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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Oct 12. 2024

술로 배운 영어

런던 다락방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도중 취기가 오르면, 나는 한글로 말해도 되는걸 굳이 영어로 말한다.  그 같잖은 버릇은 런던에서 지낼 때  가져온, 물 건너온 술주정이다. 런던에 가기 전에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순하고 참, 이슬하게 살았다.     


백수가 된 나를 위해 친구가 비 오는 날은 삼겹살에 소주라며 밖으로 불러냈다. 취직도 내 맘에도 안되고 고달프다며 하소연을 늘어대며 친구들처럼 나도 소주를 한잔 마셨다.

달았다. 맛있는데? 하며 한잔 더 마셨다. 이번엔 썼다.

밖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내일의 일이 없는 속 타는 마음에 소주 한잔을 더 마셨다. ‘캬 ‘라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소주를 겁 없이 먹고 난 다음날, 호되게 체했다.      


친구들은 출근을 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서랍까지 기어가 반질고리를 찾고, 엄지에 실을 묶고 오른손으로 나의 왼손을 바늘로 실패 없이 한 번에 찔러야 했다. 외로움은 혼자 아플 때 느끼는 감정이라는 걸 배웠다. 객지에서 혼자 독립해 살아간다는 건, 스스로 내 몸을 찔러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존회복본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 후로 삼겹살에 소주는 나의 몸이 먼저 거부했으며, 소주를 누가 권하면 고개를 여러 번 흔들고 손사래까지 보태며 거절을 했다.   

   

유럽은 땅덩어리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오전엔 프랑스, 오후엔 스위스 다음날엔 이탈리아가 가능했다. 사람만 쉽게 오고 가는 게 아니라 각 나라에서 생산하는 맥주의 종류도 다양했으며 무엇보다 맛있었다.

마트에 가면 온갖 종류의 맥주들을 하나씩 사서 맛보는 재미가 들려 가오리와 나는 장 볼 때마다 맥주를 빼먹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고급이미지라 돈 있는 사람들만 먹는 게 와인이라 처다도 못 봤는데, 진열된 와인은 맥주만큼 저렴했다. 와인나라인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바로 이웃나라들이다 보니 술들도 모두 이웃이 되어 슈퍼에 아주 무심하게 놀러 왔다는 듯, 음료수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구경 못했던 치즈, 버터의 종류도 다양했다. 버터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던가. 초콜릿처럼 개별포장되어 있어 편리하게 하나씩 까서 먹는다. 치즈의 맛은 와인의 맛처럼 첫맛은 알 수 없으나 끝맛은 다시 먹고 싶은 듯 오묘했다. 주식이 빵인 나라여서 그런지 온갖 빵들은 또 왜 이리 맛있는지. 빵과 와인의 조합은 한 끼 식사로도 충분했다. 최후의 만찬 식탁에 왜 포도주와 빵이 놓여 있는지 내가 먹어보니 확 와닿았다.

작은 슈퍼에서 파는 비닐봉지에 있는 머핀조차도 맛있었다. 요거트, 초콜릿, 심지어 젤리도 맛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가오리와 방에 앉아서 하리보젤리를 안주삼아 맥주와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취기가 올라오면 가정사, 연애사등 속 깊은 이야기를 했다. 물론 가오리가 나보다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나는 맞장구치는 짧은 감탄사 단어에만 능통했다. absolutely. Sure. Really. Oh my god. So sad. Amaging. Bliliant. Very funny. Grate. Good 등을 골고루 연발했다.

긴 문장을 말할 때면 전자사전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중간에 대화가 끝기면 안 되니 진심 어린 눈빛과 마음의 언어로 친구의 이야길 들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술을 마시며 이야길 하다가 영어는 조금씩 늘어갔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눈빛과 미소, 그리고 따뜻한 포옹으로도 충분히 마음 전달이 가능했다.      


영국의 펍  문화는 우리의 술집 분위기와는 달랐다.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되고 맥주를 들고 서서 먹는다. 음악이 나오면 그냥 움직이거나 모르는 옆 사람들과 이야길 나누기도 한다. 펍의 카운터에서 맥주 이름을 대고 주문하면, 맥주 밸브를 눌러 전용 잔에 넘치도록 담아준다. 맥주를 들고 허리높이의 테이블과 의자에 걸터앉거나 서서 마신다.    

우리나라처럼 4인용 테이블이 일열로 정갈하고 반듯하게 세팅되어 있지 않다. 안주메뉴도 몇 개 없다. 공간과 공간을 남겨두고 원하는 데로 서서 춤주며 먹든, 테라스에 걸쳐서 먹든, 바닥에서 먹든, 카운터 바에 와서 먹든 니들 자유다라고 말하는 인테리어였다.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앉아 같이 응원을 하며 어울린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포켓볼대와 다트, 손축구등이 있다. 9시 정도가 되면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DJ가 있는 곳도 있다. 그럼 술을 손에 들고 그 자리에 서서 춤을 춘다. 서로의 문화와 언어가 다르지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도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따라 해보고 싶었던 어깨를 들썩이며 ’어허‘하는 행동도 자연스럽게 하고, 외국 친구들과 볼에 다가가며 인사하는 것도 하고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며 어깨를 마주하는 포옹도 했다. 처음엔 쑥스러웠으나 영어를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해야 배우고 어울리며 지낼 수 있으니 문법이 맞든 안 맞든, 그냥 막 던졌다. 서로 알아듣기만 하면 되니 배운 걸 써먹는 날이면 그 단어와 문장은 까먹지 않았다.    

  

나의 이런 오버스러운 행동들은 한국에서의 경직된 나를 잊게 했다. 다른 나로 살아보고 싶다는 실천이 환경이 달라지고 언어가 바뀌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니 가능해졌다.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니 문화에서 오는 자유로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 참견하거나 조언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타인을 의식하던 시선, 남의 평가도 없고 나의 경력, 직위, 학력, 나이, 연봉, 가족관계등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도 물을 이유가 없었다. 런던의 생활은 어떠니로 묻고 영국은 어디가 좋다더라, 우리나라는 이래라고 말하며 서로의 다른 문화에 대한 차이를 궁금해하며 질문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 자신감 있어 보였다. 그럼 언제 우리 집에 놀러 와 , 이따 펍에서 만나자 하는 이야기로 시작해 각자 경험한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는 주제로 넘쳐났다. 영어가 능통하다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과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어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일 뿐.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늘어나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다양해진다. 영어는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가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가오리와 나는 계속 외국에서 사는 것을 동경했지만, 비자기간도 다 되었고 이제 남은 돈도 얼마 없기에 우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야 했다. 다시 돈을 모아 여행계획을 세우자며 다짐했다.

한국이 싫어서 유럽을 구경해보고 싶어서 도망가듯 떠나온 여행이었다. 가오리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도쿄의 생활로 서울의 생활로 각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답답하고 막막했다.


우린 앞으로의 걱정은 다 잊고 남은 한 달 동안은 유럽여행을 하기로 했다. 존의 집에 있던 짐을 모두 정리하고 배낭 하나만 들고 여행 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스위스 인터라켄의 가장 높은 호텔에서 일출을 보는 감격스러움에 서로 눈물을 흘리며 꼭옥 안아주었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하기에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었고 고마움이고, 서로의 앞날에 대한 응원이었다.      


공항에 내리면 그 나라 특유의 공기를 느끼게 된다. 한국에 도착하니, 익숙했던 텁텁한 공기가 다시 나의 가슴을 오그라들게 했다. 앞으로 나는 이 나라에서 뭐 먹고 뭐 하고 살아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 나라에 왔지만, 나는 여전히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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