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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Dec 18. 2016

신혼여행이 필요한 진짜 이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고작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유후인이었다. 온천 수증기가 산 중턱 중턱에서 올라가는 작은 마을. 관광지 느낌이 많이 나고 한국인 천지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었을까. 적어도 이번만큼은, 여행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건 환경이 아니라 우리 둘이었다. 마주치는 풍경들은 아름다웠고 여유있었다. 긴린코 호수 가는 길에 만난 작은 단풍나무들, 물풀들, 물고기를 잡는 가마우지들도 우리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고작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첫날 숙소엔 작은 히노키탕이 딸려 있었다. 처음에 그 탕을 보고서는 한 명이 들어가기도 너무 작다고 생각했는데, 신랑과 둘이 그 따뜻한 탕에 들어가서 밖을 보니 이 곳이 온 세상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우리 둘 뿐임을 느끼며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탕에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날엔 비가 왔는데, 우리는 길거리 어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커다란 타꼬야끼 하나와 맥주 한 캔을 나눠 먹었다. 타탁거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이리저리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입에서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짭쪼롬한 반죽이 느껴졌다. 나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음을 알았다.


'신혼여행'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는 나름의 사치를 부렸다. 어느 날은 하루 60만원짜리 방에서 묵으며 신선들이 놀 것 같은 프라이빗 노천탕에서 온천욕을 했고, 상 가득히 놓여진 가이세키 정식을 먹으며 황홀해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아주 작은 욕조 한 켠과 5천원짜리 타꼬야끼 하나를 나누면서도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행복해하는 것이었다. 일생 한 번 뿐인 신혼여행이라 특별한 것은 지불한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희망의 기분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좋은 곳에서 자고 좋은 음식도 먹을 테지만, 아마 이 대화와 기분만큼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었다.



행복해. 우리 관계가
소비를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나는 초보 부부인 우리가 아직 미숙하고 고쳐나갈 게 많지만, 최소한 소비를 통해 관계의 건재함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혹여 속으로는 불만족하면서도 다 이렇게 사는 거라며 자족하는 것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여서. 정말 사소한 것에서 행복함을 발견할 수 있는 우리여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와서 짜증스러워져도, 때로 살림이 쪼들려져도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신혼여행을 정말 의미있게 만드는 감정은 로맨스보다는 감사함이었다. 결혼식 직후 세상이 우리를 응원해주는 기분을 한껏 느끼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은 정말 돈 주고 살 수 없는 행복이었다.



언젠가 이런 작은 것에는
감흥이 없어지는 날이 올까?


결혼식을 치룬 날, 우리는 집에서 자고 다음날 신혼여행지로 출발했다. 그런데 보통 그런 경우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호텔에서 자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꽤나 많이 받았다. 사실 나는 호텔에서 자고 싶지가 않았는데, 다음날 일찍 출발해야 하는 등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부가 된 우리의 첫 날을 우리의 공간에서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서 잠자는 평범한 경험을 이렇게 특별하게 느낄 날은 앞으로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화려한 행사를 마친 다음, 우리는 언덕 위 작은 집으로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피곤한 육체를 들뜬 정신으로 이겨내며, 작은 식탁에 마주앉아 와인을 부딪치며 조용히 우리의 시작을 축하했던 그 밤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다.


언젠가는 지금 느끼는 사소한 감사함들 잊혀지더라도, 지금 여기 오늘을 특별히 대하는 만큼 내일은 더 행복한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생각보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든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딜 가든 우리가 제일 사이좋은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면, 그와 같은 걸 보고 먹으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곳이 낙원인 것 같다. 실제로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 지금이 더 행복하고 편안한 걸 보면, 정말로.


결혼식 후 집에서 둘만의 조촐한 축배를.


폭탄타코야끼 - 파&마요 맛♡



선녀가 목욕할 것만 같았던 노천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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