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름, 나의 여름에는

by 신잔디

어릴 적 나의 여름은 시큼쌍큼한 냉면의 계절이었다. 엄마는 초여름이 되면 매실주나 담그던 그런 커다란 유리 독에 한가득 비빔 냉면장을 담그셨다. 내일부터 냉면장수를 한대도 그럴듯 할 그런 큰 독을 다 채우고도, 자잘한 병 몇 개를 더 담아 이웃용으로 두셨다. 매년 더운 바람이 불 때 쯤 달궈지는 붉은 독은 우리 집에만 있는 맛있는 장식 같이 느껴졌다. 엄마의 냉면장은 정말 , 정말로 고소했다. 사는 곳 가차워져 반가운 김에 더 고소해졌을 우리 할머니 표 참기름이 들어가서 그런가, 내가 좋아하는 누런 달 빛깔 깻가루가 수북이 들어가서 그런가, 어쩐지 심하게 고소한 탓에 한 대접으로 끝나는 날이 없었다. 집에서 말아먹는 냉면의 장점으로는 계란 한 알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날의 입맛따라 열무김치, 상추, 오이, 호두 등을 자유롭게 올려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맥주와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 이다!

페로니 전용잔과 페로니 병 / 출처 : Google

이탈리아 출신의 라거* 페로니(PERONI). 개인적인 의견으로 페로니는 그 출신답게 튀김이나 육류 보다는 치즈가 첨가된 음식이나 토마토 파스타, 비빔냉면과 같은 짭쪼롬한 밀가루 베이스의 음식과 먹었을때 궁합이 가장 좋다. 라거 맥주 특유의 산뜻한 탄산과 씁슬한 마무리는, 속 시원하게 몰아치는 해변의 파도처럼 입안을 방방곡곡 씻어준다. 병이 예쁘고, 가격도 저렴한 편. 요즘은 편의점에서 캔으로도 만날 수 있다.

*라거(Lager beer)맥주는 맥주의 발효방식 중 하나로서, 저온에서 발효한 '하면 발효' 맥주를 말한다. '상면발효' 방식의 에일(Ale)맥주에 비하여 진한 향이나 묵직한 맛이 적다. 대신에 시원한 청량감과 탄산감이 특징이며, 도수도 낮아서 한여름에 가볍게 즐기기에 좋다. 대부분의 국산 맥주가 라거에 속한다. 원산지에 따라 필스너(Pilsener) 라고도 불린다.






설렘 가득했던 서울 공기는 점점 따듯하지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은근히 좁아지더니 대끔 차겁게 느껴지는 대도시 안쪽의 어느 작은 양복점으론, 더 이상 밥 먹는 양이 몰라보게 늘어나는 (큰)참새 셋을 순순히 양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할머니가 계신 먼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적어도 서울 보다는 널찍하고 따듯할 것이리라. 엄마 아빠는 세 명의 참새를 생산해 낸 역사의 대도시를 등지고 긴 길을 내려와 바닷 마을에 이불가게를 열었다. 돈 안 되기로야 비슷했지만, 예상대로 그 아랫곳은 사람냄새가 좀 더 따듯했다.



엄마는 어린이 행색을 하는 장남에게 딸을 맡기고, 어린이가 되고 싶어 하는 조무래기 딸에게 막내 아기를 맡기고서야 비로소 그 찬란한 요리솜씨를 휘둘렀다. 어째서 엄마가 만든 음식들은 하나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 이면서도 값비싼 재료도 없이 잘 만들어졌다. 특히 엄마의 감자탕은 우리 동네에서 알아주는 수준이여서, 정육점 아저씨가 좋은 등뼈라도 나오면 우리 가게 앞 까지 찾아와 장사하는 엄마를 왕왕 부르곤 했다는 구문이 2016년까지 전해져내려 올 정도였다. 엄마의 화려한 요리솜씨 중 감초는 단연 비빔냉면. 냉면을 무척 좋아하고, 이웃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했던 남편을 위한 엄마의 여름 특선 메뉴는 과연 비빔냉면이었다. 엄마는 바람빛이 더워질 때 즈음이면 으레 내 몸집만한 독에 냉면장을 가득 담겄다. 같은 무렵 냉장고에는 계란 한판이 고개 든 두더지 같은 천진함으로 대기 중 이었다. 엄마는 자잘한 병이나 타파통에 숙성시킨 냉면장을 따로 담아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는 열무김치나 옥수수 같은 소소한 거리를 받았다. 빨갛게 익은 깨가 묻은 그릇들을 닦으면서 엄마는, '돈 버는 맛없는 건 똑같어도, 여기 아랫곳은 확실이 정이 많다' 는 말을 중얼거리며 은근히 환하게 웃으셨다.






별안간 고소한 냄새가 잠자던 코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가 냉면장을 담고 계셨다. 참말 오랜만이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조무래깃적 입맛으로 비빔냉면은 좀 맵고, 시었다. 그래도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의 냉면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줄곧 쥬시쿨과 냉면을 함께 먹었다. 시간이 굴렁쇠 처럼 마구마구 돌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마구마구 자라고, 지나고, 변해오는 동안에도 냉면장 냄새는 여전히 심하게 고소했다. 후각이라는 이 재빠른 감각에도 참 많고 긴 사연이 담겼다가, 풀어진다.


우리가 느끼는 감각들에게 딱히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기억을 위한 것 일 것이다.


기억은 쓰고 지우기가 내 맘 같지 않아서 마음의 형편이 되는대로 새겨지고, 드나든다. 그리곤 잘 지내는 나를 불러 세워 묻는다. 왜 그때는 그랬었는지. 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지. 엄마는 왜 십 오년 만에야 냉면장을 담그시는지, 냉면장이 거친 십 오년간의 숙성이란 곧 엄마의 아픔이 조금은 맛있게 무르익을 만치의 시간은 아니었을지, 고소한 냄새. 그것은 사납게, 그치만 언젠가 꼭 한번쯤은 알알이 앓고 지나가야 한다는 듯 꼼꼼한 태세로 기억을 쿵쾅 두드리곤 그 얼굴을 감추며 묻는다. 왜 우리는 어쩔 땐 참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지.



기억하면 서러운 행복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에서
풍기는 먼 시간의 냄새에
눈물이 모인다.


어느덧 나는 몸이 너무 많이 커버린 큰 조무래기가 되었다. 그리고 쥬시쿨은 어디서나 사 먹을 수 있는 호락호락한 음료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냉면장을 목격하고 곧바로 맥주를 사러 나갔다. 바깥에는 작은 조무래깃적 불었던 무더운 바람이 꼭 그대로 일고 있었다. 두 볼을 더운 바람에 마구 부딪히며 걸어가다 나는 멈칫 멈춰서 한동안을 크게 울었다. 행복이라는 기분은 그 위력이 남달라서, 뒤늦은 우연의 상처들로 훼손당했을 때엔 더 깊고 아프게 자라난다. 나는 아직도 소중하다고 외치는 것 같이. 가장 평범하므로 가장 소중했던 시절의 기억들은, 어떤 따가운 사고의 시간들을 거쳐 조금씩 날카로운 그리움이 된다.

어쩌면 모든 기억은 스스로 보듬어 나가야한다. 시절은 시절대로 곱게 감사해야한다. 얼른 마음을 여미고, 여름 파도 같은 맥주와 함께 엄마의 냉면 한 대접을 비운다. 그렇게 그 시절 냉면은 다시 오늘의 냉면이 된다. 이제는 맵지도, 시지도 않은. 그저 한 없이 맛있을 뿐인 엄마의 새 냉면은 고맙게도 따듯했다.




글.사진 신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