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민낯을 마주하며 비로소 알게되는 것들
차거운 말을 따듯하게 데워서 내는 사람, 거친 말도 동글게 빚어서 내는 사람이 있다. 상대방을 위해 때로는 덜 유려하게 보일 줄도 아는, 작지만 커다란 양보의 눈금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퍽 완벽한 관계 속에서 지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더라는 헷갈림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부딪히며 걸어간다.
'인연'이라는 말이 그 발음만큼
유연하고 보드랍지만은 않다.
속사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어쩌면 그것은 끝도 시작도 없는,
하나의 길고 긴 이야기가
부끄러워 줄여놓은 암호일 것이다.
나는 무료할 때에 한 번씩, 사람을 잘 사귀고 건강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말하고, 표정하고, 접근할 때 과연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까 하고 고민한다. 그러다 뜬금없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앞자리에 앉은 술 마신 털보 아저씨의 인생을 바라보며 아저씨의 고민을 고민하고, 그 옆에 앉은 무표정한 직장인 여성의 미간 주름을 새어본다. 아직도 힙합바지를 입고 다니는 생각보다 어린 청년을 아래위로 훓터보고, 잘생긴 아랍계 외국인을 힐끔 쳐다보다 불현듯 주머니에서 폭탄을 꺼내는 것은 아니겠지 걱정하며 고개를 숙인다. 그러고 보니 누구나 자기만의 반사회적인 기운이 있다는 점이 새삼스럽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나의 건강한 대인관계에 관한 고민은, 결국엔 타인에 관한 쓸데없는 관찰로 의미심장하게 끝난다.
나는 인연이라는 장대한 이야기 안에서 이왕이면 좀 멋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절친한 벗이 이별로 마음의 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실눈을 부리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다!' 하고 엄포를 놓았다. 울렁이는 감정에 파도에 난파한 어린아이처럼 던져져 부서지는 그녀를 감히 내가 돌봐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책에서 읽은 말과 나의 (사실은)실패한 경험을 반죽, 장전하여 그녀에게 발사했다. 지나친 최선을 다해서 그녀에게 '지난 일 일랑 잊어버리고 더 나은 새 삶을 모색하라' 재촉했다. (그녀의 삶은 이미 더 나았다) 당장 마를 리 없는 눈물을 더는 보는 것이 두려워 슬픔이라는 소중한 감정을 무시하기가 일수였고, 때 아닌 진취를 논하며 공공연히 재수 없는 말들을 쏟아 날랐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녀의 마음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이다. 설령 그녀가 나의 따발총에 맞아 이별의 급류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정작 방앗쇠를 당긴 나는 내가 뚫어놓은 마음 구멍을 보며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슬펐지만, 나를 위해 좀 괜찮은척 하기를 불가피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남의 삶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돌아보니 나는 그녀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강요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방식의 위로는 명백한 실례였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 필요한
사이의 간격, 사이의 탄력,
사이의 부재를 외면할 때,
우리는 크고 작은
침범의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불완전한
줄다리기를 통해 돋아나는
굳은살이야말로
과연 인연의 민낯이 아닐까.
주고받는 무례함 속에서 우리는 갖은 정을 쌓는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어느 작은 상처도 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는 어떤 '결과' 같은 것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인생을 다 알고 무조건 배려한다는 듯 의기양양한 허세를 떨면서도 아주 의외로 이기적인 여행경로를 짰다. 각종 펍과 양조장을 돌아다니자는 <맥주 투어 여행>이었다. 그렇다. 나는 참 못된 술꾼이다. 그녀는 술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맥주 한 캔이 잘못 끓인 보리차가 될 때까지 무작정 들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내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주먹을 탕 치며 호기롭게 '에라이 오늘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 고 외치는, 사랑스러운 술 못하는 여자였다. 그에 비해 내 여행 계획은 퍽 상식적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맥주 투어를 함께 해준 것에는 못된 술꾼 언니의 간절함 보다도, 첫 맥주의 역할이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또 함부로 단정한다. (딱 한번만 더 함부로 덧붙이자면, 그녀는 분명 감동했다)
맥주의 천국 벨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향을 첨가한 캐주얼한 맥주가 많다. 정통적인(혹은 한정적인) 재료와 기술을 고집하는 독일 맥주와 가장 큰 차이를 두는 부분이다. 독일이나 영국 맥주가 점잖고 지적인, 하지만 편안한 노신사 같다고 하면, 벨지안 맥주는 활기차고 개성 넘치는, 하지만 진득한 거리의 악사 같다. 그녀가 벨기에를 여행을 시작하며 접한 첫 잔은, 벨기에 전통 맥주인 람빅비어(Lambic beer). 그 중 체리를 첨가한 람빅크릭(Kriek ; 람빅비어의 고향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생산되는 작고 검은 체리 품종으로서, 체리가 함유된 람빅비어를 통칭하는 용어로도 쓰인다)이었다. 달콤하고 개운한 신맛이 일품인 크릭은 아직 국내에 활발하게 유통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지만, 요즘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바틀샵' 에서라면 크릭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람빅비어를 찾을 수 있다. 과일이 들어가지 않은 람빅비어를 '괴즈' (Gueze), 과일이 첨가된 람빅비어를 '푸룻' (Fruit) 이라 부르고, 체리 외에도 복숭아, 초록사과, 산딸기, 블랙커런트 등 다양한 버젼이 있다.
람박비어(Lambic beer)의 고향은 벨기에 브뤼헤(Brugge)로서,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 이상의 숙성기간을 거치는 발효 맥주 이다. 와인과 같은 신맛을 내는 특징이 있고, 과일을 첨가한 푸룻람빅은 마치 디져트와인과 같은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국내에 유통되는 람빅비어로는, 린데만스(Lindemans) 시리즈와 프루리(Fruli), 크릭분(KRIEK BOON) 등이 있다.
그녀는 체리맥주 한 잔을 맛있게 다 비우고 '만족하며' 나의 지나친 맥주투어 일정을 호호 동반해주었다. 여행 후로 이따금씩 수다를 놓을 때에도, 그녀는 그날의 맥주에 관해 호황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은 무엇으로 지키는가. 시기와 우연이 주는 고조와 실망에 우리는 얼마큼 큰마음을 빼앗기고서야 겨우 손가락 한 마디의 만큼
사람을 알아갈까.
남을 사랑하고, 상처한일로 우리는 또 얼마만큼의 불안과 경계의 시간을 졸여내야만 비로소 자연스러워질까. 어쩌면 원래부터 사람을 올바르게 대하는 방법일랑 없을지도 모른다. 나와 당신, 우리라는 거리에 부는 바람. 찬 겨울이 지나면 따듯해질, 한여름이 지나면 숨통 좀 트일, 때로는 가깝고 또 때로는 먼 채로 두어지는 이 거리에 부는 시간의 바람을 소중히 해야겠다. 우리는 치열하게 아닌척하며 서로를 간섭했고, 개입하기를 좋아했고, 늘 함께 맥주를 마셨었으니까.
글.사진 신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