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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Jun 26. 2023

수박에 도전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 방송인 이영자 님이 한 이야기가 마음에 맴돈다. 아주 아주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녀의 인생이 이걸로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는 모든 걸 바꿔보리라 마음먹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사람 말고 모두 싫어했던 그녀가 강아지를 들이고, 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고, 안 먹던 고수도 먹어보고. 뭐든지 이전에 싫어하던 것들을 골라 차례로 해보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모두 편견일 뿐이었다? 싫어한다고 단정했던 것뿐이었어.‘하고 말했다.


 나는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 유전으로 잇몸이 약하게 태어났고 산도와 당도가 합쳐진 음식을 먹으면 이따금 이가 시리거나 잇몸이 부어오르곤 한다. 그중 가장 반응이 잦은 음식은 달거나 시거나 한 '과일'이다. 때문에 씹지 않고 즐기는 과일 주스나 신 맥주는 곧잘 마시지만 깨물어 먹는 과일은 피하는 편이다. 물론 이따금 과즙이 팡팡 터지는 과일을 먹고 싶을 때도 있다. 다행히 채소는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방울토마토나 오이처럼 수분이 많은 채소를 먹는 것으로 나름 만족한다.


 그러다 수박이 먹고 싶어 졌다. SNS에서는 수박에 소금을 뿌려먹고 심지어는 구워서 먹기까지 하더라. 꿉꿉한 날씨가 연이어 이어지는 초여름, 마트에선 수박 출시에 시끌시끌한 초여름. 소심하게 수박 주스를 사다 마셨다. 아, 시원해. 하지만 진짜 수박이 먹고 싶어. 사각하고 썰리는 식감, 풉풉 씨를 내뱉는 순간의 재미, 남은 과즙을 접시채 들고 마시는 예의. 그래서 호기롭게 반통짜리 수박을 샀다. 썰어서 한 입 먹으니 세상에, 이미 살아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재빨리 양치를 하고 입안을 청결하게 한 뒤에 남은 수박을 착착 썰어 넣으며 생각했다. 까짓 거 오렌지도 먹어 그냥?


 힘든 고비, 새롭게 다시 살거나 멸망하거나 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나 또한 겪어보았다. 그때 그녀처럼 싫었던 것을 하나씩 해보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조금 더 빠르게 새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살면서 고비가 한 번뿐 일리 없다는 것을 안다. 다음 고비에는 나도 그녀를 따라 해보리라.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무얼 싫어하는지도 잘 생각해 보아야겠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차근차근해봐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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