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소녀에게 상냥한 맥주를>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종류의 맥주를 소개하는 글을 써 묶은 적이 있다. 이 제목은 이모와 나눈 인상 깊었던 대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의 12월 말, 엄마의 언니인 이모와 동그란 식탁에 앉아 차를 마셨다. 나는 이모께 이모의 서른은 어땠는지, 엄마의 서른은 어땠는지 차례로 물었다. 이모는 잠시 고민하시더니 짧고 진한 대답을 해주셨다.
“잔디야, 너 열여덟 살 때 기억나니? 호기심도 많고, 짜증도 많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되고 그러던 시절이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랑 지금이랑 나는 똑같아. 똑같다기보다는 아직도 열여덟 살의 마음이 살아있지. 해가 바뀐다고 생각하니 어떠니? 무덤덤하지? 변화를 찾으려 해 봐도 무언지 잘 모르겠지? 그건 그대로이기 때문이야. 그래, 나도 너희 엄마도 소녀라는 말이야. 열여덟 살처럼. 다만 주름이 좀 많아졌을 뿐이지. 그러니 내 동생에게 상냥하게 대해줘. 너의 열여덟 살을 생각하면서.”
이모댁에 3개월간 머무르며 엄마의 어린 시절에 대해 참 많이 들었다. 내가 엄마에게서 느꼈던 다양한 장점, 단점들은 엄마가 어린 시절부터 지닌 성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엄마도 점차 노인의 특성을 지녀가는구나.’ 하고 속단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욕심이 많아 사탕을 잔뜩 숨겨두고는 곧장 마음이 약해져 언니 오빠들에게 슬쩍 나누어주는 사람이었다. 애교가 많아서 아버지 무릎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하는 막내였다. 쿨한 어린이라서 누군가 큰 잘못을 저질러도 사과 한 마디면 시원하게 손을 내밀었다. 연민에 약한 개구쟁이 막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와 맥주를 마시러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처음엔 무슨 맥주를 만원씩 주고 마시냐며 혀를 끌끌 찼지만, 그 맛을 보고는 이따금 먼저 마시러 가자고도 하셨다. 가족이나 과거 이야기보다는 재밌는 TV프로그램이나 요즘 듣는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열여덟 살처럼.(요즘은 임영웅얘기만)
드디어 엄마와 조금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는 어느 날 새삼 맥주가 고맙게 느껴졌다. 우리를 상냥하게 만들어주는 그것. 그래서 지은 제목, 주름진 소녀에게 상냥한 맥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