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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Mar 04. 2017

청첩장, 어디까지 돌려야 할까?

결혼 알리기에 대한 단상.

허례허식과 진정성 사이.

솔직히 결혼준비를 하면서 형식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참 많았다. 주로 '결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직결되는 것들이 해당되었는데, 이를테면 드레스나 스튜디오 촬영이 그랬다. 드레스가 너무 예쁘고 비쌀수록 더 더 예쁘다 보니 내가 결혼을 하려고 드레스를 입는 건지 드레스를 입으려 결혼을 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드레스를 입는 건 내가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원하는 '행복한 신부'에 대한 이미지를 내가 소비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 또한 그런 주입되었을지도 모르는 개념에 굳이 저항하기보다는 형식적으로 소비했고 그 속에서 합리를 찾으며 만족해했다. 그 외에도 챙겨야 할 형식들이 아주 많았고 나는 정보의 홍수와 끝나지 않는 소비에 지쳐 가고 있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까지 한 달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매일 모임을 하고 연락을 한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것은, 결혼 준비에서 가장 진정성있는 프로세스 중 하나가 '청첩장 돌리기' 였다는 것이다. 이제껏 다른 사람의 청첩장을 받을 땐 잘 몰랐었다. 그런데 내가 주는 입장이 되고 보니 사람들에게 결혼을 알리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라는 걸 깨닫는다.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에게도 왠지 이것만큼은 알려주는 게 도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축의금 회수 목적 같은 게 아니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일수록 오히려 그런 기대는 없다. 그래도 그냥 말해주고 싶다. 내 인생이 이제 변화한다고. 평생 나만을 위해 살아온 삶이 이제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으로 새로 시작한다고. 인생에서 했던 숱한 선택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고..



내 인생이 이제 달라져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렸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니, 설령 상대방이 오지 않더라도, 아니 오기는 커녕 '얘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청첩장이구나' 라고 빈정댈지언정 소식은 전해야 할 것 같은 거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말씀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지만...' 이라는 멘트가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이제껏 알고 지낸 인연들이 소중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우리의 새 인생의 시작을 알고 축하하고 지켜봐 준다면 그 기대와 축복에 부응하여 왠지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한 3주 가량 거의 매일 점심저녁으로 청첩장 모임을 하며 보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챙기다 보니 벌써 몇십 시간 후면 결혼식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지금 생각나지 않더라도 아직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아쉽다. 사람 성격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청첩장은 가능한 한 넓게 돌리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청첩장 돌리기는 몸은 지치고 피곤해지지만 가슴은 따뜻해지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색해서 알리지 않은 사람들을 결혼 후에 만난다면, 민망해지는 책임은 결국 나에게 지워지기 때문이다. 청첩장 돌리기 과정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함께 사랑이 가득한 시작을 한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인생 헛살지 않았다는 따뜻함, 그리고 앞으로 더 따뜻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어 미소짓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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