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서울상경의 드림을 이루며 다이어리에 적었던 소망리스트 중 ‘서울에서 살기’ 글자 가운데를 자신 있게 밑줄을 그었다.
비록 한 줌의 빛줄기만 허락되는 지하에서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방한칸이었지만 이 몸은 일단 서울에서 살고 직장도 다니고 있으니 괜찮았다. 내 주변엔 서울에서 살아보겠다고 상경한 고향친구,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까지 듬성듬성 서울지하철 노선을 거점으로 어딘가에 살고 있었다. 평일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엔 친구들을 만나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린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겁 없이 살았다. 서울 월세 무서운지 몰랐고, 카드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신용카드를 쓰는 것은 명품백 하나쯤은 들고 다니는 것처럼 너도나도 엣지 있게 긁어댔었다.
오로지 월급으로 다음 달을 연명해야만 하는 통장잔고에 따른 시한부였지만, 우린 카드회사의 노예로 점점 끌려들어 갔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서울에서 얻은 것은 불금병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벗어난 독립의 맛은 내 멋대로의 생활이 아닐까. 누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몇 시에 들어올 거냐 밥은 먹었냐고 묻는 사람하나 없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데로 살면 되는 독립을 만끽했다.
5일 근무제가 도입하기 전이라서 토요일도 회사를 가던 시절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학교 다닐 때도 오전수업만 참으면 된다는 생활리듬을 이미 겪은지라, 토요일 오전근무만 참으면 된다라는 인내심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버텨주었다. 그래서 불금은 불금답게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홍대, 신촌에 있는 클럽이나 공연을 즐겼다. 본격적인 밤샘놀이가 가능한 토요일은 강남, 압구정, 신사동, 이태원클럽등 유명하고 힙하다는 장소들을 일주일에 하나씩 투어 하기 시작했다.
서울애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호기심이었지만, 정작 놀다가 만나는 애들은 하나같이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이 많았다. 서울출신들은 다들 어디서 노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티 나게 어디 명찰이 붙은 건 아닌지 싶었다. 우린 촌스러움을 가리고 싶어 잔뜩 화장을 하고 온갖 액세서리로 정성껏 꾸며댔다.
그러나 살다 보니 서울 것들은 우리처럼 화려하게 하고 다니지도 않고 핫플레이스를 굳이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냥 계속 서울에서 살았으니 호들갑할 것 없는 익숙한 생활인 것이다. 한강유람선과 63 빌딩, 남산을 안 가본 토박이들도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한강은 그냥 집 앞 강일 뿐이며. 매일 남산을 지나가며 학교에 다녔으며 63 빌딩은 지하철 타고 지나갈 때마다 보는 그저 하나의 풍경이다 보니 가볼 생각을 못했단다. 원주민과 관광객의 차이였다.
서울에 가기 위해서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하고 간절함을 담은 꿈보따리를 들고 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서로 의지하기 위해 우린 더더욱 촌스러움을 티 내면서 뭉쳐 다녔다.
아침이 밝아오도록 놀다가 새벽에 귀가한 일요일은 지하 방한칸에서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뒤집어진 바퀴벌레처럼 뻗어 잤다. 빛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의 특징은 암막커튼을 치고 자는 것처럼 숙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햇빛이 없으니 아침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어 누구 하나가 먼저 일어나 시계를 보고 놀래면서 하나둘 흔들어 깨우는 걸로 기상이 시작된다.
"야야 일어나, 1시야."
그렇게 일요일은 오후가 되어있고 서로 얼굴을 보면서 새삼스럽게도 놀란다.
어제 붙인 눈썹은 반절 떨어져 있고, 다음에 또 써야 하기 때문에 한쪽은 어디 갔는지 이불을 들썩거려 찾아본다. 아이라이너가 번져 눈두덩이가 시꺼멓고 넓게 번져있다. 베개에는 스모키 화장의 흔적들인 짙은 아이섀도들이 반짝이고 있다. 마스카라를 심하게 떡칠했더니 속눈썹이 딱딱해져서 만지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다.
뽑힐 것 같다. 렌즈도 급하게 빼고 뚜껑을 닫지 않아 딱딱하게 굳어있다.
머리는 컬이 풀어지지 말라고 발라둔 왁스 덕분에 자고 일어났어도 그대로 고체가 되어 굳어져 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넣은 실핀들은 가시처럼 돋아나 있다. 손은 부어서 반지는 빠지지 않는다. 귀걸이 한쪽은 어디서 빠진 건지, 찾아도 없다.
어제 얼마나 발바닥이 땀나도록 무대를 비벼대며 놀았는지 스타킹에서 풍기는 발냄새는 창피하다.
가죽부츠와 땀난 발이 만난 배합은 동물원 냄새가 난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인지 동굴로 도피한 것이 알 수 없는 지하의 어둠 속에서 우린 반나절이라는 휴일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다시 일어난다.
현관에 벗어놓은 우리의 구두들은 어제의 고단함을 말해주듯 세워져 있는 신발이 하나도 없이 모두 누워있다.
내방엔 친구들이 놀러 오면 입는 홈웨어들이 있다. 이름표는 없지만 방문이 잦은 친구들은 아예 자체 잠옷을 갖다 놓았기에 누구의 상하의인지는 알 수가 있다. 상의는 워크숍에 가서 한번 입고 사진을 찍었다는 회사로고가 있는 티셔츠. 교회여름 수련회에 갔다가 받아온 십자가가 그려진 티셔츠이다. 하의는 고등학교 때부터 입었을법한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준 곰돌이와 별이 그려진 핑크계열의 파자마 바지다.
토요일의 의상은 홈웨어와 사뭇 달랐다.
클럽패션에 맞게 짧고, 타이트하며 화려했다. 노출된 목, 팔, 다리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반짝이 파우더를 발랐고 이불에 묻어 종일 반짝여도 빨아 널을 생각은 안 했다. 온몸에 뿌려댄 향수의 효력은 12시간을 지속하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성스럽게 공들인 꾸밈 장식들은, 집으로 들어온 순간 사라진다.
신데렐라가 구두를 벗고 지하방으로 들어오는 순간 누데렐라로 변신하는 장면이 매주 일어났다. 강남왕자를 만나는 일을 고대했지만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았았으며, jesus love to you 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을 때마다 죄를 씻어냈고, 무수히 많은 별들이 새겨진 바지 속으로 노느라 고단한 몸을 넣고 꿈나라로 갔었다.
배고픈 한 명이 일어나 가스버너에 불을 켜면, 귀신같이 듣고 나도 나도 한다. 라면을 추가해 달라는 소리다. 우린 라면국물을 들이키며 어제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못다 한 웃음도 풀어놓는다.
친구들은 다음 주에 다시 입게 될 홈웨어를 잘 개켜놓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클럽의상을 다시 입고 누운 신발을 찾아 신고 각자 집으로 떠난다.
우리들의 일주일이 끝나는 일요일 늦은 오후, 내일이면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이 오고 월급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턴, 신입사원들의 쥐꼬리만 한 월급이었지만, 야무지게 월세도 내고 놀고먹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