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by 리도란

AI로 인해 위협받는 직업군은 단순 노동 직업부터, 진입하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전문가 집단까지 다양하다. 특히 전문가 집단이 위협받는 이유는 단순 노동과는 다른 맥락에 있는데, 이는 곧 전문성의 정의 자체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위적인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전문가라고 하는가? 법전을 달달 외우면 누구나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있을까? 전공서적을 많이 읽고 유명한 논문을 깊이 공부하면 누구나 교수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인증받은 전문가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지식의 양과 그것을 습득하는 과정이 전문가로 입문하는 요건은 충족할 수 있어도, 전문가의 수준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를 구성하고 정의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책에서는 전문가만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경험, 지식을 ‘암묵지’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에 비해 매우 잘한다. 분명히 비슷하게 배우고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남들과 확연히 구분될 만큼 뛰어나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가진 전문성을 글이나 말로 설명하고 교육해도 사람들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다. 심지어 그 사람이 남긴 업적을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언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또 차별성을 가지는 지식이나 노하우를 우리는 암묵지라고 한다.


암묵지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을 쉽게 전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언어 자체가 충분한 명료성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전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정보의 왜곡이나 손실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러한 전문성은 직접 보고, 따라 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함양된다. 예술이나 특정 전문가 집단에서 아직도 도제식 교육을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과정을 가까이서 직접 따라할수록 배움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처럼 전수하기 어려운 암묵지의 특성과 인간 언어의 모호함은 과거의 AI가 직면했던 한계와 맞닿아 있다. 과거의 AI가 실패했던 이유는 대부분 학습 과정에 있었다. 인간 집단이 가진 전문성을 언어로 규정하고, 그것을 다시 규칙으로 만들고, 기계 학습을 통해 구현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정보가 손실되었고, 결국 전문성이 아닌 불필요한 규칙만 남게 되었다. 딥러닝을 비롯한 최근의 AI 학습 방법론은 이 과정을 인간의 학습과 유사하게 설계함으로써 혁신을 이루었다. 인간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학습 과정을 기계에 도입한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개와 고양이의 차이를 굳이 규칙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언어 문법과 활용법을 일일이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보고 듣고 사용하다 보면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깨닫고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이는 패턴 인식일 수도 있고, 느슨한 규칙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확률 기반의 추론일 수도 있다. 기계가 이러한 인간의 학습법을 습득하고 그 과정을 시간축에서 압축했기에, 지금의 AI 혁신은 폭발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이 심화되면, 역으로 AI가 터득한 학습 방법론 역시 암묵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언어나 규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AI가 인간보다 더 발전하기 시작한 분야에서 터득한 암묵지는 인간이 이해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그런 분야가 많아질수록 인간이 전문가 집단으로 활약할 수 있는 영역은 줄어든다. 과장해 상상해 본다면, 상당수 직업군에서 기득권층의 권력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 ‘사이퍼 포뮬러’에서는 인간과 AI가 어떻게 협력하며 기존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인간이 관여하지 않는 AI가 오히려 인간을 도구화하며 그 경계마저 넘어설 가능성도 제시한다. 결국 미래의 직업 대결이나 전문성 대결은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A사의 AI를 활용하는 인간과 B사의 AI를 활용하는 인간의 대결, 그리고 그들과 AI 간의 대결 구도로 전개될 수 있다. 그런 새로운 전문성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답은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드러날지도 모른다. AI가 터득한 암묵지의 세계와 인간이 지켜온 암묵지의 세계가 만날 때, 우리는 전문성의 새로운 정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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