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채집 생활

눈이 오면 코코아

마음채집

by JIA

자고 일어나니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다. 밤새 내린 눈을 아침에 보면 마치 겨울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에게 눈이 왔다는 인사로 잠을 깨우면 아이는 창문 앞으로 달려간다. 눈놀이를 할 생각에 얼굴이 환해진다.


작은아이는 눈이 오면 코코아를 꼭 창문을 열어두고 앞에 앉아 마셨다. 이불을 어깨에 둘러 몸을 감싸 두르고 뜨거운 머그잔을 손에 들고 호호거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겨울낭만을 연출하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먼저 나온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코코아는 이렇게 눈을 바라보며 추운 데서 마셔야 제맛이란다. 이불을 둘러쓴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동화책 속에 나올법한 장면이다.


아이는 코코아를 마시던 유아기를 지나 초등학생이 된 그 후로도 라면을 쟁반에 올려두고는 굳이 또 창문을 열고 추운 공기를 마시며 라면을 먹는다.

이젠 추운 날씨에 익숙해졌는지 이불은 귀찮다며 덮지 않고 라면을 후루룩 먹고 국물까지 마시면서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고는 허하고는 연기를 내뿜는다. 어디서 본듯하다 싶으니 라면 광고에서 매운 라면을 먹고 땀을 흘리며 국물을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는 장면이다.


그렇게 감성적인 아이는 이제 과거가 되었다. 아이에게 빗소리를 듣게 하려고 문을 열면 춥다고 당장 닫으라고 시큰둥하게 말하고 눈이 왔다는 말에도 '응' 한마디다. 베란다에 달린 고드름을 조심조심 따서 냉동고에 얼려두고,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창가에 두고는 아침에 눈을 뜨면 확인을 하고 하얀 눈을 누가 밟기 전에 밖으로 나가 눈 위에서 누워 뒹굴고 구르던 아이였다.

계절의 낭만조차 사춘기 아이에게는 귀찮다. 침대에 몸을 스티커처럼 붙이고는 핸드폰을 보는 게으른 디지털낭만에 익숙해지자 창밖에 내리는 눈과 비는 그저 오늘의 날씨에 불과할 뿐이다.


난 작고 귀엽던 이불속에 묻혀있던 아이의 뒷모습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불러도 대답 없이 넓은 등만 드리운 뒷모습만 자주 본다. 눈이 오면 몸을 폴짝거리며 급한 마음에 신발도 거꾸로 신고 나가려 했다. 다시 불러 모자며 장갑등을 꼼꼼히 다 챙기고는 썰매를 챙기고 만발의 준비를 다한다. 눈이 오면 기다리는 내내 나의 발이 꽁꽁 얼어도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내일이면 금세 녹아버릴 눈이니 오늘 맘껏 놀게 할 생각이 먼저이다. 그렇게 눈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아이는 이젠 아침에 눈이 오면, 자전거 못 타고 걸어가야 하네 하며 십분 일찍 집은 나선다. 장갑을 챙겨주니 괜찮단다.


자식 키우는 것도 모두 한때라는 어른들의 말이 뭔지 알 것 같다. 한철마다 작아지는 옷을 보면서 실감하지만 자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니 내가 다 서운하다.

낭만이 사라진 듯 하지만, 눈과 비대신에 친구들과의 낭만이 자리하고 있는 사춘기가 되었다. 친구들과 눈과 비를 맞으며 걷고 미끄러지면서 깔깔댄다. 학창 시절의 낭만은 친구들과 함께 맞았던 눈과 비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서운한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글썽거리기도 하고 짜증 내는 말투를 하면서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귀찮고 게으르고 무거운 몸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지만 마음은 뽀드득 거리는 눈의 소리같이 조심스럽고, 쏟아지는 비처럼 촉촉한 여린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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