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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Mar 16. 2019

웃지도 말하지도 않는 시간

빛이 튕겨오는 봄

 나는 어려서부터 잘 웃고 많이 말하고 부지런히 어울렸다. 사람들은 나의 친절함과 사려 깊은 말솜씨를 좋아했다. 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유도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사실 재능이라기 좀 거창한 것이 그건 그냥 상대에게 엄청 최선을 다 하기만 하면 되는 크고 단순한 노력만 필요했다. 하여간 나를 지치게 하는 재능이었다. ‘좋은 인상’에 과몰입된 나는 청소년기 슬프게도 관계 안에서 정체성을 찾아 먹고 지냈다. 사소한 평판에도 잔뜩 부풀고 쭉 쪼그라들었다. 좋은 땐 지나치게 좋아 잠을 못 자고 우울할 때는 지나치게 우울해 잠을 찼다. 조울은 나를 무모하거나 유약하게 만들었다. 내 청소년기에 SNS가 유행했다면 나는 아마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관계는 이따금 대체 불가능한 삶의 이정표로 되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20대 중반까지도 사실은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 못 했다. 자주 혼자 있으려면 어쩔 수 없이 좋은 관계를 위해 엄청 최선을 다 하는 일은 포기해야 했는데 그게 안됐다. 사는 건 어째서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결국에 나는 치이고 뿌셔져 가루로 돼서야 내가 이거 제대로 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더 많이 혼자여야 한다는 것.




낯설고 어색한 그대로의 느낌

 익숙한 길 보다 나는 낯설었던 길을 더 잘 기록한다. 기억도 마찬가지, 잘 기억 안 나는 희미한 기억은 내 멋대로 꾸미는 재미가 있다. 가끔 부리는 내 식대로 에 기억 속 거짓말들. 아무도 진짜인지 못 가리고 나 조차도 못 가리는 불투명함. 영원한 비밀에 과거들, 사소하고 너무 작은 것들을 꾸미는 기록의 과정이 나는 놓지 못하게 좋다.


선물로 받은 이쁜 수첩은 친밀한 벗이었고 친 오빠가 고터 출신 부츠는 훌륭한 무기였다. 맥주는 물론 매일의 연료였다.



웃지도 말하지도 않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

 매일매일 혼자인 시간이 앞에 펼쳐지자 나는 며칠만 당황하고 며칠 만에 나와 큰 친구가 되었다. 심심함이 주는 적막은 적응은 좀 안됐지만 말 못 하게 편안했고 웃지 않고 말하지 않는 날 안에서 나는 이전에는 잘 못하던 오래 집중하는 방법을 많이 단련했다. 입으로 내는 말 아닌 마음으로 읊는 말을 많이 하면서 시도 때도 두서도 없는 글과 음악을 썼고 가끔 사람들을 보면서 웃곤 했지만 최소한으로만 그랬다. 웃지도 말하지도 않는 날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거의 배우다시피 알았다. 내 마음과 더 적합한 표현이 없을까, 그래 나는 그걸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은 정말에 성공이었다.



어딘지 모르는 강가에 발을 널고 앉아 있자니 봄이 빛으로 왔다. 강이 물결을 비추면서 튕기는 빛을 내가 맞았고 그러면 내가 빛났다. 새들은 고요하고 부지런하고 한 번에 여러 곳을 보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새를 보면서 그렇게 사는 것도 좀 피곤하겠다 얘야, 하고 생각했다. 그날은 감사한 사람들도 떠올리지 않고 그냥 나와 봄과 강가를 느꼈다. 웃지도 말하지도 않는 반짝거리는 시간. 빛이 내게로 오는 날들이었다.


미치게 빛나는 물결
뒷짐을 지고 지나가는 새는
내게도 물 밑 발버둥을 들키지 않았다.

나는 강가에 앉아
좋아하는 걸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걸 생각하면서
봄을 났다.

꿈에서 네 살 곳을 적으라고 하면
나는 쎄게 '강가, 그리고 강가'
더하고 빼고 어쩔 땐 죽은 것 같은
한 번은 미치게 빛나는 물결

좋아하는 걸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걸 생각하면서
봄을 났다.


그날의 음악
<Dreamers Circus - 'Fuglsang Jig'(2015)>

덴마크 민속 음악 기반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3인조 연주팀 '드리머스 서커스'의 'A Little Symphony(2015)' 음반에 수록된 곡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음반 중 가장 좋아하는 곡 이기도 해요. 낭만적인 멜로디는 중반부로 거쳐가면서 점점 활기를 띄우더니 후반부에는 아주 경쾌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곡입니다. 바이올린과 시턴의 주고받는 리듬감과 아코디언의 매력적인 멜로디에 오늘을 맡겨보시기를 바라요.




'웃지도 말하지도 않는 시간'

글. 사진 신잔디


매주 토요일 아침 11시 새로운 에피소드가 발행됩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11시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글과 음악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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