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잔디 Jun 11. 2023

콩벌레처럼

 호기심, 관심, 낯섦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20대였다. 무모함을 지지했던 때. 아무하고도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무모함에 기반해 있었던 것 같다. 30대가 훌쩍 지나오면서 한 해 한 해 새롭게 느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전에 없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가 점점 예민해지나-.’하고 넘겼던 작은 불편함이 잦아지자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느껴진다. 관계에 대한 태도다.


 태평하게 지나가던 콩벌레에 손을 대면 동그랗게 말려 0.1초 만에 콩이 된다. 벌레를 무서워하던 어린 시절에도 콩벌레는 무섭지 않았다. 재빠르게 콩으로 말리는 제스처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조금 기다리면 서서히 등을 펴고 가던 길을 가는 것도 무척 신기했다. 콩벌레도 처음에는 누가 좀 건드려도 수많은 다리 중 한 두 개 탁탁 털어내고 쿨하게 제 갈길 가는 벌레였을까? 그러다 상처받고 죽기도 하고 하면서 서서히, 콩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아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대화의 흐름이 맞지 않거나 다소 갑작스럽게 조성된 자리에서 유독 불편함이 많이 느껴진다. 더운 여름 탈수 못한 빨래 더미처럼 꿉꿉한 기분이 며칠이고 계속된다. 지치는 일이다. 경청도 정성이 필요한 법. 온 정신을 쏟아 경청하다 보면 그것도 그것대로 힘이 들어서 다음 하루를 통째로 고요하게 보내야만 해소가 된다. 이렇다 보니,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면 찾지 않게 되고 약속 하나도 신중하게 잡게 된다. 그것이 조금 서툴렀거나 충동적이었다면 곧바로 후회한다. 한 번의 섣부른 만남은 길게는 몇 주 동안 나를 괴롭힌다. 


 그러면서 좋아지는 점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서 위로를 구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신중히 만나는 일은 나와 편안히 만나게 해 준다.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것보다 좋은 음식을 먹고 빠른 걸음을 걸으며 잊어버리는 게 더 확실한 해소감을 준다. 무해한 해소감이라 말하고 싶다. 그 누구도 받아내야 하는 일 없는 비폭력적인 해소, 위로, 안도감. 그렇게 조용하게 지내다 보면 해야 할 일이 뚜렷하게 보이고 알맞게 움직여진다.


 민첩하게 대처하고 싶다, 콩벌레가 빠르게 몸을 말듯이. 서서히 다시 등을 펼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충분히 콩 상태를 즐기고 싶다.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기지개를 쫙 한 번 켜고는 다시 걸어가고 싶다. 따뜻한 시선을 느끼며, 하지만 혼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자기 연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