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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May 16. 2019

아이의 속도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강연을 들었다. 3달 동안 핀란드 가정을 둘러보고 온 그림작가의 이야기. 요즘 교육과 복지 분야에서 좋은 건 다 핀란드라며 식상한 이야기가 예상되어 불참할까도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 보니 내 아기를 키우면서 와닿는 것이 정말 많아서 눈물까지 찔끔 훔치다 왔다. 역시 learning transfer(학습 전이;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은 직무관련성과 적절한 타이밍이다.(왕년에 교육학 곁눈질 좀 함)


네가 해 봐. 5초만에 할 수 있으면.


강연자는 핀란드의 한 가정에서 2살 아기가 자신의 생일 케익에 꽂힌 촛불을 끄기 위해 30분 동안 모든 사람이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제 막 '후우~'하고 바람을 부는 법을 알게 된 소율이가 생각났다. 그러나 소율이의 입으로는 아무래도 바람의 힘이 세지 않고, 방향 조준이 잘 안 되며,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람이 불어야 초가 꺼진다'는 원리까지는 아직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지난 달에는 가족들의 생일이 많아 케익의 초를 끄게 될 때가 몇 번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가 "소율이가 꺼 봐."라고 말하지만 채 1분, 아니 30초도 기다리지 못하고 누군가 뒤에서 훅 불어 버리곤 했다. 그리고는 함께 박수를 쳤다. 우리는 애초에 그럴 거였으면서 소율이에게 왜 직접 해보라고 했을까? 그 누구도 소율이가 5초만에 초를 끌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 아닌데 말이다. 소율이는 혹시 무언가를 스스로는 못 한다는 인식만 강화된 것은 아닐까? 이러다 보면 언젠가 혼자 해보려는 시도가 불필요하고 재미없어지지는 않을까?


못하면 엄마가 해 줄게.


비단 촛불 뿐만이 아니다. 소율이는 나와 함께 매주 여러 곳에 놀러가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있다. 육아휴직 동안 시간이 있을 때라도 최대한 함께해 주자는 생각으로 각종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산, 강, 키즈카페, 문화센터 등 다양하게도 다닌다. 그러나 그 모든 프로그램이 영유아들을 위한 것들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소율이의 수준에는 완벽히 수행해 내기엔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래서 나름 쉬운 것들 위주로 체험하게 하고 어려워할 경우 내가 옆에서 도와주곤 했다. 그러나 정작 소율이가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나는 무슨 해결사의 느낌으로 너무 빠르게 개입하고 쉽게 모범을 보여 주었던 것 같다. 소율이는 자기가 못해서 엄마가 해주는 과정이 재미있었을까? 어쩌면 내가 '탐색'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소율이에게는 '선행'처럼 느껴지진 않았을까. '어떻게 하는지를 먼저 보여주면 더 잘 따라하겠지' 하는 나의 생각으로 인해, 아이의 시행착오와 스스로 하는 판단의 기회를 방해하진 않았을까. 나는 아무래도 지금까지 충분히 아이를 기다려주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 하루종일 작은 활동 하나만을 붙잡고 있어도, 그럼에도 그걸 성공하지 못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데 나는 왜 그 하찮은 것조차 성공하는 꼴을 꼭 봐야 했을까. 엄청난 속도로 빨리 커버리는 내 아기, 매일 밤마다 부디 천천히 크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나의 행동은 더 빨리 커버리라고 채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율이는 잘 크고 있다. 또래보다 말이 느려 아직 '엄마', '아빠', '멍멍' 밖에 못하지만, 자기에게 소중한 그 엄마 아빠를 위해 장난감 아이스크림도 만들어 주고 심지어 그 중에서 오렌지맛이 먹고 싶다고 하면 주황색 아이스크림을 꺼내 준다. 우리 말을 다 알아들으니 자기도 곧 무슨 말이든 다 할 것이다. 나는 아이의 속도를 지켜주고 싶다. 소율이의 두살 생일케익의 초는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기다려주려고 한다. 언젠가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나 또한 소율이가 나를 기다려 함께 걸어 주기를 바랄 것이다.


 

다음 생일부터는 네 촛불은 네가 꺼랏.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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