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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벼운 고래 Nov 08. 2019

몽골, 첫 번째 이야기

차강 소브라가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새벽에 도착해 늦게 잠이 들었지만 몽골의 아침은 아주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주인아주머니 께서 놓고 가신 식빵과 하얀 계란, 잼을 놓고 아침식사를 챙겨 먹고는 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어젯밤 젊은 친구들이 많은 이유를 알고 보니 바로 앞에 나이트클럽이 있었다. 한국 같은 경우 나이트클럽이나 술집 근처에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더럽혀져 있는 것을 많이 봤지만 몽골은 건물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인지 거리는 아주 깨끗했다.


어젯밤 보지 못했던 근처를 둘러보니 우리나라의 이마트가 아주 크게 들어와 있었다. 몽골에서 가장 큰 마트라고 했다. 몽골에서 이마트를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그렇게 신기하진 않았다.


짧게 주위를 둘러보고 난 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니 우리를 안내해줄 가이드 샤가 기다리고 있었다. 키는 작지만 매우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는 인상 좋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타샤가 주는 USIM을 받아 갈아 끼운 뒤 휴대폰을 쓸 수 있었다. 모두들 전날 밤 몽골의 밤을 자신의 SNS에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갈아 끼우자마자 정신없이 휴대폰에 빠져들었다. 샤가 아래에서 엘리베이터를 끌고 와 내려가니 기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몽골 여행은 보통 가이드 한 명과 기사 한 명이 붙는다. 기사님은 무표정으로 서있다가 우리가 다가오니 아주 푸근하게 웃으며 우리의 짐을 차에 실어주었다. 이름은 푸제라고 한다. 여행사를 예약할 때 차량을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스타렉스와 몽골의 푸르공이 있었다. 편한 건 당연 스타렉스지만 푸르공의 감성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더라도 푸르공을 타기로 결정했다.


푸르공은  원래 구 소련의 군사용 차량이었지만 민간용으로 개조된 올드 카이다. 몽골의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차량이라고 한다. 보통 오프로드에서 일반 자동차를 탈 경우 6개월이 안돼 고장이 난다고 한다. 군용 차량이니 얼마나 튼튼할까 그렇지만 얼마나 불편할까 생각이 드는 차량이었다. 그래도 사진만 이쁘게 나오면 장땡인 20대 아닌가.


 

여행 내내 함께 했던 푸르공



모든 짐을 싣고 차량에 탑승하니 생각보다 넓고 편했다. 운전석은 굉장히 독특했다. 기다란 스틱이 3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두 개의 용도를 모르겠다. 터프하게 기어를 바꾸는 푸제의 손놀림으로 시내를 조금 벗어나 환전과 장을 보기 위해 어느 깔끔한 건물로 들어갔다. 환전은 대략 100달러를 했는데 26만 투그릭으로 환전이 된다. 몽골은 우리나라의 딱 절반 정도의 환율과 물가로 생각보다 안정되어있었다. 그중 11만 투그릭을 공금으로 내고 장을 보기 시작했다.


마트에 들어서 제일 눈에 띄었던 것은 과일들이었다. 어찌나 싱싱하던지 아주 새빨간 사과가 광을 내며 탑을 쌓고 있었다. 몽골의 과일은 사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과일른 윤기가 흐르고 싱싱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건 귤인데 귤에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씨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돼지고기도 팔았지만 대부분이 양고기나 염소고기였기 때문에 양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우리는 오랜 길을 떠나기 위해 간식과 야식으로 먹을 재료와 과자를 샀다. 그중 몽골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걸 고려해 핫소스를 사기로 했다. 아주 탁월한 생각이었다.



환전과 장을 모두 마치고 본격적으로 7시간이라는 긴 여행길을 떠났다. 복잡한 도로를 지나 광활한 한 줄짜리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딘가 익숙한 길이었다. 주인공이 자유롭게 떠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황토색 땅에 한줄로 길게 늘어서 있는 포장도로가 있고 선글라스와 오픈카를 타고 달릴 것만 같은 길이었다.



푸제의 운전실력은 그 길에서 빛을 발휘했다. 평평할 것만 같은 도로에 움푹 파인 곳도 있고 여기저기 울퉁불퉁튀어 나와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운전을 왔다 갔다 하는 거지?" 했는데 알고 보니 빠르게 달리며 그사이 사이를 아주 여유롭게 헤치고 달리는 것이었다. 맨 앞좌석에 있어 푸제처럼 길을 쳐다 보았지만 길에 파인 부분이나 갈라지고 울퉁불퉁한 곳은 바로앞까지 와야 볼 수 있었다.



사실 달리는 7시간 동안은 달리 할 말이 없다. 그 시간 동안 간혹 길을 막는 양이나 소 혹은 낙타가 있다는 거 말고는 계속 같은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주유소와 음식점이다. 푸르공은 자주자주 기름을 채워줘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름통이 양쪽에 달려있어 한쪽을 채우고 다시 차를 돌려 반대쪽으로 받기도 했다. 기름을 넣는 중간중간 차량을 이리저리 흔드는데 그래야 기름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스틱이 3개인 푸르공


기름을 채우고 1시간 정도 달려 점심을 먹기 위해 음식점에 도착했다. 음식점도 영화같이 길고 긴 도로에 딱하나 있는 1층짜리 건물이었다. 사진을 이리저리 찍고 나니 음식점에 들어와 있을 땐 이미 음식들이 나온 뒤였다. 음식에는 초이왕이라는 볶음 국수와 양고기가 듬뿍 들어간 음식이다. 첫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덜 익은 듯이 퍽퍽한 밀가루 면과 향이 강한 양고기는 가리지 않고 먹는 나도 멈칫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밥과 함께 염소고기가 들어간 몽골식 제육덮밥이 있었다. 내가 먹어 본 몽골 음식 중 세 번째로 먹을만했다. 음식의 이름을 들었지만 들어도 모르겠다. 먹기 힘들어하던 나는 장 볼 때 사온 핫소스와 함께 배를 겨우겨우 채울 수 있었다.


몽골의 거의 모든 음식에는 고기가 들어간다. 양, 염소, 말, 소, 낙타 고기가 주식인데 지역마다 주로 키우는 가축이 다르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음식에 들어가는 고기도 다르다고 한다. 우리가 힘겹게 먹는 동안 옆에서 샤와 푸제는 고기국수 같은걸 먹고 있었다. 이상하게 한국음식과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맛있어 보여 다음엔 고기국수를 먹기로 했다.



배를 채운 우리는 다시 푸르 공을 타고 길고 긴 도로를 달렸다. 3시간 정도 달렸을까? 푸제는 포장된 도로에서 옆길로 빠져들었다. "아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덜컹덜컹 오프로드를 달리기 시작했다. 걱정과 달리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신나 있었다. 오히려 포장도로보다 오프로드가 우리의 졸린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들었다. 여러 차량이 지나간듯한 바퀴 자국이 굉장히 많았다. 얼마나 많은 차들이 오고 갔는지 그 길이 내비게이션이 된 듯했다. 도로에는 야생 동물뼈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달리니 첫 여행지인 차강 소브라가가 보였다. 평지이다 보니 가깝게 보였는데도 30분을 더 달려야 했다.


오프로드를 달리는 베테랑 기사 푸제


차강 소브라가는 이름 그대로 하얀 불탑이라고 불린다. 원시시대 바다에 있던 진흙이 세월이 지나 절벽으로 굳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차강 소브라가는 아시아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첫인상은 붉은색을 띠는 흙을 제외하고는 별다를 게 없었지만 동쪽으로 갈수록 수많은 절벽들이 마치 아름다운 건물처럼 줄 서 있었다. 차강소브라가는 장마 때는 수많은 절벽에 물이 흘러 큰 폭포처럼 보인다고 한다. 9월이라 그런지 푸른 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몽골은 우리나라보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붉은색이 돋보여 보였다. 마치 화성에 온듯한 기분이었다. 절벽 사이에는 내려가는 가파른 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절벽들이 보낸 세월이 보였다.



그곳에서 일행들과 돌아가며 사진을 찍은 뒤 올라오니 마침 해질 녘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도 "이쁘다" "좋다"라는 간단한 감탄사도 없이 바라만 보았다. 해가 지면 질수록 하늘색은 변하고 있었다.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푸른색에서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하늘 풍경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몽골의 전통 하우스 게르로 이동했다. 게르의 첫날밤은 잊을 수 없었다. 커다란 게르에 들어서면 6개의 침대가 붙어있다. 한 명씩 침대를 맡고 짐을 풀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짐을 풀고 나서는 따샤가 준비한 삼겹살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몽골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허겁지겁 먹었다. 벌써부터 한국음식이 그리워지긴 했었나 보다.


그리고는 아침에 산 맥주와 야식을 준비했다.샤에게 요리 도구를 빌려 파스타를 만들고 노래를 받아온 일행이 신청곡을 받아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맥주를 한잔 두 잔 마시며 노래를 틀고 서로 어떤 일을 하고 나이는 몇 살이고 하다 보니 어느새 친해져 있었다. 맛있는 맥주와 음식,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12시 조금 넘어서 였을까 모두가 몽골에 온 목적이 신기하게도 같았다. 몽골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알고 나서 모두들 밖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의 산골짜기 별과는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몽골의 막힘없는 초원은 멀리있는 별부터 그 사이를 가로지른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누워서 쳐다보다 눈으로만 담기 아까워서였는지 모두들 카메라를 들고 별을 찍으려 노력했다. 수십 번의 노력 끝에 별과 은하수를 담았지만 돌아와서 보니 초점이 나가 흐릿한 사진이 찍혀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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