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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Apr 20. 2019

신잔디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

 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 생각하면 불꽃처럼 매진하여 끝을 보고야 마는 대단한 성미는 아니고 다만 무언가에 꽂히면 상상에 심하게 잠겨서 결국엔 사건으로 만들어버리는 편인데, 그게 나를 나답게 살게 한다고 믿는다. 허나 삶은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다는 법칙이어서 요즘은 다만 무엇에 팍 꽂히는 일 조차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내 생각엔 어릴 때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우선은 살다 보니 생기는 각종 역할과 책임에 열망이 파묻혀가는 걸 느낀다. 가끔 과다 분출이라도 될 때에 좀 삐져나오기는 하지만 어쨌든 완전히 발가벗겨져 그것만의 덩어리였던 열망의 시대가 차츰 과거로 되는 것은 맞다.




 상상하는 것을 현실로 꺼내버리는 일은 어렵고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해보면 별 것도 아닌 데다 별나게 재미가 있다. 초등생 시절에 나는 꿈과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데에 중증이었다. 같은 반 친구가 꿈에서 어떤 판타지 세계의 공주님으로 나왔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 세계에 갇혀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공주님을 지킬 의무가 있었기에 그 사실을 알려야만 하는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잠에서 깼다. 며칠간 온종일 그 꿈에 관해 상상하다가 그만 친구에게 꿈에 관해 설명하고는 몇 달간 그 친구를 ‘연지 공주’라고 불러버렸다. 친구들은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은근히 잘 받아줬다. 하여간 그게 단지 나의 상상이라는 것을 알아채는데 몇 달이 걸렸다는 사실도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벼운 몽유병도 있었다. 꿈에 더 몰두했을 뿐이다. 자라면서 조절하는 법을 배웠지만, 여전히 상상에 빠지면 길을 가면서도 소리 내어 중얼거리는 버릇은 남아있다. 사고처럼 갑작스러운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에 한동안 그곳 생각만에 빠져있으면서 내가 거기 살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버렸다. 나는 몸과 마음에 무리를 주며 저축했고 다만 살아보는 척 기분이라도 느껴보고자 결국엔 떠났다. 프라하였다. '신잔디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이처럼 자연스러운 양상으로 바뀌어 가면서 여전히 나를 이루고 있다. 지나친 상상은 곧 실제 하는 사건이 되고야 만다. 그러니 나는 모든 상상을 거의 다 현실로 만들 수도 있는, 허! 알고 보니 대단한 사람인 것이다.


 이제부터 얘기하고자 하는 프라하의 한 구석들은 이번 여행을 특별히 특별하게 장식해준 그야말로 장본인들이다. 아무 곳이나 삼 개월은 떠나볼 수 있겠지만 프라하는 내게 그러기엔 너무나 멀고 특별한 도시였다. 처음 프라하를 골랐을 때는 맛있는 맥주와 그럭저럭 괜찮은 물가, 보후밀 흐라발과 그밖에 수많은 예술가가 사랑한 도시라는 낭만적인 타이틀이 물론 전부였다. 체류 한 달이 지났을 때, 나는 나만에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이 곳이여야만 했던 이유. 나는 의무감을 챙겨 탐방했고 좋은 자리를 발견하면 즉시 곡을 썼다. (대가들은 명작을 위해 매일에 아지트를 정해두고 맥주든 압생트든 뭐든 줄창 마시면서 작업했다지! 하는 작정으로) 사실은 나는 완성에 미진한 인간이었다. 하는 건 잘하지만 하다 마는 건 더 잘하는 인간. 해서 나는 느낌을 습작으로 대충 흘기지 않고 되도록 곡을 말끔하게 끝맺도록 노력했다. 못 끝내던 노래들을 꺼내 펼쳐두고 보며 완성을 향한 마음을 꿀꺽 먹었다. 중요한 건 공간이었다. 나는 공간에 심하게 영향을 받는 지라 소위 기분이 안나면 뭔가가 안 되는 성미로, 꼭 맘에드는 곳에 자리라도 트고 앉으면 저절로 되는 일이 많었다. 프라하가 그랬다. 날이 아주 추운 날엔 길가 나가서 뜨거운 와인을 사 마시고 차가운 공원에 가서 갖가지 이유로 추운 그 날 공원에 온 사람들을 보며 그 속에 섞였다. 그러고 나면 낭만적인 기분에 젖어 뭐든지 할 기운이 났다. 날이 따스해지면서 꽃이 피는 날엔 악기를 들고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악기는 짐짝이고 길가에 앉아 맥주만 마시고 오기도 했다. 꼭 마음에 드는 자리에서 매일 무언가 떠올리고 만들고 그 것을 다시한번 바라보는 일상은 그 자체로 상상의 안쪽이었다. 맞아, 나는 그러려고 거길 간 거였다.




 프라하에는 단연 까를교에 대부분의 인파가 집중되어있지만 내 보기에 아름다운 다리는 따로 있다. 바로 까를교 바로 아래 편 국립극장에서 이어지는 다리 ‘레기 교’이다. 레 기교는 아름답고 웅장한 국립극장과 이어져있고 다리 중간에 조그마한 섬으로 된 공원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다. 아직 추울 때나 봄 때나 참 자주 가던 그 조그마한 섬 공원은 한적한 것은 물론이고 물과 나무와 잔디를 만지도록 가까이 두고 뭐랄까 생각을 몰고 오는 프라하 시내의 귀중한 곳이다. 가끔 백조들이 섬으로 올라와 함께 걷기도 하는, 젊은 연인들이 입던 옷을 벗어 엉덩이에 깔고 앉아 물 빛 보다 빛나는 키스를 나누는 곳. 노을이라도 질 즘 가면 한 없이 나를 영화로 만드는 곳이다.


Legions' Bridge

https://goo.gl/maps/HGE5Q8qzLn2t61Gi6

금빛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국립극장과 이어지는 다리 레기교
다리 중간에 이 공원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공간은 신 시가지 한가운데 비밀처럼 숨어있는 가든인데, 빌딩 숲 사이에 요새처럼 있다고 보면 된다. H&M 같은 신 문물로 가득 찬 도심 한가운데 허름한 어떤 건물 통로를 지나면 펼쳐지는 놀라운 가든이다. 나름의 역사도 있는 곳. 여기는 시간이 촉박하거나 빠른 초록의 기운이 필요할 때 가끔 찾아갔던 곳인데 끝 모서리에 있는 카페에서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 꼭 프랑스에 온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엔... 안 가봤다.)


Franciscan Gardens

https://goo.gl/maps/KG74bjZqoKfKXbih9






Cafe Gregory Samsa

https://goo.gl/maps/94CXVnwCBLtdpCo16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될 공간으로 카페 삼사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라는 인기 높은 단편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을 딴 이 카페는 두 교사가 운영하는 독립 서점으로 주말에는 독립 영화 상영과 가끔 언 플러그드 뮤지션의 게릴라 라이브가 펼쳐지기도 하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책들은 하나같이 모양과 크키가 독특하고 형태도 제각각인 독립 출판 서적이 가득하고 매주 화요일이면 엽서도 입고가 된다. 아픈 날이 아니면 거의 매일 찾았던 곳이다. 매력이 넘치는 조그마한 바를 가진 카페 삼사는 커피는 물론 맥주와 와인을 함께 판다. 아침 혹은 초저녁에 그곳에 가서 그날의 맥주를 한 잔 시키고 일기를 쓰고 어제의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

위스키가 첨가된 아이리쉬 커피와 그날의 맥주

매일같이 그곳에 가자니 친구도 생겼다. 내게 조심스럽게 일본어로 인사했다가 크게 실패한 그는 본인을 마이크라고 소개했다.






그날의 음악
<Dreamers Circus - 'Circus Continuum'(2013)>

덴마크 민속음악 기반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3인조 밴드 '드리머스 서커스' 시턴 연주자 앨리 카(Ale Carr)의 자작곡입니다. 경쾌하고 낭만적인 선율이 인상적인 곡이지요. 중간에 아련한 피아노 솔로 맬로디가 어딘가 있던 기억들을 불러옵니다. 곡 하반부에 목소리와 섞여 나오는 멜로디를 저는 가장 좋아한답니다.

https://youtu.be/HVXcMT_2JdI




'신잔디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

글. 사진 신잔디

(일부 사진은 구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 #2가 발행됩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 11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읽어드려요.

https://www.instagram.com/jandy.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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