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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n 12. 2023

아침형 인간

그러면 모든 게 잘 될 것 같으니까

 무기력증 찬양론자인 나는 의외로 아침형 인간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들 때 한 시간 일찍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낙천적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한 시간 또 한 시간 기상시간을 당겼더니 어느새 6시 기상이 일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은 자정을 기점으로 수면모드로 변경된다. 알람이 설정된 시간은 오전 7시지만 요즘은 한 시간 먼저인 6시쯤 눈이 떠진다. 아주 피곤할 때엔 억지로 부은 눈을 꾸겨서 감아봐도 다시 잠에 들지는 않더라. 한 시간쯤 뒤척이다 결국 7시 전에는 일어나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가 피부에 닿는 게 느껴지면 참 좋다. 요즘 우리 집에는 오전 6시에서 7시까지 손목 두께의 한 줄기 햇살이 들어오는데 그 틈에 재빨리 데낄라(내가 키우는 유일한 생명인 스투키 화분의 이름)를 대려다 그 아래 놓아준다. 그러면 베푸는 기분이 든다. 아침부터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기분이란! 이른 공기에 얼굴을 대고, 화분을 해 아래 놓아주는 것. 매일 아침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으로 소소한 성취감을 찾아본다. 그러고 보니 ‘소소하다’라는 말의 어감이 '아침'과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소소한 아침. 어쩜, 말이 참 오밀조밀하고도 착하다.


 아침에 일기를 쓰면 구체적으로 쓰는데 도움이 된다. 최소한 A4용지 한 장 분량의 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든 글자를 채우려다 보면 사소하게 지나쳤던 일상 구석구석에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이 든다. 어제 먹은 건 무엇인지, 오늘 먹고 싶은 건 무엇인지, 얼마의 돈을 지출했는지, 누구와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물론, 상처라도 받는 날에는 그런 자잘한 일상은 가차 없이 생략되고 불같은 욕이 도배된 일기를 쓰기도 하지만.(아침 일찍부터 욕을 하는 시추에이션=인생)


 매 달 홍대 근방에 작은 공연장에서 라이브를 하고 있다. 서너 팀이 함께 공연하는 공간인지라, 매 달 다양한 음악가들과 공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제는 시원한 여름밤이 떠오르는 듀오 ‘여름눈’과 함께 공연했는데, 음악이 예뻐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어느 선생님인가 내게 ‘슬픔은 전도율이 높아 쉽게 공감을 사지만, 기쁨은 깊이 빠져들기 어려운 감정이기에 밝은 음악을 잘 만드는 것이 참 어렵다.’는 말을 하셨었다. 여름눈의 음악은 기쁨을 주는 음악이었다. 달이 여름에게, 여름이 달에게 거는 말을 상상하며 썼다는 그들의 예쁜 음악에 다 같이 손뼉을 짝짝 치며 흐뭇- 하고 웃었다. 여러 사람과 한 공간에서 한 마음으로 도취될 때면 너무나 기뻐서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좋았던 어젯밤의 여운이 돌아 아침부터 여름눈의 음악을 틀었다. 여름밤의 기분을 아침에 느끼니 그것도 좋았다.


 아침 조깅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소소하게 30분부터 도전했다. 다음 주에는 40분으로, 다음 달에는 50분으로 늘려볼 예정이다. 가장 큰 나무를 찾아 인사도 해봐야지. 힘이 남아도는 날에는 벤치에 앉아 비둘기를 기다려야지. 그러다 지나가는 비둘기에게 말도 걸어봐야지.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기지개를 켜야지. 그러면 모든 게 잘 될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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