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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Feb 17. 2022

부끄러워도 얻어지는 것들

삶을 다 써버릴 수는 없지만

부끄러워도 얻어지는 것들 : 삶을 다 써버릴 수는 없지만


‘인식의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에서 인용된 니체 인용문이다. 같은 글 안에 ‘어설픈 첫 줄을 쓰는 용기’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며 이 글을 쓴다. 나는 쓰거나 읽는 것을 좋아하기보다는 다만 종이와 편지를 좋아했다. 20대 초반에는 종이가 너무 좋아 인쇄소에 취직한 적도 있고 종이가 너무 좋아 종이의 식물성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편지는 중학교 때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좋아했는데 그것은 내게 성의의 의미였다. 내가 친구에게 내미는 성의, 친구가 나에게 내민 성의. 그렇게 종이와 편지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다독가는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내게는 읽는 것이 쓰는 것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글자에 집중하는 시간보다 친구에게 편지를 한 통 쓰는 일이 쉬었다. 그러다 언젠가 여름 하룻밤만에 친해진 무섭게 다독가인 민지 언니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읽는 재미가 들었다. 나는 이야기 자체보다는 문장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문장이 나오는 부분을 접어두었다가 시간을 내어 차곡차곡 수첩에 정리하는 시간이 무지 재미있었다. 손글자의 장점은 다 쓰고 나면 확 밀려오는 성취감이다. 마음에 쏙 드는 문장으로 그득 채워진 수첩은 보물 1호가 되었다. 빼곡하게 옮겨 적은 글자들을 펼쳐보면 작은 이뤄냄을 보듯 자존감이 솟구쳤다.


 수필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나의 작곡 선생님이기도 했던 선배의 추천에서 시작되었다. 선배는 내가 SNS에 쓰는 짤막한 글에 어떤 개성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며 긴 글쓰기를 추천했다. 잘 포장된 네다섯 줄짜리 SNS 안부 인사를 시작으로 한 문단을, 문단을 이어 붙여 페이지를 만들었다. 내게는 가사를 쓰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완벽히 별개의 일처럼 느껴졌다. 가사는 심정에 맞는 적절한 문장을 내 멋대로 고르는 일이라면 글은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심사숙고한 뒤에야 나눌 수 있는 보통 아닌 대화 같았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계속 써 나갔다. 온갖 멋있는 말이 떠올랐고 열심히 받아 적기에 바빴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은 읽지도 못할 창피한 글들이다. 한 번은 프랑스에서 미술관 탐방 가이드를 하던 친구가 서울에 들르러 와 함께 신논현역 근처 족발집에 간 적이 있다. 족발에 막걸리를 거하게 마시던 중에 친구는 고백하듯 내게 ‘너는 글 정말 못쓰니 글 쓰지 말고 음악이나 만들라.’는 말을 했다. 진심의 말이었다. 애써 천연한 척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내가 쓰는 글들을 누군가 본다는 사실을 코 앞으로 자각하게 되었다. 어떠한 사회적 사명도 없지만 결국엔 평가대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바로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건 친구에게 내미는 내밀한 성의와는 다른 얘기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쓰기를 이어나갔다. 낙오자의 기분을 안고도 어느새 쓰는 것이 즐거워져 버린 나는 내 글을 위해 선뜻 그림을 내어주던 친구와 조금씩 늘어가던 구독자들의 위안을 발판 삼아 뚜벅뚜벅 걸었다. 돌아보니 그렇게 걸은 몇 개월의 시간은 남겨진 글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 무언가 꾸준히 해보았다는 것 그리고 어설픈 글이라도 밖에 내보이던 용기가 그것이다.


 내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그때의 감정들이 짚어지는 경험이 많았다. 주로 활기 있고 살 냄새 가득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그토록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지 몰랐다.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 내가 소환해야 했던 기억들은 많은 순간 나를 돌아가고 싶게 했다. 뒷 좌석이 없이 두꺼운 이불 몇 장만 깔아 둔 봉고차에 네 남매가 시끄럽게 굴러다니며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던 기억이나 초등학교 입학식날 엄마가 나만 데려가서 단독으로 사준 짜장면 같은 기억들. 머릿속에만 담아두기 아까운 추억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리 부끄러운 글이라도 애써 써두기를 잘했다고, 무작정 떠올려 단장해 두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삶을 다 써버릴 수는 없지만 그런 경험을 조금 더 획득하고 싶어 글을 써본다.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용기는 거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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