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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Apr 15. 2018

아름다운. 너


떨리는 손, 헝클어진 머리로

노래를 부르던

소심한 말투, 복잡한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던

아름다운. 너


 그녀를 만난 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우리는 가족의 지인에 지인쯤으로 뭘 하고 사는 사람인 줄 만 간단히 아는 뭐랄까 ... 주변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연락을 했다. 좀 만나자고. 나에 관해 더 알고 싶다고 했다.

 



 반갑지도 않지만 피하기는 더 어려운 가족, 지인들의 ‘노래 한 곡’ 요청은 늘 나를 당황시키는데, 그것이 어르신의 요청 일 때는 특히나 곤란스럽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초대받아 다과 하는 자리에서 나는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채 떼 지도 못한 채 양파 냄새를 풍기며 나의 곡 두어 개를 불렀다.  

그때 그녀가 나를 보았다.


 몇 개월이나 지나고 같은 모임에 초대되었을 때 그녀는 본인이 만든 곡을 가지고 왔다며 휴대폰으로 녹음한 피아노 반주를 틀어두고 그 위로 노래를 얹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면서도 그녀는 노래를 끝까지 다 마쳤다. 그때에 나는 그녀의 첫 번째 아름다움을 목격했다. 바들바들 떠는 채로 쥐어져 있던 그녀의 작은 수첩. 그걸 꽉 잡은 손가락 끝. 피 몰린 손 끝만큼 힘주어 부른 긴 노래와 노래의 끝. 그것들이 나는 너무 순수하게 느껴졌다. 하늘처럼 파란 벽에 피워진. 잎은 가늘지만 줄기가 두꺼운 들 풀 같았다. 벽 앞에 피었지만 절대로 벽에 등을 기대지 않는. 씩씩한 들 풀.





 그녀는 수수한 색상의 스웨터에 빗질이 덜 된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였다. 우리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를 뚜벅뚜벅 걸으며 별로 의미도 없는 상점 구경 담을 나눴다. 그러다 그녀가 에반게리온을 좋아해서 오십 번이나 보았고, 주요 대사 정도는 단단히 외워두었다는 것과 일본산 장난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친김에 우리는 지나는 길에 발견된 작은 장난감 가게에 들어 작은 피규어들을 구경했다. 나는 그렇게 작은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 본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내게 엄지 손가락만 한 헬로키티 도장을 선물로 사줬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헬로키티는 칭찬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무표정이었지만 어쨌든 도장엔 “참 잘했어요”라고 둘러져 있었다.  


 그녀의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나서 나는 약간의 수소문을 통해 그녀의 그림을 찾아봤다. 가장 인상적인 그림은 커다란 깔때기 위에 달이 떠있고 아래는 시들은 화분이 있는 그림이었다. 색감이 밝고 따듯해서 마음에 꼭 들었다. 다른 그림은 공학 도면 같은 형식의 복잡한 그림이 많았는데 한 눈에 보아도 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림들이었다.



 그녀의 강력추천으로 간 회전 초밥집은 또 아주 작았다. 네모난 2인용 테이블 서너 개가 있고 한쪽으론 커다란 회전식 도르래에 겨우 몇 좌석이 있었다. 우리는 유혹적인 날 생선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초밥을 골라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잘 먹었다. 달콤하고 미끄러운 데리야키 소스가 올라간 장어 초밥, 날치알이 톡톡 박힌 마요네즈와 양파가 듬뿍 올라간 구운 연어 초밥을 가장 좋아했다. 그녀는 말할 때는 입을 작게 벌리지만 초밥을 먹을 때는 아주 시원하게 입을 벌렸다. 나는 매끈한 흰 살 생선 초밥을 주로 먹었는데 그녀의 계속된 추천으로 장어와 연어 초밥도 두 개씩 더 먹었다. 우리는 열댓 접시를 다 먹고 배를 탕탕 두드리며 나와 지상 커피숍으로 향했다. 무언가 같이 먹는다는 건 그만의 독특한 유대감을 갖게 한다. 동물적 행위에 노출이랄까. 밥을 같이 먹음으로 우리는 서로의 습성에 관해 짐작하게 된다. 같은 인간임을 확인한다.


 뜨거운 커피를 놓고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관해 짧은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눈썹이 들썩들썩 움직이는 것이 꼭 눈으로 나의 말을 기록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휴대폰으로 촬영한 본인의 작품 몇 개를 천천히 보여주고 내가 궁금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림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일단 내가 눈으로 찜해두었던 그림은 과천과학관에 전시 중인 작품으로서, 우울한 식물에게 달빛을 모아주는 깔때기를 설계한 것이라고 했다. 내가 ‘왜 해가 아니라 달인 지’ 물어보았더니 그녀는 말을 잘 골라 나의 눈을 보며 말했다.


“... 해 보단 달빛이 은근하니까요. 우울한 것에는 은근함이 필요해요.”


다른 작품들은 스케일의 차이를 두고 대게 구조적, 건축적인 그림이 많았다. 어떤 정렬이나 순환에 관한 그림들, 이를테면 사람들의 감정에 따라 날씨를 만드는 기계 라던지 미세 세포의 건축적 단면이라던지 ... 주제가 복잡하여 알아듣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그 자체로 좋았다. 작품 속 장면은 묘사보다는 설명에 가까운 느낌을 주었다. 모든 것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자체로 너무나 완성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 점 한 점을 느리고 자상하게 설명하면서 내가 질문하면 말을 잘 골라서 대답해 주었다. 그사이 나는 그녀의 두 번째, 아니 여러 번째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중이었다. 커피는 식었다. 하지만 찻잔 속 뜨거움이 우리 사이엔 흘러넘쳤다.


“잔디 씨가 외로워 보여서 제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그림들이 꼭 잔디 씨가 만드는 음악에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마음으로 그녀의 안부를 물어본다. 친구가 되어주겠다던 그녀는 곧바로 사라졌다. 내가 받은 그녀의 마지막 카톡에는 자신이 미국에 가서 아인슈타인이 풀지 못했던 통일장이론을 풀었고 집 앞에 외신 기자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는 중이라고 적혀있었다. 물리학에 심취했던 그녀는 수 많은 설계와 너무 많은 상상 때문에 사실은 없는 사실들을 겪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좀 아프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녀가 단지 많은 것을 위로하고 싶어한다는 것만을 알았다.  나를, 우울한 식물을, 실망스러운 세상을.


나는 이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한국에 있을까? 아니면 정말로 미국에 있을까? 그녀는 아직도 가끔 고속터미널 지하 끝에 있는 회전 초밥집에 가서 장어와 연어 초밥을 먹을까, 아직도 이따금 에반게리온을 보면서 대사를 읊을까...


그녀와 그녀의 그림을 떠올리며 노래를 지었다. 그녀는 따듯하고 복잡한 사람이었다. 순수하고 자연적인 사람이었다.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벽 앞에 피었지만 절대로 벽에 등을 기대지 않는. 들 풀 처럼 겹겹이도 아름다운 사람.



해보다 은근한 달 빛을 모아

우울한 식물에 모아주자 하던

아름다운 너.  


반짝이는 맘, 벅찬 가슴으로

세상을 그리던

사실은 없는 사실들을 말하며

행복해하던

아름다운. 너




글. 신잔디

사진. 신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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