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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Feb 06. 2022

자취의 재미

적막, 그 사랑스러움

자취의 재미 : 적막, 그 사랑스러움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방만큼 아담한 공간에 조금의 악기와 조금의 책과 조금의 침대와 같이 지냅니다. 이 집에는 옵션으로 흰 책상과 흰 책장과 흰 일인용 옷장이 있는데 공간이 좁아 책상은 밥상이 되기도 합니다. 단점이 많아요. 밥을 먹을 땐 코 앞에 놓인 모니터에 음식물이 튀기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이던 바로바로 정리하지 않으면 패배자의 기분이 들어버리고요. 피아노를 치기 위해 매번 모니터와 스피커의 위치를 다시 잡고 끝이 나면 다시 제자리로 바로 놓아야 하는 무지막지한 번거로움이 따릅니다.


 그래도 바닥엔 연두색 카펫을 깔고 주방을 경계로 초록색에 노란색이 조금 섞인 커튼을 달아주고 빈 벽에는 좋아하는 맥주의 출시 포스터도 걸어두었어요. 한낮에도 밤 느낌이 나는 조명을 두었고요. 기타 헤드에는 헝가리 시장에서 사 온 아끼는 손수건을 덮어둡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냉장고라도 텅 비어있으면 그 또한 패배자의 기분이 들잖아요? 그래서 재미있는 것들로 채워두려 애씁니다. 토마토소스는 패키지가 귀여운 걸로 고르고 맥주는 멀리까지 가서 다양한 종류를 사다가 줄 지어 둡니다. 두부는 반 모 짜리, 당근은 넉넉히.


 자취를 시작하며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은 의외로 시리얼 먹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으로 시리얼 컵을 들고 주방으로 가서 시리얼을 말아먹어요. 콘플레이크를 쏟아붓고 그래놀라를 첨가하고 견과 믹스도 얹어봅니다. 최고로 간단하게 ‘잘 챙겨 먹었다’는 기분을 획득하고 이것이 하루의 시작으로 정말 마음에 들어요. 시리얼을 먹고 나서 다시 눕는 일은 정말 꿀맛 단맛입니다. 천장을 보면서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 아침을 사랑합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멈출 때의 적막이 어찌나 반가운지 긴 숨이 절로 나와요. 그렇게 아침을 보냅니다.


 사실은 오후에도 그렇게 보냅니다. 저에게 자취가 갖는 큰 의미는 소리 없는 공간을 차지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허락한 소리만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그게 좋아서 일부러 이불을 바스락 거려보기도 하고 들리지 않을 것 같은 볼륨으로 음악을 틀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작은 소리가 커지는 경험을 할 수가 있는데 이를테면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양말을 신을 때 발에 양말이 스치는 소리, 꼴꼴 따라둔 맥주가 컵 속에서 내는 기포 소리 같은 작은 소리들이 크게 들리는 경우예요. 이런 미세한 순간의 소리를 즐기는 것이 요즘의 재미입니다. 오직 혼자이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소리들. 이것들은 여백이라는 영감으로 되기까지 합니다.


  사랑스러운 적막과 함께 저는 자취를  흠뻑 즐기고 있습니다. 당분간 음악은 조금만 만들고, 일도 조금만 하면서  조그마한 공간에서 적막을 배양하려 합니다. 고난한 생각들도  소리의 여백 안에서는 웬일로 잠잠해지는  같습니다. 조금의 공간, 귀여운 초록색과 사랑스러운 적막을 가득 채운 자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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