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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Apr 27. 2019

신잔디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

 동그란 얼굴에 선한 시민 이미지를 가진 마이크 (이제는 그의 눈동자 색이 기억나질 않는다…)는 프라하의 한 외국인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저번 펍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줄리앙과 마찬가지로 내게 무얼 쓰고 있냐고 물은 뒤였다. 나는 또 그때처럼 뭐 별거 아니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걸 쓴다고 대충 말했다. 그는 내게 역사면의 프라하 시내 투어를 하고 싶으면 이메일 해 달라고 말하면서 내 수첩 한편에 자기 이메일 주소를 적어줬다. 나는 속으로 투어 영업을 당한 것 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런 담백한 형식의 자기 PR은 아무래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마이크는 익숙하게 와인이나 맥주를 한두 잔 마시고는 곧장 서점을 나갔다. 




 아프지 않으면 매일 갔던 삼사 카페는 작은 독립 서점에 바가 합쳐져 있는 낭만적인 공간이다. 내가 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했던 그곳은 아직도 내 꿈에 가끔 나온다. 나는 여리게 풍겨 나는 책 냄새와 은은하게 섞이는 커피 향을 좋아했다. 그곳 테이블에 붙은 타일 모양이 좋았고 내가 아름아름 준비한 체코어로 주문할 때면 안 웃는 척하면서 끝까지 다 들어주고는 '알아듣지는 못 하겠지만 어쨌든 잘 말했다'라고 칭찬해주는 나이 많은 직원들이 좋았다. 매주 바뀌는 맥주, 달큼한 화이트 와인이 좋았고 큰 커피잔에 한 가득 나오는 대용량 에스프레소가 좋았다.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중간인 세대의 못 알아듣는 한낮의 수다들, 팔에 문신이 가득한 젊은 남자가 한참 동안 동화책을 고르는 광경이 좋았다. 무엇보다 나는 그곳에서 무엇이던 오래 잘 썼다. 해서 그 많은 좋은 것들 중 가장 좋았던 것은 그곳에 서면 무언가 툭툭 잘 뱉어내는 나 자신이었다.


작은 바가 있는 서점 'Rehor Samsa'
전시 중인 카페 삼사 / 카페 삼사의 외관('루체르나'라는 큰 빌딩 안에 위치 해 있다.)

 마이크는 하루 이틀마다 삼사에 오는 것 같았다. 주로 아침에만 그를 마주쳤다. 우리는 한두 번에는 짧은 인사만 나누다 서 너번 째는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그에게 프라하 시내에 숨어있을 한적한 공원을 묻기도 했고 그는 내게 일본인 친구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쉬운 영어를 잘 썼다. 어려운 말은 돌려서 하거나 느리게 하고 가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는 내게 체코인들의 슬픈 역사와 약간은 딱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첫인상에 관해 해명했다. 체코인들을 이야기를 좋아해서 오래된 거리와 나무에 그마다의 전설이 세세히 깃들어있다고 한다. 억압이 팽배했던 역사 속에서  이야기와 음악은 그들에게 위로 일 뿐 아니라 어떤 자부였고 문화를 넘어선 예술의 가치는 곧 민속성으로서 단단하게 자리매김되었다. 예술가는 프라하를 사랑했고, 프라하는 낭만을 환영했다. 나는 그런류에 이야기를 듣는 게 참 좋았다. 그 말들은 내가 낯선 사람들의 눈을 더 깊이 들어다 보게 했다. 체코어를 좀 더 많이 연습하게 됐다. 떠나는 날이 아쉽도록 그랬다.


글쎄, 마이크에게 나는 별로 해 줄 얘기가 없었다. 한국에 관해 설명하고 싶진 않았고 나는 그냥 나에 관해 말했다. 내가 만든 음악들을 들려주고 내가 하는 여러 가지 돈 버는 일에 관해 들려주고 가끔은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도 해줬다. 그러다 마이크가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삼사에서 연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작은 서점은 내게는 뭐랄까! 늘 로망의 공간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내가 그 자체로 영화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인데 남들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 건 맞다. 좀 정확히 하자면 나는 종이에 애착이 있다. 디자인의 영역보다는 종이의 질감이나 냄새, 종이라는 나무가 전달하려는 이야기에 큰 관심이 있다. 종이의 영역에 진입하기 위해 디자인을 공부한 것도 맞다. 하여간 나는 여러모로 디자인된 서점보다는 시간이 묻어있는 그대로의 서점이 좋다. 거기서만 나는 편안한 냄새가 있다. 너무 잘 돼있지 않고 대충 돼있는 틈의 노출이 좋다. 가끔 좀 떠들어도 되고 주인과 ‘헤이, 하우 알 유?’ 할 수 있는 동네적인 분위기. 하지만 여전히 그곳은 서점 인 곳들. 혼자서 노래하게 되면서부터 서점에서 노래하는 상상을 좀 했다. 이야기 속에 파묻혀서 언 플러그드인 쌩의 상태로 노래하는 것. 진지한 관심사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노래로 내 이야기를 읽어주는 것. 그건 정말 해보고 싶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미니 콘서트에 관해 대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마이크는 매주 드나들며 친밀해진 삼사 카페의 두 오너를 소개해줬다. 두 분은 오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고 안경을 꼈다. 한 분은 웃는 게 어색한 듯 경직된 표정에 영어는 안 하시지만 때마다 나의 음료 취향을 섬세하게 물었던 것(커피라면 우유나 설탕의 추가 여부를, 맥주라면 그날의 맥주를 꼭 먼저 소개한다던지 하는)과 도톰한 베이지톤 셔츠에 면바지 등 수수하고 갈대 같은 패션 스타일을 볼 때 꼼꼼하고 정확한 성격에 필요한 일은 확실히 해내고 불 필요한 일에는 통 관심이 없는 편인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한 분은 좀 반대로, 비비드 한 컬러나 패턴이 있는 셔츠를 즐겨 입고 안경 모양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노란 바지도 잘 입으시고 말할 때 손 사위도 자연스럽게 잘 썼다. 그는 영어를 잘하고 예술가에 관심이 많게 보이는 것이 아마도 이 공간의 문화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좀 긴장하면서 그때즘 완성한 곡들을 차례로 들려주고 곡에 관해 되도록 느리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들은 내 말을 잘 들어주고 같은 곡을 여러 번 들어보기도 했다. 나는 떠나기 전 마지막 주 화요일로 연주일을 확정하고 안 그래도 작은 목소리를 마이크 없이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다행히 악기는 있었다. 내가 예약한 항공사에서 높은 수화물 수수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가져가는 건 포기하고 대신 체코에 도착하자마자 수화물 수수료 만치의 값에 작은 기타를 샀다. 작고 가볍고 좀 엉성하지만 이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 


프라하에서 좋은 값에 구입한 나일론 기타
프라하에서 사진을 찍으며 멋지게 사는 수원씨가 찍어준 기타 사진

 


 나는 책들이 나를 둘러싸는 모양으로 한 시간 동안 열댓 곡을 연주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관객들의 집중도는 나의 기대를 뛰어넘어서 너무 멀리 저만치 갔다. 사람들은 촬영은 커녕 기침소리도 참아가며 내 노래를 들어주었다. 마이크는 그 날 수업한 미국인 학생들을 잔뜩 대려왔고 자주 마주치던 아주머니들 몇 분도 반갑게 자리하셨다. 그중 몇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것 같긴 했다만 쑥스럽고 경황이 없어 이메일 달라고 말 하진 못했다. 연주 후에 짧은 담소들을 나누고 나니 카페는 어느 때처럼 금세 조용해졌다. 매일 아침 엄마 눈빛으로 나를 맞이하던 서점 직원이 다가와 내게 매주 화요일 연주해줄 수 있겠는지 물었다. 나는 속으로는 이미 ‘오브 콜스 예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입으로는 아쉽게도 다음 주면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해야만 했다. 이 글을 발행한 뒤에 카페 삼사에게로 발매된 음반을 보내야겠다. 아무도 읽지는 못하겠지만 들을 수는 있는 노래들. 그곳에 앉아서 완성한 이야기들. 떠올려보니 그들에게 선뜻 들려주는 게 정말이지 맞다.

공연 당일 예쁘게 꾸며진 삼사 카페 / 짧은 리허설 전 찍은 유일한 사진




상상은 현실로 된다. 나는 이제 내가 무얼 상상해 버릴지 두려울 지경일 만큼 설렌다. 

오늘은 무얼 상상해볼까, 내일은 또 무엇이 현실로 될까, 그걸 지나는 삶은 어떻게 또 새로운 나로 될까!



그날의 음악
<Dreamers Circus - 'Idas Hemkomst'(LIVE)>

덴마크 민속음악 기반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3인조 밴드 '드리머스 서커스' 의 라이브 영상 입니다. 이 곡은 그들의 정규 앨범에 속해있지 않은 아마도 스웨덴 민요가 기반인 것으로 예상되는 곡이에요. 시턴 연주자 앨리 카의 화려한 전주가 돋보이지요? 제가 느끼기에 이 곡은 상상으로 떠나기 좋은, 한 편의 이야기 같은 기분을 주는 곡이에요. 해서 이 곡이 우리를 어딘가로 대려가면 좋겠습니다. 뭐든지 다 이루어지는 어떤 환상적인 곳으로요!



'신잔디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

글. 사진 신잔디

(일부 사진은 구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 11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읽어드려요.

https://www.instagram.com/jandy.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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