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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n 25. 2023

거절을 공부 중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한 시간 넘게 누군가를 기다릴 때에도, 세 시간 들인 쇼핑에 건진 것 하나 없어도, 요리를 망쳐도, 맥주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상대할 때이다. 내가 조금만 견디면 상대방이 많은 평화를 얻어갈 것 같은 만남은 그래도 괜찮다. 베푸는 느낌이 들면 어찌어찌 견뎌진다. 그러나 하는 말마다 족족 ‘그게 아니고, 그건 내가 잘 아는데, 보통은 안 그렇지 않나?’ 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속으로 말한다. ‘시간이 아깝소, 이 사람아.’


 스스로 ‘내가 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며 자랑하듯 선포하곤 요점도 경청도 없이 칼자랑 하듯 대화하는 사람은 나와 맞지 않다. 어느 선배가 해준 조언이 참 멋져서 사람을 대할 때 노력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격하게 공감이 될 때,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추임새를 넣는 안 좋은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긍정의 표현이지만 결과적으로 말을 가로막는 무례가 된다. 자상하게 조언해 준 선배의 도움으로 고쳐보려 노력하고 있다. 경청은 대화의 기본이므로, 상대가 말하고 싶어 할 때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도 모른 척 들어주는 게 좋다. 그러면 그가 쟁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에 관해 말하고 있다면 가만히 들어주는 게 신나게 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즐거운 대화로 이어진다. 반대로 사사건건 ‘제가 그건 잘 몰라서’라고 대꾸하는 것도 대화를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 두 경우 모두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은 배려이다.


  사사로운 대화의 배려를 실천하려 노력하다 보니 경청에 서투르고 말을 조절하지 않는 사람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어찌 마음 맞는 사람만 만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최대한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수밖에.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서로에게 불필요한 만남이 확실하다면 용기 내어 거절하는 것뿐이다. 어쩔 땐 안 만나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은 인연도 있다. 물론 거절은 어렵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이 청하는 만남을 거절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필요한 때가 왔다. 처음에는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조금 더 곱씹어보니 결국 상대에게도 도움이 되는 처사라는 결론이다.


 거절하는 것, 너무 어렵다. 이제는 잘 거절하는 방법을 공부 중이다. 최대로의 존중과 친절을 겸비한 거절, 상대가 마음 상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로 그칠 수 있는 거절. 그런 거절 잘하는 사람도 될 수 있겠지?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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