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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Jun 11. 2019

부부는 그냥 정으로 사나요?

결혼 이후의 사랑에 대하여

결혼하기 전에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결혼하면 정말 다 정으로 사는 걸까?

뜨거운 사랑은 언젠가 식을 텐데, 그 이후 부부는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는 걸까?

그놈이 그놈이다, 결혼하면 다 똑같다는 말을 나도 언젠가 공감하게 될까?


그 시절, '사랑이 식는다'는 것은 언제나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사랑의 감정은 정말 매력적이었으니까. 마치 서로를 만나기 위해 지금껏 살아 온 것 같은 느낌이 감사했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행복했다. 그래서 시작의 순간에는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영원'을 바랐다. 그러나 시작이 아무리 절절하고 아무리 운명적이었어도 끝엔 어김없이 이별이 찾아왔다. 이별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마음이 차가워지고 나면 예전에 그를 멋지게 보이게 했던 장점은 '그깟 알량한 것'으로 바뀌어 냉소의 대상이 되었고, 별거 아니게 느껴졌던 단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결정적 이별사유가 되었다. 그 평균 사이클은 3년이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뜨거운 단계가 지난 후에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경험도 노하우도 없었다. 노하우는 커녕 오히려 실패 사례만 많이 쌓아 온 셈이다. 연애하고 3년 정도가 지나면 서로 헤어질 이유가 많아진다는 것, 그걸 알았지만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는 찾지 못한 상태. 나는 왜 3년의 벽을 넘지 못했을까, 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6년 넘게 연애하고 있는 저 커플과 내 연애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는 자꾸 내 안에서 이유를 찾으려 했다.


만난 지 오래 안 되어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정했을 때, 그것은 분명 행복한 미래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판단 때문이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혹시 시간이 흘러 또 3년이 지나면 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얼마나 이런 걸 연습하고 결혼하겠냐마는, 나 또한 아무런 사전 연습 없이 누군가와 ‘사랑 이후의 관계’를 처음 겪어갈 운명을 선택하고야 만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고 예상보다 빨리 아기가 생겼고,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우리가 연애한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3년이 지났는데 헤어질 이유는 단 한개도 없고 헤어지지 않아야 할 이유는 수천개이다.



아기가 있어 사이가 좋아진 것인가.

이젠 육아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남편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가 없다. 사실 육아를 시작한 이후 한동안은 나만 피해자인 것 같았다. 나만 잠 못자고 나만 못 나가고 나만 못 먹고 나만 살찌고. 어서 이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아기가 잠들기를 기다렸고, 깨어나면 또 잠들기를 기다렸다. 누적된 만성 피로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늦게 귀가하고 밤에 안 깨는 남편이 야속했다. '애는 나 혼자 낳았냐'는 진부한 대사가 목까지 차올랐다. 처음에는 남편이나 나나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점점 내가 훨씬 더 애를 잘 보게 되면서 점점 육아의 주도권은 나에게 넘어왔다. 그럴수록 나는 몸이 묶이어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남편도 그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사실 그 또한 아버지로서 피해자였다. 아기의 웃음을 볼 시간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그러나 SNS에서 예쁜 옷을 입고 해외여행을 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고 현실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 남편은 나의 이 상대적 박탈감을 배출하기에 가장 쉬운 대상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의 힘듦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고, 이런 벼랑 끝에서 우리마저 싸워 버린다면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것이었다. 그 시기 우리 부부는 몸이 힘들었고, 마음은 억울했지만, 서로를 비난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자꾸 약해지는 이성의 끈을 하루에도 몇 번씩 부여잡으면서.


하루를 버티는 느낌으로 살았고, 잘 버티기 위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 있다는 걸 아기를 낳고 알았다.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았고,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았고, 남편의 도움으로 토요일 하루는 나의 취미생활을 재개했다. 열심히 문화센터를 다녔고, 또래 엄마들과 정보와 시간을 공유했고, 이웃들과 인사하며 지냈다. 그것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좀더 쉽게 이 시간을 버티게 도와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1년 반을 ‘존버’하고 나자, 그 죽을 것 같았던 기억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눈 앞에는 한층 애교 많고 귀여워진 아기만 남았다.


그리고 한층 돈독해진 부부가 남았다. 함께 데이트를 하고 쇼핑을 하고 집을 꾸미던 연인은, 한 명이 요리를 할 때 한 명은 기저귀를 갈아주고, 한 명이 청소를 할 때 한 명은 목욕을 시키는, 한 명이 외출하면 한 명은 집을 지키는 그런 부모가 되었다. 결혼 준비를 할 때에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싸우지 않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는데, 갓난아이를 돌이 지나도록 키우면서도 우리가 싸우지 않은 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었다. 피나는 노력이었다. 서로의 탓이 아닌 것을 탓하지 않은 것, 매일의 다양한 감정을 서로 공유하고 이해하려 한 것, 그러면서도 각자의 짐은 각자 지고 가려 한 것, 힘들 때 불평을 줄였던 것, 대신 조금만 해방되어도 맘껏 좋아했던 것, 이 노력들이 모여 탄탄한 동지애가 되었다.


우리가 아기 때문에 사이가 좋아진 거라 말할 순 없다. 오히려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아기 때문에 서로를 원망하게 될 뻔한 수많은 갈등과 위기가 산재했었다. 그러나 그 돌부리들을 지나 오자 우리 사랑의 기반 위에는 고마움이 한 층, 신뢰가 한 층 쌓여 있다. 마치 색색의 지층처럼, 부부의 관계는 한결 두터워지고 색채는 다양해졌다.



결혼이 사랑을 지속시키는가.

그것은 어떤 면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결혼 전엔 몰랐는데, 연인과 부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삶의 ‘과정’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연애 시절엔 곱게 화장한 얼굴로 수줍게 기다리고 있으면 남편이 짠 하고 나타나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곤 했다. 그것은 한때 내 삶의 활력이자 행복이었지만 나에게 그런 관계는 이제 없다. 지금 똑같이 메이크업을 하고 나가도 참 즐겁긴 하지만 그때의 그 간질간질한 기분이 아니다. 당시의 나는 그 완벽한 모습 뒤에 언제나 존재했던 긴 메이크업 시간, 옷 입었다 벗어던지는 시간, 고데기 잡는 시간, 준비하다가 배고파져서 뭔가 주워먹는 시간 등을 남편과 전혀 공유하지 않았었다. 반면 지금은 맨얼굴이 화장한 얼굴로 변해가는 과정을 드러내고, 긴 하루를 마친 후의 땀내 나는 속옷을 빨래통에 넣어 주고, 일상의 가장 루틴하고 하찮은 과정들을 샅샅히 공유하는 관계가 되었다.


하나도 안 중요해 보이는 이 과정을 공유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애착과 신뢰의 면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마치 '영화 한 편을 함께 보는 것'과 '영화 한 편을 함께 만드는 것'의 차이랄까. 백스테이지를 함께하는 느낌. 스테이지 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나만의 습관, 단점, 그 모든 부끄러운 것들을 내보이고 또 상대의 것을 받아들이면서 같은 지향점을 공유하는 관계가 되자, 당연하게도 설렘은 줄어들었지만 작은 것에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던 사랑의 시기에 비해 삶이 훨씬 안정되었다. 변화에 매우 취약해서 언제는 좋아 죽겠다가도 툭하면 다 그만두고 싶어지던 '사랑'은, 서로의 삶을 공유하게 되면서, 서로가 있어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감정,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이지만) 소위 '애착'으로 변화했다.


사람처럼, 사랑도 나이가 든다.


영원히 불타는 사랑은 없었다. 그러나 한번 불탔던 사랑은 다른 감정들과 만나면서 그 모습을 바꿔 가며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이 애착의 감정이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겪어 가고 시간의 지층이 쌓여 가면서 다들 이야기하는 '정'이 될지도, '애증'이 될지도, 또 다른 무언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시작은 사랑이었고 그 본질도 여전히 사랑임을 우리가 기억한다면야,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듯 상관이 있을런지. 어차피 늙을 거 멋지게 늙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바람일 것이다. 사랑도 나이가 든다. 지금의 젊고 화려한 사랑이 나이가 들면서 더 편안하고 애정어린 사랑이 될지, 한때 빛났던 미모가 사그라들면서 과거만을 그리워하는 사랑이 될지 역시, 사랑하는 자들이 풀어갈 과제인 것이다.


결혼은 그 자체로는 제도적인 틀일 뿐일지라도, 결혼이 가지는 사회적 의의, 결혼에 수반하는 많은 형식적 절차들과 경제적 준비, 주변의 시선, 그리고 앞서 언급한 삶의 과정을 공유하는 과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서로간의 공동체 의식이 형성된다. (이 공동체 의식이 없어 초기에 이혼/파혼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사랑 주변으로 다른 감정들이 자리잡기에 좋다. 우리 부부 역시 어쩌면 사랑 그 자체보다도 사랑을 둘러싼 다른 감정들을 포함한 큰 의미의 사랑을 잘 다루게 되면서 도리어 사랑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혼, 그게 진짜 맞을까?

나는 3년 만나면 지루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3년의 벽은 사랑의 처음 모습만으로 관계를 끌어가는 것의 한계였을 뿐. 정기적인 데이트만으로는 서로 같은 지향점을 공유할 만한 지점도, 지금 내 코앞에 닥친 역경을 굳이 견뎌내야 할 이유도, 나 이외의 누군가를 부양해야 할 책임감도 없었을 뿐. 어떤 모습으로 나이들어야 할지 몰랐던 과거 나의 사랑은, 처음의 화려했던 색채가 바래는 것에 연연했고 그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는 것 밖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물론 결혼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이라 누구랑 결혼하든 다 행복해질거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했어도 결혼 때문에 없던 갈등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결혼 후 갈등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하려 한다.) 단, 생각보다 미천하고 변변치 않고 때로는 지저분하기까지 한 내 삶의 백스테이지에 초대할 용기가 나는 사람과 현재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을 오래도록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그래, 결혼이 맞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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