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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May 05. 2018

사월 끝날의 일기

 봄이 노랑 꽃가루로 되어 몸 깊숙이 들어오는 때, 마지막 미음 받침 만을 남겨둔. 오지 않을 것 같던 나의 여행과의 작별의 날.  


 푸르고 초록인 블타바 강물이 죽음처럼 검게 될 때까지 나는 천천히, 깊게 걸었다. 무엇이 나를 변하게 만들고 무엇이 나를 나아지게 만들었는지를 면밀하게 숙고하면서. 많은 작은 일과 몇 가지의 큰 일을 겪었지만 나는  몇 걸음 만에 펼쳐지는 강의 옆면과 맛 좋고 값이 싼 맥주로써 많은 어두운 마음을 씻었다. 매일매일 몸 안에서 솟구치는 말을 받아 적기에 모자랐던 하루들, 나는 아무대서나 많은 노래를 불렀다. 


 허나 며칠간은 눈에 어른거리는, 봄에 죽어버린 벗과 개에 관한 지독한 슬픔으로 내 속에 말이 일지가 않더라. 나는 긴 말을 피해 며칠을 지냈다. 무감정한 일과를 치르고 이불 안에 도착하여 쓸쓸히 하루의 껍데기를 벗었다. 글 쓰기를 좋아하는 아침이 오면 아무런 말이 안 적힌 수첩에 빼곡히 채워지는 햇살을 보면서 나는 밤보다 깜깜한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모든 슬픔이 염려로 이사를 했다. 나는 애를 써서 강가를 거닐고 (초록을 찾을 때 까지) 긍정을 탐험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금새 오늘을 맞았다. 



 여행은 나의 수 많은 마음들을 있어야 할 자리로 정돈해 주는 ‘정리 도우미’ 인 것 같다. 완전히 정처가 없는 곳에 놓여서 나는 스스로를 물색하게 되었다. 첫 달은 많은 과거와 걱정과 후회 속에 아직 내 마음이 머물러있었고 둘째엔 차분한 공허감과 무엇이던 써서 채워내려는 의지가 일었고 셋째엔 지치지 않는 용기와 단순함이 출산한 여유 속에서 더이상 긴장하지 않고도 나를 바라보았다. 2014년에 쓴 아무도 안 좋아하던 내 노래 중에 ‘나는’ 이라는 단순한 노래가 있었다. 


나는 나를 알고 싶은 사람 

나는 내가 너무 알고 싶어서 

오늘도, 당신을 보네 

나는 깊이 없이 사려 깊은 사람 

단 한가지 진짜를 알고 싶어서 

오늘도 그저 당신을 보네 


그때에 나는 내 안의 사는 많고 다양한 나를 감당하기가 좀 어려웠는가 보다. 단지 비추어지는 강렬함을 가졌기를 한사코 열망 하였나 보다. 그리하여 나는 수 많은 ‘당신’의 눈에 비추어진 상으로 나를 탐험하였고 관계의 망에 걸러진 나를 눈 여겨 보았다. 나를 많이 오해했던 시절. 지금 돌아보면 20대는 내게 미안한 일이 많았다. 무모하고 부정직했다. 하지만 으레 있어야만 했던 시간이라 여긴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어떤 후회도 미움으로 치워버리지 않고 천천히 받아들이고 싶다. 미래를 재단 할 도구로서 나의 거칠던 이 십대는 그만의 거친 역할을 해 낼 것이다. 그러니 결국 과거의 혼돈과 방황도 미래 안에 고이 뉘일 자리가 있다. 



 90일간의 나의 이 독립적인 시간들은 나에게 무엇을 빼고 더해야 할지 일러주었다. 오래된 거리와 짙푸른 하늘과 공간 있는 시간을 공책 삼아 쓰여지던 고찰들. 나는 매일 그것들을 쓰고 삼켰다. 뒤늦게 나의 삼 십대를 축하 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고대하면서 나는 사실은 내 속을 여행하였다. 또한 벗들의 죽음을 통과하면서 나는 결국엔 나의 생을 조금 더 사랑하였다. 



글. 신잔디 

사진. 신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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