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아파트처럼 같은 모양을 가진 빌라를 flat이라 부르고, 단독주택을 house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어 그림책 중, 옥스퍼드 리딩트리 시리즈가 있다. 주인공인 키퍼가족이 사는 집이 내가 살았던 집의 형태인 flat이었다. 3층건물에 삼각형 지붕이 있고 뒷마당에는 정원이 있어 옆집과는 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flat이 길가에 길게 줄지어 있고, 건너편에는 넓은 정원을 가진 house 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림책에는 마당에서 아이들은 물놀이를 준비 중이고 키퍼엄마는 썬배드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이 있다. 런던은 흐린 날이 많다 보니 햇볕이 드는 날이면 사람들이 마당이나 공원에 타월을 깔고 누워 있는 모습들을 자주 봤다. 그래서 키퍼 엄마가 집 마당에 왜 나와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국은 마당에 나와 타월을 깔고 햇빛을 즐기는 엄마는 거의 없다. 일단 우리나라는 뒷마당이 아니라 앞마당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외국인들은 프라이빗하게 자기 집 뒷마당에서 바비큐와 태닝을 즐기지만, 우린 앞마당에 평상이 있다.
삼겹살을 구워 먹는 날이면, 대문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며 말을 건네는 인사를 모두 감수해야 한다. 대꾸를 하다 보면 밥은 먹었냐고 인사를 하다가, 먹었거나 안 먹었거나 와서 먹고 가라고 굳이 부른다. 그러니 가족들끼리의 식사로 시작되었다가 동네 어르신들의 술자리로 마무리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난 영국의 뒷마당 형태가 아주 바람직한 디자인이라 생각했다. 옆집과의 담도 높아서 철저하게 혼자, 가족과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야외공간이었다.
크리스마스시즌엔 문 앞에 리스가 걸려있고 나무에는 조명장식으로 꾸민 단독주택의 마당은 훨씬 넓고 정돈이 잘 돼 있었다. 영국사람들은 정원관리도 자신의 얼굴과 같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원을 보면 그 집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 만큼, 정원은 영국사람들의 가진 형편과 표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런던의 슈퍼에서는 꽃도 팔았는데, 카트에 꽃을 담는 남자를 보고는 문화적 충격과 동시에 동경을 가졌었다.
내가 지내던 flat의 집주인은 일본인과 이혼 후, 개 덩치만 한 고양이와 함께 혼자 사는 영국남자로 이름은 존 jone 이였다.꽃을 든 영국남자와는 다른 분위기의 존은 이혼 후의 심경을 보는 듯, 그의 집 정원은 그야말로 정글이 되어 있었다.
야생 풀밭처럼 발 디딜 틈 없이 잡초로 꽉 차있고, 담장 키높이의 풀이 곧 넘어가 옆집을 타고 가기 직전이었다. 나는 기대했던 영국 집에 지내게 되어 기쁘다고 생각했으나. 내 방 3층에서 내려다본 정원은 다른 집 정원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도 꽃이 피어있는 정원에서 바비큐를 굽고 영어로 떠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존의 집에 사람이 꽉 찼을 때 붙임성 좋은 가오리가 존에게 지나가는 말로 정원 좀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영어 기초반답게 옅은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 후, 존은 굉장히 신나 하면서 풀 깎는 기계를 돌렸고 감춰져 있던 정원의 단정한 풍경을 처음 목격했다.
그렇게 몇 달을 살았지만, 그때 딱 한번 봤다.
존의 flat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아시아계인 한. 중. 일 이렇게 세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해 있었다.
1층엔 존과 고양이가 살고, 2층 가장 넓은 방엔 중국인 학생부부, 그 옆방엔 일본인 가오리. 3층엔 한국인인 나, 옆방엔 초밥가게에서 일하는 일본인이 살았다.
2층 주방을 공용으로 쓰는 형태로 우린 저녁시간면 둘러앉아 각 나라의 음식을 돌아가면서 요리해 선보였고, 영어 배우러 영국에 왔으니 공용어인 영어로 열심히 떠들었다.
아시아계 사람들끼리 영어로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건 어쩔 수 없는 동양문화의 친숙도였다. 일단 아시아계 사람들의 영어발음은 또박또박 정직해서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리고 한자가 있어서 영어로 표현이 애매한 초코파이 情 같은 단어를 한자로 써서 보여주면 한. 중. 일 세 나라가 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대가 이루어진다.
아시아계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유럽계 사람들과 섞여 서로 짧은 영어들을 구사하려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문장들을 놓치고 아름다운 한국인의 미소만 짓고 있는 내가 많았다. 유럽인들은 같은 기초 반이었어도 영어 단어, 어순등이 자기 나라와 비슷하고 나라가 서로 붙어있어 왕래가 자유로운 게 특징인 만큼 배움도 빨랐다.
그리고 하나같이 말이 많았다. 양보와 배려가 몸에 밴 동양인들에게 그 틈새를 끼어들기란 도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시끄러운 파티에 가면 그저 마시고 춤추다 오는 걸 목표로 해야지 거기서 다양한 인종들과 영어로 대화한다는 건 스피킹보다 리스닝의 트레이닝이 더 필요했다.
그때 알았다 미소도 하나의 언어라는 것을.
한. 중. 일 친구들 중 가장 부자는 중국학생부부였는데, 영국 대학 입학을 준비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우리보다 오래 지내서 영어를 더 잘했으며, 청춘물에 나오는 남녀의 비주얼을 가진 캠퍼스 커플이었다. 우리 중에서 가장 어린 친구들이었지만 인생의 선배처럼 자신들이 치른 중국의 결혼식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둘은 신혼이었고 나와 가오리처럼 직장에 다녀 돈을 모아 런던에 온 게 아닌, 부모의 넉넉한 경제력으로 온 친구들이다 보니 먹는 음식부터 달랐다. 나와 가오리는 라면을 먹으러 주방에 가면 김치와 함께 석화굴에 석류알을 올리고 레몬즙을 짜며 생굴을 먹고 있었다. 바닷가 출신인 난 어릴 적엔 바위에 굴이 붙어있으면 재미 삼아 돌로 깨서 먹었었는데, 굴이 그렇게 고급스러운 해산물이라는 걸 국내에서 몰랐던 사실을 국외에서 알게 되었다.
한국김치가 맛있다며 냉장고에는 차이나타운에서 사 온 종갓집 김치가 항상 중국부부에겐 있었다.
정작 한국인인 나에겐 비싸서 먹지 못한 식품 중 하나였다. 고추장 하나면 충분했기에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김치를 먹지 않았다. 중국부부가 나에게 먹어보라고 건네었을 때, 나는 이미 그 회사 김치맛을 알고 있어 괜찮다고 했다.
말 나온 김에, 한국에는 김치만 넣어두는 전용 김치 냉장고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모두 입이 벌어졌다. 부럽다고 했다. 김장하는 날도 따로 있다고 알려주었다. 중국, 일본 모두 달려들어 김치 담그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나도 사실은 엄마가 담가주는 것만 먹어봐서 한 번도 담가 본 적이 없다며 나중에 한국에 놀러 오면 그땐, 같이 만들어보자고 했다.
대신 한국음식들을 해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부침개, 비빔밥, 김밥, 잡채는 내가 파티를 열 때마다 외국인들에게 선보인 음식 중 하나였다. 가오리는 오니기리를 만들고 중국부부는 딤섬을 만들어 세 나라가 모여 자주 저녁식사를 즐기며 이야길 많이 나누었다. 가오리에게는 한국라면의 세계를 넓혀줬다. 다시마를 좋아하는 가오리는 너구리, 해물짬뽕라면에 눈을 떴고 짜파게티를 끓이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라면을 끓일 때 파와 달걀을 넣는 한국스타일과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법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꼭 김치랑 먹으라고 일러주었다. 가오리는 그 후로 차이나타운에 파는 한국라면을 종류별로 먹어보며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