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살롱 # 02
"누군가 앞장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최근 직장과 사회 곳곳에서 들리는 이 말은 단지 개인의 회피가 아니라, 구조적인 시대 징후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리더포비아(leaderphobia)’의 시대에 살고 있다. ‘리더포비아’란 공식적인 리더십을 맡는 것을 기피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리더의 역할 자체를 부담스럽고 위험하게 여기는 사회적 현상을 뜻한다. 이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특히 MZ세대의 조직 내 태도, 그리고 정치·기업 리더십의 위기 속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많은 담론은 리더포비아를 MZ세대의 특성과 연결 짓는다. 실제로 MZ세대는 수직적 구조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며, 책임보다 자유를 선호하고, 집단을 대표하거나 갈등 조정에 나서는 역할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보고서(2022)에 따르면, “MZ세대 공직자들은 관리자 승진보다 워라밸 유지와 개인 성장을 더 중시한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세대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오히려 본질을 가린다. ‘리더십 회피’는 특정 세대의 이기적 성향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살아온 사회 환경의 산물이다. 이들은 IMF 이후의 구조조정, 청년실업, 코로나 팬데믹, 지속된 저성장 시대를 통과하며, 리더가 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비난을 감당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한국 사회는 집단의 조화(harmony)를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과 권위 중심 구조를 함께 갖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더에게는 ‘완벽한 도덕성’과 ‘절대 책임’을 동시에 요구한다. 리더는 실수할 수 없고, 일단 위에 올라서면 오히려 공격 대상이 된다. 이는 ‘함께 하되 앞서지는 말라’는 무언의 규범을 낳는다.
또한 경제 구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스타트업 생태계조차 ‘창업자는 곧 문제의 근원’이라는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 최근 더본코리아의 백종원 대표를 둘러싼 ‘과잉존재 리스크’는 창업자가 성장의 원동력에서 족쇄로 인식되는 리더포비아의 사례다. 반면, 팀원 중심의 수평 조직을 표방했던 우아한 형제들(배달의민족)은 초기에 ‘리더 없는 문화’를 강조했으나, 결국 명확한 리더십 구조를 다시 채택해야만 했다.
리더포비아는 리더의 존재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 공백을 대체할 수 있는 구조나 문화는 여전히 부족하다. ‘모두가 평등하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은 결국 방향성을 잃는다. 탈권위주의는 필요하지만, 리더십 자체를 해체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혼란을 낳는다.
리더포비아는 “리더가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안전하고 신뢰받는 리더가 절실한 사회”의 반증이다. 문제는 리더를 어떻게 세우고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이지, 리더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리더포비아에 대한 해법은 기존의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아닌, ‘분산된 책임과 공유된 의사결정’을 제도화하는 데 있다.
공유 리더십 모델 도입
팀 단위에서 리더십을 순환하거나, 분야별 책임자를
병렬적으로 세우는 구조가 필요하다.
심리적 안전감 형성
리더가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비난’이 아닌
‘학습’으로 이어지도록 조직 문화를 전환해야 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이를 ‘심리적 안전감’이라 정의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야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된다”라고 강조한다(Edmondson, 1999).
리더 육성의 사회적 장치 마련
청소년 시기부터 ‘대표됨’과 ‘공동 책임’에 대한 교육을 일상화하고, 공공·기업 영역에서 ‘리더의 실패권’을 인정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리더포비아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다. 이는 리더십이 과도하게 리스크화된 사회 구조에 대한 반작용이며, 동시에 새로운 리더십 형태를 요구하는 시대적 신호다. 한국 사회는 이제 ‘지시하는 리더’에서 ‘연결하고 조율하는 리더’로, 권위 중심에서 신뢰 중심의 리더십으로 전환할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