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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Aug 21. 2018

굿바이, 나의 신혼집


이사를 간다. 예상보다 빨리 움직이게 되어서 앞으로 약 5주 후면 이 집을 떠나게 된다. 아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구한 집, 조금 좁고 조금 높더라도 우리 둘이 편히 잠자고 이야기하고 식사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집, 처음 보았을 땐 흉한 상태였지만 우리 손으로 페인트도 칠하고 벽지도 하고 현관문도 고치고 잔디도 깔고 전등도 달았더니 무척이나 아늑해진 집, 그래서 유난히 구석구석 우리 손길이 닿아 있는 집.

그러나 소율이 생기고는 집에 대한 불만이 자꾸만 커져 갔다. 아기 방을 만들어줄 수 없는 것, 놀이감을 늘어놓으면 발 디딜 곳 없게 되는 것, 집의 경사가 심해 유모차로 외출이 쉽지 않은 것, 집과 지하주차장이 바로 연결되지 않아 차를 타려면 눈, 비, 찜통 더위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 주변에 아기와 편하게 갈 만한 카페가 없는 것 등등.. 나는 틈만 나면 부동산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다.

다양한 불편함이 무색하게도 소율은 이곳에서 이렇다 할 병치레도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이 아기의 수많은 처음의 순간 또한 이 공간에서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아내와 남편으로 불리우며 살아가게 된 곳에서 우리는 이제 또 다른 작은 누군가의 조그마한 입으로 ‘엄맘마마’와 ‘아빠빠빠’로 불리운다. 이곳이 있었기에 소율이 생겼지만 결국 그 때문에 떠나게 된다. 나쁜 일들은 하나도 없고 좋은 일들만 가득했던 곳인데 아마 소율은 이 곳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미안하다.

그리고 왠지 코끝이 더 찡한 것은, 언젠가 아무것도 없는 이 집에서 페인트를 칠하다가 짜장면을 시켜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서 먹던 그 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불과 2년 전 그때가 너무 먼 과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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