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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May 11. 2019

사고 많은 삶으로 살고 싶어라

 내 글을 빠짐없이 모두 읽은 사람은 바로 나다. 아직 나는 겪은 일 밖에는 잘 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내 모든 글에는 내가 속속이 누워있다. 글로 볼 때 나는 어떤 인간인가? 인생은 어떤가? 무얼 느끼며 나는 사는가.로 이 글은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꽤 용기가 있는, 사실은 그냥 무모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가끔씩 용감했고 대부분은 너무했다. 나의 무모함은 유년기에는 잠재되어있다가 청소년기에 은밀하게 드러나고 이십 대에는 폭발하여 조절이 어렵고 삼십 대에야 비로소 즐길 줄을 알게 되는 마치 엑스맨의 진과 비슷하다. (과장되게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언제나 내게 가장 강력하다는 사실!)


 갖가지 사건사고로 색칠해져 있는 내 삶은 얼룩덜룩하기보다는 무지개 같다. 모든 면의 색은 언제든 다시 나올 것처럼 살아있다. 감정은 매일 다른 쪽으로 치우치고 나는 그날그날 나의 삶을 정한다. 그런 ‘고르기 식’ 삶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사실 이것은 내가 그러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숙명적인 부분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을 때 나는 떨어진다. 그날의 호기심을 무시하거나 선택의 기로에서 마음이 이끌리는 쪽과 별개의 선택을 스스로 강요할 때. 그것이 얼마큼 작은 선택일지라도 차츰 쌓일 때. 비교의 저울이 내 마음에 달려버리는 순간들. 내가 떨어지는 순간들. 이끌림을 무시할 때 오는 대가가 내게는 너무 큰 것 같다. 그걸 알고 나니 삶은 저절로 다양해졌다. 더 이상 나의 그 점을 심란하게 탓하지 않는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도망치고 싶은 성미를 그냥 가진 거다.





 용기만 내면 뭐든 잘 풀리는 것 같아 보이는 ‘운빨의 내’ 게도 당연하게 시련과 역경과 충격과 사고가 있다. 다만 나는 때마다 사고를 해프닝으로서 받아들일 줄 아는 어떤 스킬 같은 게 생기는 것 같다. 한 번은 프라하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현금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카드를 몽땅 잃어버리니,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사실 몽땅에 해당하는 카드도 한 개뿐이었지만.) 가진 현금은 한화로 삼만 원이 채 안되고 체류 일정은 한 달이 더 남은 때였다. 나는 일단은 한 바탕 호들갑을 떨면서 온 집안을 뒤져보고 전 날 걸었던 길을 거의 기어 다니며 수색했다. 최대에 불쌍한 표정으로 들어갔던 식당이며 카페에 이메일 주소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무 슬퍼서 울었다. 집에 몇 시간 쭈그리고 있다가 굶어 죽으려면 여기서 죽는 것도 영화적이려나 생각하면서 전 재산 삼만 원을 챙겨나가 동화 전시를 보고 맥주를 사 먹었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사실은 그 날이 바로 줄리앙을 만난 날이다. (줄리앙이 누군지 궁금하신 분들은 지난 글 <오래가는 것은 자국>을 참고하세용) 나는 어쩔 때는 나를 당최 이해를 못 하겠기도 하지만, 보자! (보라!) 내가 그 날 지갑을 잃어버렸고 얼굴은 울쌍이고 이윽고 스트레스가 과다분출하여 맥주로 진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줄리앙을 만날 수 없었으리라! 그러니 결국에는 잘 된 일이다.


 또 한 번은 프라하에서 버스로 두 시간 거리인 독일 드레스덴에 놀러 갔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 맥주 파울 러너 직영 펍에서 맥주를 마시느라 그만 막차를 놓칠 뻔한 적도 있다. 엄청 뛰어서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참 익숙한, 유리창에 'PRAHA'라는 손글자가 적힌 버스가 나를 지나쳐 출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옛날 만화에서 너무 빨리 달려 바퀴처럼 발이 안 보이는 바로 그 정도의 전속력으로 버스가 정차할 때까지 "스땁!! 스따ㅃ!!"을 외치며 따라갔다. 결국 버스는 인심으로 서주었고 나는 기사님께 꿀밤이라도 얻어맞을 기세의 무시무시한 눈총을 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로 나는 드레스덴에 갈 때면 늘 꼼꼼하게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버스 타기 전에 화장실도 꼭 갔다. 그러니 어쨌건 잘 된 일건 맞다.



이러다 막차 놓칠 뻔 했다. 파울러너 바/ 라들러 비어/ 위트 비어





 돌아보면 나는 유유하게 살고자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도전적인 자세로 사는 것도 또 아니지만 뭐랄까 사고가 많은 삶, 좌충우돌 속에서 꼭 얻어지는 바는 있는 그런 삶으로 나는 향하는 것 같다. 사고 많은 삶. 살면서 다양한 역할을 감내해야 하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아프리카 원주민이라 할 지라도 사냥꾼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빨래하는 사람이자 설거지하는 사람이 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나 같은 경우는 세 모녀의 가장이자 예쁘고 약한 동생의 더 동생 같은 언니, 한 회사의 성실한 계약 직원이자 프리랜서 디자이너, 그리고 음악가다. 그걸 모두 아우르는 나. 내가 가진 모든 역할이 한대로 뭉쳐 빚어진 나. 그게 바로 완성된 나 인 것이다. 하지만 무모하고 사고 많은 삶을 지향하는 나도 분명하게 그 안에 산다. 늘 꿈꾸는 대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오늘 내가 휘두를 수 있는 작고 소심한 무모함 속에서 사고를 만들며 살 거야, 그러면서 뿌리 같은 나의 소중한 역할들에게도 역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 부조화의 조화를 나는 이제는 마음 깊숙이 즐길 것이다.



그날의 음악
<Dreamers Circus - Kitchen Stories>

덴마크 민속음악 기반의 창작곡을 연주하는 3인조 밴드 '드리머스 서커스'의 뮤직비디오 입니다. 경쾌하고 편안한 선율은 그 온도가 차분하고 따듯한 봄 볕이에요. 환하고 정드는 이 비디오를 함께 즐기곤 꼭 이런 기운으로 오늘의 남은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럴게요!

https://youtu.be/FkgEwnjVREg



'사고 많은 삶으로 살고싶어라'

글. 사진 신잔디


매주 일요일 저녁 11시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읽어드려요.

https://www.instagram.com/jandy.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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