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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n 20. 2023

맥덕일기

바야흐로 여름의 시작

 내가 맥주를 좋아하게 된 것은 지인에게 소개받은 한 맥줏집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뻥 뚫린 테라스가 있는 그곳에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앉아서 또는 서서 맥주를 들이키며 더위를 식혔다. 강아지도 환영하는 곳으로 한편에서 강아지 과자를 팔기도 했다. 아기띠를 둘러맨 부부가 나란히 서서 맥주를 마시거나, 꼬맹이는 음료를 주문해 주고 부모는 맥주를 마시는 풍경도 보기가 좋았다. 처음엔 혼자 가보고 다음에 남동생을 그다음엔 여동생을 차례로 데려갔다. 너무 좋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나는 맥주를 세 잔 마시면 정신이 나가는 약골이다. 때문에 이왕 먹는 두 잔, 맛있는 걸로 먹자는 생각이다. 분위기에 취해 찾았던 맥줏집을 자주 다니다 보니 점점 맥주 ‘맛’에 푹 빠지게 되었고 곧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맛있는 맥주 찾아먹기 놀이>를 하는 게 취미가 되었다. 해외여행이라도 갈 일이 생기면 무조건 맥주가 맛있는 나라로 떠났다. 일본, 벨기에, 체코, 독일, 영국 제각각 맥주맛이 천차만별인 것도 재미있었다. 이제는 맛으로만 찾아다니기도 한다. 꽁돈이라도 생겼을 땐 주류상점에 가서 신기한 맥주를 양손 가득 챙겨 온다. 하나씩 까먹으면서 일기에 적어보기도 한다. 맥주 덕후가 된 것이다.


 오랜만에 온전한 휴일을 가졌다. 프리랜서의 장점이자 단점은 휴일이 애매하다는 것. 특히 음악을 만드는 일은 무언가 떠오를 때 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인지라 늘 대기하는 자세로 살아진다.(기록하는 모든 일이 그러하리라) 마음먹고 쉬기로 한 날에는 차라리 맥주를 마신다. 그러면 번뜩이는 무언가가 떠올라도 좀처럼 악기를 들지 않게 된다. 그런 날도 있어야지, 음악이 삶의 전부는 아닌 사람이다 나는. 하여튼 어제는 성수동에 새로 오픈한 서울브루어리를 찾았다. 찌는 더위에 등을 태워가며 야외에서 한 잔을 마시고 시원한 실내에서 또 한 잔을 마셨다.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새 책도 읽어보고 차게 요리한 관자 타르타르도 먹었다. 상냥한 바텐더의 미소와 휘핑크림처럼 쫀쫀한 맥주 거품, 꿀떡 넘기면 속이 든든해지는 에일 맥주. 여름의 시작이다. 


 지금은 어디라도 맥주가 있다면 좋다. 편의점 노상에서 마시는 국산 캔맥주, 맥주창고에서 마시는 산미구엘, 예스러운 호프집에서 마른 닭다리를 뜯으며 마시는 물 탄 맥주마저 좋다. 여름이 시작되면 나는 만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인사로 "날씨가 좋으니 맥주 많이 드세요~”하고 말한다. 여름이니까, 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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