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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n 21. 2023

야 너두

밝은 음악 만들 수 있어!

 지난 몇 달간 활력이 필요할 때 주로 들었던 음악은 뉴진스나 애드시런처럼 듣기 편하고 소심한 스텝도 좀 밟을 수 있는 음악이었다. 어릴 적엔 슬픈 음악을 즐겨 들었고 그것만이 나와 통하는 음악이라 여기고 살았다. 그런데 살면서 슬픈 일을 실화로 겪다보니 조금씩 슬픈 음악을 듣는것이 버거워졌다. 음악 한 번 잘못 들으면 밤에는 어둠에 울고 낮에는 햇살에 울고 가만히 서 있는 가로수만 봐도 슬펐다. 사는 것도 슬픈데 음악까지 슬프게 듣자니 좌우명이 슬픔인 것 같았다. 음악은 듣고싶고 슬프기는 물려서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선택한지 10년 남짓 되었다. 미니멀리즘과 서양 민속음악을 주로 듣다 클래식에도 입문했다.


 몇 주 전 <여름눈>의 라이브를 듣고 기분이 참 좋았는데, 그 날을 계기로 보사노바부터 시티팝까지 고루 들어보며 지내고 있다. 아침 조깅을 시작하니 뛰면서 Calm한 음악만 들을 수는 없기에 (뛰다가 한숨 쉬는 상황이 연출됨) 리듬이 있는 음악을 골라 들으며 달린다. 아주 활력이 되더라. 카페라도 갈 때면 걸음걸이를 마이클잭슨처럼 걸어보기도 하고 드럼 리듬에 꼭 맞춰서 발을 땅에 딛기도 한다. 쳐다보면 어때, 나 신났어.


 어제 엄마랑 데이트를 하며 만 오천보를 걸었다. 피곤하다고 생각되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때리고 누웠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몸이 너무 쌩쌩한데? 악기를 들었다. 이런 순간은 살면서 한 번 이상 오기 힘든 순간인데 밤새(라고 하기엔 비교적 짧은 시간인 새벽 2시쯤 끝났지만) 4곡을 만들었다. 모두 리듬이 있는 밝은(축에 속하는) 곡이다. 아마 내일 혹은 모레쯤 되면 휴지통에 처박힐 수도 있겠지만은, 어제의 진귀한 흥분의 도가니탕 나이트가 아까워서 재빨리 녹음을 잡아버렸다. 일단, 해보고 별로면 그때 휴지통을 오라고 하자. 


 작곡하는 스타일은 전 세계 모든 음악가가 다 다르다. 나 만해도 그렇다. 가사를 먼저 쓸 때가 있고, MR을 먼저 만들 때도 있고 다만 멜로디를 먼저 기록해 두고 추후에 여러 살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2021년 발매한 정규앨범은 14곡 중 10곡의 작업순서가 모두 달랐다. 이번에는 어떻게 작업이 이어질지 무척 기대된다. 이런 설렘, 3년 만이다. 


 오늘은 평소 마시던 커피보다 500원 비싼 바닐라 라테를 마셨다. 달콤한 우유와 카페인이 심장을 콩콩 두드린다. 아닌가, 어쩌면 어젯밤의 여운일지도. 밝은 음악, 나도 만들 수 있다는 설렘에 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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