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ading Lady Nov 02. 2016

결혼 준비

D-110. 훗날 되돌아보았을 때 힘이 될 것 같은 시간.

결혼, 이제껏 몰랐던 세상이 펼쳐졌다.

결혼 준비라는 것이 만만찮다. 날짜와 식장을 잡고 나니 드레스샵을 정하러 투어를 다녀야 하고, 수많은 스튜디오 중 하나를 정하고 사진촬영을 한다. 예물 종류를 정하고 보러 다니고, 청첩장을 제작한다. 이 모든 것이 방대한 양의 인터넷 서치를 기본으로 해서 남친과 플래너, 가족들과의 끝없는 상의를 수반한다. 그러다 주말이나 저녁 시간에 틈이 나면 서로의 가족, 친척들과 지인들을 만난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신혼집 구하기와 인테리어는 또 별개의 과업. 이 외의 기타 등등 자잘한 선택들이 이백가지 쯤 산재한다. 정말이지 사랑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크게 다투지 않는 우리를 볼 때면 새삼 기적 같다.


결혼준비: 바쁨, 가난함, 그리고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 준비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앞으로 결혼까지 약 110일 정도 남은 지금, 하루 하루가 흘러가는 것이 아쉬울 만큼 마지막 싱글로서의 이 시간이 참 특별하고 행복하다. 나에게 어울리는 드레스가 무엇일지 상상하는 건 정말 설레었고, 실제로 입어 보았을 때의 그 어색하고도 신기한 느낌은 꽤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어디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한동안 내가 드레스 입은 사진을 보곤 했다. 왜 다들 드레스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 놓는지 알게 되었다. 신혼집을 알아보러 33도의 찜통 더위에 부동산을 돌아다닌 날도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뚱한 표정으로 기대어 있는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가 "신혼집 구하려고요." 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 기억난다. 우리가 함께 살 공간을 상상하고 서로의 출퇴근 동선을 따져 보고, 퇴근 후와 주말의 시간을 생각해 보는 과정들이 눈물나게 행복했다. 돈이 충분하지 않아서 더 행복했다. 양가 모두 평범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시작했을 작은 집에서 우리 또한 소박한 살림을 시작한다는 것에 묘한 희망과 축복의 느낌을 받았다. 예비 시댁에 처음 인사드릴 때, 무척이나 긴장해서 끝나고 난 뒤 녹초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머님 아버님의 환대에 진정으로 감사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되고, 그의 부모님과도 가족이 되는 느낌은 어쩐지 든든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둘 다 별다른 약속이 없는 날에 영화를 보기로 하고 생각해 보니 영화를 본 지가 너무 까마득하게 오래되었다. 예전엔 "또 영화 보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매 주 보았었는데, 결혼준비를 시작하고 매주 일정이 있다 보니 그리 되었다. 출산한 여자들이 영화도 제대로 못본다고 서러워하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날 정말 평범하게 영화 한 편을 보면서 팝콘을 먹고 집에 돌아갔는데, 그게 참으로 생경하고 소중했다. 평범하지만 전혀 흔하지 않은, 지친 일상 속의 소중한 데이트였다.


지금의 우리를 기억해. 이 설렘과 감사함을 기억해.
기회가 될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많이 남기고 싶다.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사랑이 넘치는 우리의 눈빛이 표정이 아름답다. 결혼 후에는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은 화관과 머리장식도 아까움 없이 샀다. 어쩌면 결혼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금 충분히 행복한 게 아닐까 싶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아기를 낳고 기르고, 저축을 하고 이사를 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또 사랑하고, 힘든 일들을 겪고 하는 그 숱한 날들에서 지금의 이 시간이, 시간의 기록들이 힘이 되어 줄 것 같다. 결혼 후에 다들 그렇듯 환상이 깨어지고 실망할 때, 지금 이 시기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상기하고 그걸 이루려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바빠질거고 누구보다 가열찬 30대를 보내겠지만, 요즈음 바쁜 결혼준비 속에서 영화 한편의 데이트가 힘이 되어 주었듯, 앞으로 치열한 시간들에도 서로를 마주보고 손을 잡는 그 짧은 시간이 항상 서로에게 치유이고 활력소일 것을 안다. 가슴엔 가장 큰 꿈을 품고도, 가장 평범한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우리일 것을 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계속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우리를 만나게 해 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만약 신이 없다면 소개팅 주선자에게)


우리는 지금 결혼 준비 중이다. 110일밖에 안 남은 준비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행복해하며.

110일 후에 펼쳐질 새로운 인생에 들떠하며. 설레어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의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