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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Feb 14. 2017

엄마와 딸, 결혼을 앞두고서.

서운함이 말해 주는 것들 _2


항상 강하고 무던해 보이기만 했던 우리 엄마는 내 결혼을 앞두고 유리멘탈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 아주 조그마한 것, 매우 평소같은 것에서부터 서운해했다. 나는 평생 철없고 버릇없는 딸이었는데, 내가 원래 하던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더니 엄마는 본인을 무시하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방청소를 안한다고 엄마에게 혼나곤 했는데, 결혼을 앞두고 똑같이 방이 어질러져 있으니 엄마는 서운해했고 의기소침해했다. 엄마한테는 전에 없던 것처럼 친절하고 조목조목하게 얘기해주어야 했다.


'엄마니까 당연히 이해해 주겠지..' 가
통하지 않는 시기였다.



엄마는 더 이상 내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쓸 게 많은데 왜 엄마마저 예민하게 구는지 짜증이 났다. 그런데 그것은 결혼을 기점으로 나와 엄마의 권력구도가 역전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늦게 깨달았다. 나는 강자의 입장이라 처음엔 잘 몰랐을 뿐, 엄마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예물을 많이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이전 글 참고)도 서운해했다. 네가 뭐가 모자라서 자꾸 밑지고 들어가려고 하냐고 했다. "나는 모자란 게 없어서 그런거 안 받아도 전혀 아쉬운 게 없는 거다"라고 했더니 엄마는 더이상 뭐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찮아했다. 나는 의아했다. 평생 옷 욕심 보석 욕심 없이 살아온 엄마, 오히려 내가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야단쳤던 엄마가 갑자기 왜 지금은 그런 걸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걸까. 그런데 문득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독립적인 아이로 자라났지만, 그건 나 혼자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부모님이 그렇게 키워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자랐기 때문에 보상이 필요 없어도, 엄마는 나를 이렇게 멀쩡히 키워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마음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쩌면 물질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엄마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날 낳고 먹이고 입혀 온 당신의 지난 날들이 가치있었다는 것을 내가 충분히 표현하고 값아드리기 어려워, 그저 편리한 기준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어머님이 그렇게 주시려고 했던 예물들 또한 애초에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어른들이 세속적이라 단정하기엔, 나 또한 훗날 내 딸에게 비슷한 느낌을 가질 것 같아 왠지 이해가 되었다. 엄마가 날 키워온 기억과 시간의 무게로 인해, 나의 복은 곧 엄마의 복이었고 나의 흠은 곧 엄마의 흠이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런 쪽으로 양보하는 모습, 욕심 없는 모습을 보일 때 뭔지 모르게 서글픈 엄마. 나는 그런 엄마가 너무나 생소했고 또 서러워졌다. 여자의 삶에 대한 연민, '엄마'에 대한 표현 못할 감사함, 떠나는 입장에서의 미안함 같은 것들었다. 정말로 미묘한 감정이었다. 엄마에게 반지라도 하나 맞춰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소리없이 울곤 했다.


아무리 많이 고맙다 해도 충분치 않다


결혼하면서 새삼 엄마에게 감사한 것들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그 감정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평생 그런 얘기 하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하는 것이 쑥쓰럽고 어색한 게 첫 번째, 고맙다 하기 전에 눈물부터 날 것 같았던 게 두 번째, 그리고 엄마가 생각보다 쿨해 보였던 게 마지막 이유였다. 평소에도 편리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엄마는 나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며 집이며 혼수며 예단이며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릇 하나까지 엄마가 간섭해서 다툰다는 다른 집에 비하면 우리 엄마는 참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집도 가구도 남자친구와 함께 보러 다니며 의논했고 그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사실은 나에게 돈을 건네 준 그 순간부터 엄마의 힘은 더욱 빠지고 있었나보다. 어찌 보면 나에 대한 엄마의 마지막 챙김과 영향력을 넘겨 준 후 엄마는 무기력해했다.


엄마가 내 결혼에 있어서 본인의 영향력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결과적으로 엄마를 서운하게 만들었고, 엄마는 그런 마음을 외면하려는 듯 그냥 본인의 일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결혼 준비가 막바지 정점에 다다라 빨래건조대부터 발매트 하나까지 일일히 다 사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그걸 다 챙기는 것이 너무나 버거워졌다. 잠깐의 틈만 나도 인터넷 쇼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엄마에게 서운해졌다. 다른 엄마들은 이것저것 사주고 챙겨준다는데 엄마는 너무나 관심이 없다면서. 엄마는 "네가 알아서 하기로 해서 내가 돈을 준 거잖아"로 일관했다. 나는 "그럼 나 혼자 이렇게 바쁜데도 단지 돈을 줬기 때문에 안 도와주는거였냐"며 반박했다. 결국 갈등의 원인이 돈인것만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젊은 남녀가 둘만의 힘으로 가정을 꾸리는 결코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 사실 엄마의 금전적 도움은 정말이지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은인같았다. 어쩌면 내가 그것을 혼자 기뻐만 하지 말고 좀더 엄마에게 고맙다고 표현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가족이기에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많은 만큼, 말 한마디나 작은 뉘앙스 때문에 오해가 피어나는 경우 또한 많다. 그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모두들 서로에게 잘 하려고 하다가 모두 다 서운해지는 상황이랄까.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마음들이 참 고맙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나에게 당연히 주어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건데. 그 때 좀더 많이 표현했어야 했다. 아무리 말해도 충분치 않은, '고맙다'는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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