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통잠을 꿈꾸며
4개월 잠 퇴행은 정말 강력했다. 그 이후 7개월이 넘어가도록 새벽에 두세번씩은 꼭 깼으니까. 서서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최대 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혼자 앉기 시작하고부터는 새벽에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서 찡얼거리고 있거나, 침대 난간을 잡고 일어나 울었다. 다가가서 눕혀주고 공갈젖꼭지를 물리면 보통은 저항 없이 다시 잠들었지만 그런 다음에는 또 1~2시간 후에 깼다. 이 시기에 다시 통잠을 꿈꾸며 많은 걸 시도했는데 결국 통잠은 못 잤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몇 가지가 있다.
애착인형 정착: 싱가폴 친구가 사다준 멀라이언(merlion; 머리는 사자 몸은 인어인 싱가폴의 상징 동물) 인형이 침대에 있었는데 어느날부턴가 소율이 그걸 만지면서 잠들었다. 멀라이언은 크기가 좀 작고 때가 많이 타는 재질이라 토끼 인형과 멍멍이 인형을 일부러 사서 애착인형으로 만들어 주려고 시도했는데, 아무리 해도 소율은 멀라이언을 가장 좋아했다. 애착은 점점 강화되어서 이젠 멀라이언이 없으면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낯선 곳에서도 멀라이언이 있으면 안정을 찾는다.
수면의식으로 동화책 읽기: 잠자기 전 항상 <쉿, 조용조용>이라는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며칠 그렇게 했더니 <쉿, 조용조용>의 마지막 장에 가면 하품을 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쉿, 조용조용>을 펼치자마자 마치 아직 자기 싫다는 듯이 자꾸 다른 책을 보자고 했다. 그래도 그 책을 펴는 것 만으로 “이제 잘 시간이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지, 다른 책을 보다가도 금세 하품을 한다.
6개월 수면의식
1) 기저귀를 간다.
2) 잠 관련 동화책을 읽는다.
3) 바로 눕히고 쪽쪽이+애착인형+자장가 불러주면 5분 안에 잠들었다. 자장가는 완전히 잠들 때까지 불러주었다.
낮잠의 변화
낮잠이 하루 3회였다가 한두 번씩 2번 자는 것 같더니 7개월이 되자 거의 2회로 정착되었다. 원래는 낮잠을 25분, 길어야 45분 자고 깨버리고 아무리 연장해보려고 해도 안 되길래 ‘원래 소율인 낮잠을 길게 안 자는 아기인가보다..’ 하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7개월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1시간 30분~2시간씩 자는 날이 많아졌다.
혼자 잠들기
벌써 몇 달째 밤에 자꾸 깨는 바람에 나는 만성피로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재울 때는 얌전히 누워 잠들었기 때문에 수면교육을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7개월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또 변화가 생겼다. 아기가 밤잠을 안자고 놀고 싶어하는것. 자러 들어가거나, 잘자라고 인사만 해도 마구 울기 시작했다.
밑져야 본전이지 싶어 퍼버법 수면교육 시작. 원래 하던 것처럼 자장가를 불러주지만 완전히 잠들기 전에 인사하고 나왔다. 아기가 울면 3분, 5분, 7분, 10분 간격으로 들어가서 다시 자장가를 한 곡 불러주고 나왔다. 첫날 소율은 30분 걸려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밤잠을 자는 도중 아기가 안 깬다. 아니, 한두 번 깨긴 했는데 조금 우는 것 같더니 그냥 애앵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서 부시럭부시럭 뒤척이더니 다시.. 잠들었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 너무 신기했다. 나는 지금까지 새벽에 안 달래주면 10분 넘게 울 줄 알았는데 1분도 안 울었다. 이럴 수가...
수면교육 이틀차, ‘오늘도 20분은 울겠지’ 하며 마음 단단히 먹고 방을 나왔는데, 별로 울지도 않고 2분만에 잠들어서 안 깨고 다음날 6시까지 잤다. 다음날 창밖이 훤해질 때 아기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난 나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내가 정말 오랜만에 통잠을 잔 거다. 아침이 이렇게 상쾌할 수 있는 거라니, 너무나 행복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 다음날도, 그리고 그때부터 계속 소율은 잘 잤고, 중간에 깨더라도 잠깐 기다리면 80%는 혼자 잠들었다. 하루 울린 노력 치고 너무나 드라마틱한 결과에 정말 감동, 또 감동.. 결과적으로 수면교육은 성공이었다. 눕혀놓고 나오면 우는 날도 있고 그냥 잠드는 날도 있었지만, 울더라도 첫날 30분 울었던 것 이상 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많은 책과 블로그들을 봤으면서 이 좋은 걸 왜 8개월동안 안했을까? 진짜 더 빨리 할 걸 그랬다. 그렇게 힘들었던 4개월 수면퇴행 때 최소한 시도라도 해볼 걸 그랬다.
안 졸려해도 시간 되면 재우기
한번 성공한 수면교육의 약빨은 꽤 오랫동안 갔다. 소율이 다시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 정말 더할나위 없음을 느꼈다. 8시 이후의 자유시간이 보장되자 소소하게 영화도 보면서 스트레스도 좀 해소되었고 맘먹으면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점점 에너지가 넘치고 활동량이 늘어나는 소율이 낮잠을 잘 안 자려고 하는 것이다. 원래 깨어난 지 3~4시간이면 눈을 비비거나 하품을 하거나 머리를 긁적거리는 등의 행동을 하는데, 5시간이 지나도록 쌩쌩하게 지치지 않고 노는 것.
그래서, 진짜 책에서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던, ‘졸려보이기 전에 시간되면 재우기’를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완전 성공적. 아기가 그냥 한낮에 잘 놀고 있을 때 수면의식을 간단히 하고 침대에 눕히자, 갑자기 아기도 눈을 비비며 잘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아기가 언제쯤 잘까?’에 대한 고민 없이 일정한 시간에 낮잠을 재우게 되었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일단 같은 시간에 재우니 소율은 낮잠을 더 깊게 오래 잤다. 꿀잠을 자고 나니 깨어나서 기분나빠 우는 일 없이 방긋 웃으며 엄마를 불렀다. 게다가 졸려서 칭얼대기 전에 재우기 때문에 하루 동안 내가 소율의 울음이나 짜증을 듣는 일 자체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비로소 하루를 조금이나마 계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기가 짜증낼 때 재우는 것과, 엄마가 예상한 시간에 재우는 것은 결국 비슷한 시간에 잠든다고 해도 엄마의 육아효능감에 큰 차이가 존재했다. 나의 자유시간이 확보될수록 소율이 더 예뻐 보였고 활동 시간에 더 잘 놀아줄 수 있게 되었다.
1년간 매일 수회씩 아기를 재우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아기들이 진짜 빨리 배운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단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면 그걸 못하던 시기를 다 잊어버린다. 이런 게 바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것 같다. 한 번 혼자 잠드는 걸 배우더니 이제는 내가 전처럼 계속 자장가를 불러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잘 안 자고, 오히려 혼자 냅두고 방을 나와야 그제야 바로 잠든다. 원래는 자다가 깼을 때 엄마가 없으면 울었는데, 이제는 엄마가 보이면 ‘엄마~ 엄마~’를 부르며 찡찡대고 막상 엄마가 안 보이면 그냥 혼자 다시 잔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들
유모차에서 안 잔다. 신생아 때 안 태워 버릇 해서 그런가 싶다. 딱 한번 유모차에서 분유먹다가 잠든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또 한 번도 안 잔다. 유모차에서 자 주어야 문화센터 끝나고 엄마들과 평안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데..
아기띠에서는 원래 잘 잤는데 점점 잘 안 잔다. 아무리 졸려도 자기 침대에서만 자고 싶어서 자꾸 눕혀달라고 떼를 쓴다. 그래서 외출했을 때 재우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눕혀 재우기의 부작용이다.
쪽쪽이 없이는 잠들기가 어렵다. 쪽쪽이를 서서히 끊을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은데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