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맵, 비전, 방향성에 관하여

by 리도란

로드맵, 비전, 방향성은 본질적으로 어렵지 않다. 그것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지나치게 경쟁적인 레드오션에 놓여 있거나,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거나, 실상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자주 듣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다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다.


- 비전을 보여주세요 / 비전을 말씀해 주세요

- 너의 로드맵을 그려와라 /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해라


나는 창업자도 아니고, 말단 구성원도 아닌 직장인의 삶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중간 관리자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위에는 상급자가 있고, 아래에는 관리해야 할 구성원이 있다.


샌드위치 구조의 조직에서 중간 관리자는 상급자의 성과를 책임지고 실무에 가까운 업무를 수행한다. 동시에 구성원에게 가이드와 지시를 내리며 조직이 굴러가도록 돕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의사결정을 직접 내리며 온전히 책임지는 최상위 리더나, 특정 실무에 완전한 전문성을 가진 담당자와는 달리, 중간 관리자는 늘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상적인 조직 구조는 더없이 분명하다. 빠르고 명확한 결정을 내리는 리더와, 탁월한 실행력을 가진 실무자만으로 구성된 조직.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끊임없는 중간 구조의 샌드위치 재료들이 보강된다.


특히 보상 격차가 구성원에게 주는 ‘가치’, ‘경험’, ‘권한’에 대한 혼란과 욕구가 조직 구조를 복잡하게 만든다.


결국 이 질문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 비전을 보여주세요 / 말씀해 주세요

- 너의 로드맵을 그려와라 / 방향을 설정해라


실무자가 자신의 일과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외부에서 주어지는 비전은 오래가지 못한다. 타인을 통한 동기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리더라면 구성원이 제안하는 로드맵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구성원이 조직장보다 거시적 관점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롯이 본인이 의사결정과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난 수년간 ‘그럴싸해 보이는’ 로드맵과 방향성을 제시해 왔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간 해야 할 일이나 나의 철학이 바뀐 적도 없다.


업무는 그 자체로 필요한 것이라면 무언가를 더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정당성을 지녀야 한다. 또한 방향성이 있어야 하며, 기술 트렌드와의 정합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계획과 로드맵은 실무에 기반해야 하고, 구성원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이윤 창출이나 비용 절감에 기여해야 한다. 그것 외의 다른 것들은 업무 놀이지, 실무가 아니다.


로드맵, 비전, 방향성은 본질적으로 어렵지 않다. 그것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지나치게 경쟁적인 레드오션에 놓여 있거나,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거나, 실상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런 로드맵은 조직을 헛돌게 하고, 구성원의 방향을 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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