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간
카페에 앉아 운동하러 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나는 조금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남편은 운동하고 땀흘리는 걸 좋아한다. 결혼한 이후 그는 본인의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갑갑해하곤 한다. 우선 결혼 이후 그의 회사일이 바빠져, 퇴근 이후 우리가 같이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하루도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운동도 미뤄지게 되는거다. 게다가 결혼하고 나니 주말에 가족행사 등등이 너무 많아졌고, 특히 내가 임신을 하고부터는 더욱 남는 시간은 나랑 보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더군다나 우리 신혼집 근처에는 잠깐 나가 가볍게 뛸 만한 코스가 마땅치 않다. 운동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쉬다 보니 그는 몸이 무거워짐을 느끼고 때때로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나 보다.
무더웠던 날들이 지나고 열대야가 조금씩 풀리면서, 남편은 밤에 조깅을 가기 시작했다. 주로 퇴근 후나 주말 저녁에 간다. 요즈음 그는 운동하고 싶을 때 왜인지 꼭 내가 같이 가기를 원한다. 오늘은 조금 피곤하길래 난 집에 있을테니 혼자 운동하고 오라고 했더니 금새 시무룩해지는 모습이 귀여워 함께 나왔다. 핫초코를 마시며 카페에 앉아 시집을 펼쳤더니 몽글몽글한 시어들도 감성적인 설정들도 그냥 온통 나의 이야기 같다.
알겠다. 당신을 기다리는 지금 이 시간 너무 행복한 것을. 어쩌면 앞으로 한 달 후, 아기가 태어나면 당분간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이런 시간 참 고맙다는 것을. 혼자 종일 육아를 할 때 남편이 늦으면 엄청 짜증난다던데, 그렇게 짜증 섞인 기억이 아니라 이런 행복한 기다림의 기억이 먼저 생겨, 기쁘다. 내일이 월요일인 것도 상관 없어질 만큼. 어쩌면 그도 앞으로 더욱 갖기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본인의 운동 시간을 나와 함께하고 싶었을까. 혼자 뛰고 있을 그도 나만큼이나 우리 함께하는 기분일까. 응원하고 지지한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즘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중
매일매일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자연현상만큼이나,
앞으로 우리가 함께하는 삶에는
오늘같은 사소한 기다림과 특별할 것 없는 마음쓰임들이 '일상'의 이름으로 채워질 것을 안다.
어쩌면 나는,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인생 이 정도면 참 괜찮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