다 담아서 번쩍 드니 저런 말들을 한꺼번에 들으며 주변 현지인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왜 이 백패커스 숙소에 머무는 유럽인들이 점심도 여기서, 저녁도 여기서 해결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 숙소는 나미비아 생활 수준으로 치면 마치 작은 리조트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쾌적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호화로운 시설이란 뜻은 아니다. 청소가 위생적으로 잘 되어 있고, 시설 전반이 잘 관리되는 느낌이었다. 이 숙소에서 주관하는 여행 상품까지 예약을 했으니 당연히 픽업이 용이한 이곳에서 묶으려고 결심했었고, 이렇게 모두 나미비아 체류 일정에 맞추려다 보니 남아공 케이프타운 관광은 그냥 포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빈트후크 시내 사진은 이 글 표지로 실린 메인 사진 한 장이 다다. 숙소 이동 차량 안에서 시내를 관통할 때 찍은 게 다행이다. 참고로 매일 9시에는 이 숙소에서 주관하는 빈트후크 도보 관광 코스도 있다. 내일 사막 투어를 위해 이곳을 떠나야 하니 아쉬울 뿐이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tS9D63IhLA0EqzW2619uAA==?uid=743e351dfb3f41898a3018d22148c7f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