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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Mar 02. 2022

슬픔에 밑줄

슬픔의 양면 : 비 진정한 슬픔이라는 촉매

 책을 험하게 보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부분에 마킹 테이프를 붙이기보다는 쓱 접어버리는 편이고 누워서 보고자 책의 한 쪽면을 둥글게 말아 한 손에 쥔다. 비상식량처럼 가지고 다니는 책들은 가방 속에서 뒹굴거리다 모서리가 닳아 금세 나이가 들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좀처럼 문장에 밑줄을 긋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귀한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을 때에도 책에는 밑 줄은 치지 않는다. 나름의 이유도 있다. 좋아하는 페이지를 툭 접어두었을 때는 나중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기 위해 한 페이지를 통째로 다시 읽어야 하고 그러한 사소한 정성이 문장을 위해 매번 마땅하게 여겨진다. 문장에 밑줄을 그어두면 단 번에 한 문장에만 시선이 모여 문맥을 다시 볼 일이 없어지더라. 안 그래도 문장 편애가인 내게 그 행위는 너무나 책을 다시 안 읽게 했다.


 아침에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87페이지의 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문맥은 이러했다. 글쓰기 수업 중 한 학인이 과제로 써 온 글을 낭송하는 동안 어떤 문장에 다다르자 원고를 보며 듣고 있던 학인들이 일제히 그 문장에 스윽 밑줄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 문장은 이러하다.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이 문장을 읽고서 한동안 뒷 줄을 읽지 못했다. 나는 학인들을 따라 그 문장에 천천히 밑 줄을 그었다.


 제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음악 모임에 참석한다. 혼자서 전 곡을 다 듣기는 좀처럼 어렵지만 명실상부 명곡인 클래식 음악 한 곡을 선정하여 일 년간 달마다 다른 연주자의 버전으로 모여듣는 모임이다. 올 해의 음악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다. 그 음악은 어찌나 슬픈지 듣는 시간 내내 상상이 잿빛이다. 정말로 슬픈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도 있지만 대부분은 슬픈 감정만 느끼고 마는데 그래서인지 모임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찬 공기를 마시면 꼭 애매한 온도의 물로 목욕하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미한 개운함과 조금만 더 따뜻했으면 싶은 열망이 뒤섞인다. 나는 그런 감정을 비 진정한 슬픔이라고 부른다. 음악모임을 마친 후에는 주로 술을 마시러 가서 일기를 쓴다. 그렇지 않으면 안 쓸 일기를 쓰게 만드는 좋은 촉매가 된다.


 진정한 슬픔은 누구나를 얇게 만들지만 비 진정한 슬픔은 묵직한 촉매를 만든다. 그 안에서 발휘되는 것은 이를테면 쓰고 싶은 기분, 고유함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의외의 아무를 찾고 싶지 않고 혼자여도 외롭지가 않은 비장함이다. 비 진정한 슬픔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있다면 견뎌질  있다.” 문장을 읽고서 나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슬픔이 떠올라 울었다. 진정한 슬픔이었다. 하지만 문장을 읽고  읽으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슬픔이  많다는 것을  눌러 남기고 싶어졌다. 수첩에  문장을 덧붙여 썼다. " 진정한 슬픔을 차지할  있다면, 내게는 이야기할  있는 슬픔이  많다."  진정한 슬픔은 내가 이야기할  있는 슬픔을 기꺼이 이야기하게 해주는 친절한 문지기 같다. 내가 눈물을 닦고 짧은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도록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선물처럼 완성된 개운함이 찾아온다. 오늘 하루는 이걸로   같은 말끔한 기분이 든다. 수첩에 적힌 슬픔의 양면을 본다.   모두에 있는 집중성에 대해 생각한다. 나이가 많이 들어도 기꺼이 슬퍼할  있는 노인으로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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