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법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by 리도란

‘관심법’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말한 그대로가 의미가 되고, 듣는 사람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같은 맥락 위에서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조직, 그런 사회가 필요하다.




동양 사회를 서구권과 구분지을 때, 언어의 맥락성이라는 기준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서구권은 '저맥락 언어'를, 한국 사회는 '고맥락 언어'를 사용한다는 설명이 그렇다.


저맥락 언어는 말 그 자체가 곧 의사 표현이다. 말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반면 고맥락 언어는 시간, 장소, 분위기 등 상황 전체를 고려해야 의미가 완성된다. 맥락이 말보다 더 많은 걸 전달하는 사회다.


예를 들어, 서구권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It's good!, I like it."이라고 답하면, 이는 곧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는 뜻이다.


같은 질문을 한국의 직장 문화에 대입해보자. "괜찮아요, 좋은 것 같아요."라는 말은 말투와 표정,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정말 좋다는 뜻일 수도 있고, 내키지는 않지만 면전에서 반대할 수 없어 애매하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제 세대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자기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는 사람들이 조직에 들어오면서, 이런 고맥락성은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


어떤 회의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의견을 모두 청취한 후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다수결로 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최대한 의견을 반영하겠습니다."


이후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어떤 이는 “책임을 조직장이 지지 않고 우리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받아들였고, 또 어떤 이는 “이미 마음속에 정답이 있는데 형식적으로만 의견을 묻는 거다”라고 해석했다.


왜 같은 말을 두고 이렇게 다른 해석이 나오는 걸까. 물어보니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과거 직장에서 겪었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이 내게 바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고맥락성이 가진 가장 깊은 문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적어도, 돈을 받고 일하는 직장이라는 환경에서는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직급이 높다고, 권한이 많다고 해서 자기 의견을 애매하게 표현하는 게 습관이 되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 조직은 다시 고맥락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관심법’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말한 그대로가 의미가 되고, 듣는 사람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같은 맥락 위에서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조직, 그런 사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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