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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Oct 05. 2024

방에 비가 내리고

반포동 지하


우산도 소용없을 만큼 억수로 비가 쏟아지던 날. 나와 S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빗소리가 거세게 들리고 물 흐르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 눈을 떴다.

창문에 빗물이 벽을 타고 폭포 같이 내려오는 게 아닌가.

      

그날은 몇십 년 만에 강남일대가 물에 잠긴 여름장마의 폭우였다.    

  

"S야. 일어나 "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홍수의 실황을 보고 소리부터 질렀다. "어떻게 어떻게. "

옷을 치우고 바닥에 놓인 것을 싱크대 위로 재빠르게 옮겼다.

눈을 떴을 땐 바닥에 이미 물이 차고 창가벽에 놓여있던 행거에 걸린 옷들은 다 젖어있고 깔고 잠들던 이불도 젖어갔다. 빗물은 배수구로 빠져나가지 못하자 창문으로 계속 쏟아 내렸고 순식간에 방은 물바다가 되어 발목까지 차올랐다.


현관문을 열자,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듯 지상에 있던 물들이 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우리가 사는 지하로 빗물이 내려왔다. 우린 겁이 나서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 몸부터 피했다.      

1층도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흥건했다. 물난리에 다들 밖으로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 새벽이었다.

옆집빌라도 옆옆집 빌라도, 강남일대의 도로도 물에 잠겨 차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와 S는 중요한 소지품만 가방에 넣었지만 위급상황에도 우린 챙길게 매일 들고 다니던 가방에 다 들어있었다.

“우린 뭐가 이리도 없냐.”


망연자실하게 가방만 끌어안고 집 앞 슈퍼 지붕아래 쪼그리고 앉아 살다 살다 별일 다 겪는다며 한탄하는 사이에 날이 밝아왔다.  빗줄기가 잦아들고 주민센터에서 준비한 물 빼는 모터가 설치되었다. 여기저기 윙윙 돌아가는 기계 덕분에  배수구에는 물이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아침이 밝아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추었다. 비 갠 후 맑은 푸른 하늘은 속도 없이 뜨거운 햇살을 내리쬐었고 매미가 나를 대신하며 큰소리로 울어댔다.


물난리 소식을 고 친구들이 하나둘 지하방으로 모였다. 물이 흥건히 고인 방앞에서 쓰레받기로 물을 떠 화장실 배수구로 흘려보내는 일을 반복했다. 우리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퍼낼 수 있는 그릇 냄비등을 꺼내 허리를 구부리고 흙탕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된 우린 당장 오늘 갈 곳이 없었다.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한 건 남자친구였다. 다급하게 첫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데 강남일대는 차가 들어 갈 수 없어 결국 버스에 내려 장딴지까지 차있는 물속을 헤치며 걸어서 나에게로 왔다. 오던 길에 전기가 통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나도 지하방에서 자다가 물속에 잠길뻔했다며 서로 살아 돌아온 이야길 웃으며 넘어갔다. 지나고 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지만 황당함을 이겨낼 방법은 웃는 것밖에 없었다.


우린 바퀴벌레를 피하기 위해 옆집이 버리고 간 매트리스를 주워왔었다. 물먹은 매트리스를 본 적이 있는가. 하마가 물을 먹어도 매트리스만큼은 먹지 못할 것이라는 걸 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매트리스를 지하에서 지상까지 꺼내는데 7명이 달려들어 간신히 빼내었다.  

    

물을 빼내는 기계가 계속 돌아가고 밖에는 우리와 같은 이재민들의 젖은 가전제품들이 밖에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나온 분들은 가전제품을 수리해주고 있었다. 우리의 가전제품은 내 오디오, 작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길에 나앉게 생겼다'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보잘것없는 살림살이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있고, 갈 곳 없는 나도, 자존감까지도 길가에 나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젖은 살림들을 하나라도 건저 보겠다며 흙탕물을 씻어내고 말렸다. 없는 살림이라도 살리려 나도 가전제품들이 서있는 곳에 오디오와 냉장고를 세워두었다.


나의 오디오는 서울 올 때 들고 온 유일한 나의 재산이었다.

양 옆에 스피커가 있고 유리 장식장 5단 한 칸 한 칸에 기기들이 각각 들어있었다. 맨 아래는 양옆에 테이프가 들어가는 장비가. 위로는 라디오, CD, 레코드판까지 서라운드를 즐길 수 있는 장식장에 맞춘 오디오 세트였다. 레코드판은 이제 절판되어 바늘은 낡은 채 있었고 가지고 있는 테이프도 옛날노래뿐이고 시디플레이어만 사용하고 주로 라디오만 들었다. 수리해 주는 기사님은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작동이 안 된다고 했다. 아끼던 오디오 세트는 길가에 그대로 폐기물로 분리되었다. 대학입학 선물로 아빠가 전자 매장에 데리고 가서 큰돈 주고 사준 오디오였다. 난 추억이 깃든 물건과 길바닥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오디오와 냉장고도 고장이 났고 작은 서랍장에 거울이 있는 화장대도 버리고, 살림살이라고는 옷과 가스버너, 냄비, 밥그릇만 챙겨 나왔다. 이재민이 된 우린 우선 친구네로 갔다. 그렇게 우린 강남일대가 잠기는 대홍수를 경험하고 바퀴벌레와 인사도 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그 동네를 떠나왔다.


이재민은 모두 지하, 반지하방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상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것인지 뼈아프게 느꼈다.

서울의 혹독함은 왜 하필 내가 있는 강남에 내려서. 취약한 곳, 가장 낮은 곳에 먼저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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