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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Oct 06. 2018

잔디와 코스모스와 엄마의 의도

EP앨범 가사집으로 인쇄될 '엄마의 의도'의 이미지컷 / 제주의 푸름


 내가 두 살때. 흔들리는 봉고차 속에 엄마와 나와 아줌마들이 담겨 코스모스길을 흔들 흔들 지나가고 있을 때. 엄마 허벅지에 두 발 을 트고 앉아서 두 살의 내가 코스모스를 바라보고있었다. 우리는 꽤 먼 곳에 봉사를 하러 가고 있었다. 가을이 올랑- 말랑- 하늘을 높이고 낮추며 마음을 훔치는 때, 땅이 그녀를 환영하여 꽃으로 맞이하는 때. 엄마가 딸을 가진 엄마로서 나는 엄마를 가진 나로서 두번째 가을 꽃을 맞고 있던 때. '엄마, 엄빠' 밖에 못하던 내가 갑자기 손뼉을 짝 치며 "아름답다-!"하고 소리쳤다. 엄마와 아줌마와 봉고차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 그 소리를 쌩쌩하게 기억했다. 일화를 들은 날부터 나는 코스모스가, 어쩌면 가을이 내 말을 틔웠다 여긴다.


 나의 이름은 자연도 나무도 아닌 잔디인데, 엄마의 의도이다. 엄마는 처녀 적 부터 딸을 가지면 잔디 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했다. 어느 계절도 비바람에도 가만히 푸른 잔디가 좋다고 했다. 나는 과연 비바람에도 가만하게 푸른 사람이 될 수가 있을까? 엄마의 의도처럼. 따라가기에 좀 벅찬 이름, 하지만 그런 건강한 희망을 가진 이름. 그걸로 좋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봉고차 안에서 얼마나 놀라웠을까? 자연에의 의도로 지은 새끼이름, 다리를 통통 들어올리면 튀어오르는 내게 잔디야- 잔디야 하다가 그 잔디가 자연을 보고 못 하던 말을 토해 냈을때-!


 이런 마음으로 지은 노래가 '엄마의 의도' 이다. 울창한 캘리포니아 시골 한자락에 있는 오래되고 조용한 마을, 이모부가 매일매일매일 티브이 앞에 앉아계시고 이모는 이모부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잔소리를 하시는 바로 그 곳 거실에 앉아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 편곡과정을 거치며 많은 변화를 맞았지만, 그 날의 아늑함이 더 잘 표현된 것 같아서 만족한다. 나 이 곡 정말 오래동안 부르고 싶다. 누가 이름을 물을때, 차를 마실 때, 누군가의 거실에 앉아서. 오래동안 엄마의 의도를 말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는 기분을 이야기로 만들어 노래 부르는 신잔디 입니다.

2년간의 느린 준비 끝에 11월 9일 첫번째 미니앨범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살면서 주워담은 것들을 버무려 읊어놓은 곡들이 정말로 세상에 튀어나온다는 것에 온통 설렙니다. 듣고 또 울리며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행복을 참 기대하고 있어요.


저의 두서가 없고 서투른, 하지만 저만에의 어떤 과정에 있는 이 글들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려요. 소속사 없이 혼자서 음반을 만들고 홍보하려니 막막함이 앞서지만, 이 또한 저만의 방식으로 상대하기로 합니다. 구독해 주시고 이따금 댓글도 달아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에 많은 힘을 내어 무엇이던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 앨범에 관한 여러가지 뒷이야기를 차근차근 기록 해 두려고 해요. 제가 겪은 경험과 파장으로의 감정, 생각들이 비단 저희 것 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혹은 모두의 것 일지도 모른다는 위로가 저의 만듦의 시작입니다. 아직은 보여드릴게 많지 않은 새싹이지만, 기대를 빗물처럼 먹고 자라는 그러한 새싹입니다. 저의 소극적 행보를 느리고 재미있게, 지켜보아주세요. 감사드립니다.




글, 사진 신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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