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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Oct 24. 2018

바다와 낮달과 건포도도 입김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모아'의 이야기

 나의 이모, 엄마의 언니는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마리나'라는 동네에 살고 계신다. 나는 이년 전, 서른을 맞아 이모 댁에 놀러 갔다. 그녀를 만났고, 무언가를 두고 혹은 가지고 돌아왔다. 지난날 되새겨보니 내가 그녀와 나눈건 단순하지만 농밀했던 정말에 우정이였다.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그랬다.


이모댁 아파트 단지

 이모는 도통 혼자 외출을 못하게 하셨다. 영어가 유창하지도, 지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여조카를 혼자 외출하게 하는 걸 못내 불안해하셨다. 몇 일째 조르고 졸라 겨우 '홀로 외출할' 허락을 얻어낸 당일 날 아파트에서 총기사건이 발생했고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금 홀로 외출금지령에 놓이게 됐다. 평소 여행도 혼자 다니고, 혼밥도 즐겨하는 나로서는 여간 답답한 처사가 아니었지만, 마음이 위약하신 이모를 최대로 배려하고 싶었다.

 

 하여 내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하고도 긴밀한 자유는 바로 이웃집 할머니와 바다로 산책을 나가는 일이었다. 이모 댁은 30분만 걸어가면 'Cail Beach'로 이어지는 조용한 바다 마을이었는데, 바다까지 차를 타고 가면 5-10분이지만 걷기에도 썩 나쁘지 않은 거리였다. 이모는 할머니를 '30여 년 전 이모가 처음 미국에 이민 왔을 때부터 한 동네를 지낸 한국인 할머니로,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모의 엄마)와 동년배신 데다 인상이 묘하게 닮아 한눈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분'이라고 소개하셨다.


 94세 이심에도 나보다 더 씩씩하게 걸으시는 건강한 최 할머니는 오늘도 익숙하게 이모 댁 문을 두드리신다. 그러면 나는 재빨리 내려가서 문을 열어드리고, 할머니의 코트를 받아 의자에 걸어드리고, 우유를 꺼내어 냄비에 데운다. 그때즘 이모가 내려오셔서 과일과 치즈가 들어간 무슬리를 제조하시고, 할머니는 티브이 보는 중인 이모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신다. (우리 이모부는 늘, 항상 티브이를 보고 계시기 때문에 이 같은 수순은 잘 변하질 않는다.) 우유가 끓으면 나는 오래된 커피머신으로 삐걱거리며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라테를 만든다. 우유를 끓이면서 생긴 껍질 막이 컵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까만 물에 흰 그것을 붑고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젓는다. 내가 스푼을 내려놓으면 할머니는 의자에 앉으신다. 우리는 모닝커피를 마신다.


 처음 할머니와 걸을 때엔 별다른 대화 없이 걷기만 했는데, 나는 일단 밖으로 나와 걷는다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꼈다. 둘째, 셋째 날엔 해변으로 가는 길에 사촌 형제들이 다니던 모교들과 각종 공공기관의 역할에 관해 조금씩 설명해 주셨는데 이야기를 듣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할머니는 유머감각이 대단하신 데다 눈치까지 빠르셔서 센스 있게 상대방을 배려하며 이야기할 줄 아시는 멋진 분이셨다!) 

바다로 가는 길, 짙은 하늘과 공원의 독특한 색감이 '지구'를 연상케 한다.


 크고 선명한 낮달을 등지고 20분간 걸으면 해변이 나온다. 그러면 할머니는 수고했다며 건포도를 주셨다. 내가 아무리 강권해도 한 알도 안 드시는 것으로 보아 1) 건포도를 원래 안 좋아하시는데 날 위해 구매하셨다. 2) 건포도를 원래 안 좋아하시는데 누군가가 선물로 몇 박스를 줘서 받아두셨다. 3) 건포도를 좋아하셔서 구비하셨지만 내가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중 한 가지 이겠지만, 정말로 절대로 한 알도 안 드시고는 다 주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건포도를 안 좋아한다는 것인데, 왜인지 할머니께 "할머니, 저 건포도를 안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기 싫어 그냥 받아먹었다. 남기지도 않고.


Cail beach, 할머니와 나의 그림자, 할머니가 주신 건포도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꼭 아파트 놀이터에 들러 종아리 스트레칭을 했다. 허리춤 오는 철봉을 잡고 몸을 뒤로 젖히며 종아리를 풀어주는 동작이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걸을 수 있었다. 산책도 스트레칭 타임도 끝나면 나는 할머니를 대려다 드린다. 할머니가 사시는 아파트 주민들은 처음 몇일간은 궁금반 의심반의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만 두세 번 갔더니 금세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그것에 괜스레 뿌듯하여 일부러 어디 인사할 이웃님 없나 한 번씩 두리번거리곤 들어가곤 했지. 작고 포근한 할머니 댁이 난 좋았다.

늘 따듯했던 할머니댁 거실

 할머니는 내가 오면 늘 계피 사탕이나 생강차 같은 소소한 먹을거리를 내어주시거나, 이모 댁에서 무언가 받아두셨다가 씻어둔 깨끗한 그릇을 돌려보내시곤 했다. 그러다 좀 독특하다고 생각 한 점은 할머니께서 본인의 개인사에 관해 거의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인데, 그 점이 나에겐 강렬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할머니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선호하시고, 물음을 받으면 친절하게 답하되 늘 짧고 단순하게 설명하셨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으시지만 우리는 충분히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다 입김이 파래 한 겨울이 왔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다 되었다. 마지막 주에는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져 우리는 산책을 가지 못했다. 할머니 코트를 받을 때, 우유를 끓일 때, 대려다 드리는 길가에 피워지는 우리의 입김을 볼 때, 나는 이 순간이 나의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시절이 될지 예감했다. 순리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리는 것. 시간. 이처럼 서글픈 순리가 또 어디에 있나.


 이 먼 곳, 내가 다시 이 곳에 돌아왔을 때도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침울한 물음으로 나는 곡을 지었다. 함께 걷던 바닷소리와 크게 뜬 낮달, 연약한 할머니의 살결, 입김 같은 시간의 야속함을 담았다. 기록을 위한 의지도 담겼다. 노래는 내가 가장 많은 감각으로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며 가장 오랫동안 할머니를 느낌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같이 걸을 수가 없기에, 더 애틋하게.





그리운, 시간이 아쉬운 분이 있으신가요? 같이 듣고 싶습니다.

11월에 발표될 음원을 기대해주세요 :)



글. 사진   신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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