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함을 뒤져야 할 일이 있었다. 이래저래 검색해도 찾는 정보가 나오질 않자 궁리 끝에 분명 상대방이 내 이름을 썼을 것이라는 추정으로 ‘잔디’를 검색했다. 찾으려던 정보는 없었다. 아마도 지워진 모양이다. 그런데 검색결과 세 번째 페이지쯤 지났을까. 옛 연인의 편지가 차례로 나열되어 있었다. 모든 편지에 내 이름을 적었다는 말이다. 나는 보관함으로 들어가 편지를 열어보았다.
옛 연인과는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었다. 치사한 마음을 말로 전하기는 차마 창피하거나, 넘쳐흐르는 사랑이 어디론가 흘러가버리는 것 마저 아까울 때 편지를 썼다. ‘하나’, ‘둘’, ‘셋’ 숫자가 제목인 편지 중 마지막 편지만이 숫자 대신 ‘마지막’이라고 제목 지어 있었다. '하나'부터 차례로 편지를 읽었다. 마음을 꼭꼭 눌러 담은 정성이 여실히 보였다. 문맥에 맞지 않는 조사가 끼여있는 것은 아마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느라 남겨진 흔적이리라. 메일 끝에는 시도 한 편씩 붙였다. 말로는 도저히 못 할 간지러운 표현도, 멀어지는 관계를 끌어오려는 서로의 노력도 보였다. 함께 애써보자고, 멀어지지 말자고 다짐하며 같이 즐겼던 음악과 사진을 추가하기도 했다. 마지막 편지인 '마지막'까지 열어 읽으며 나는 ‘잔디야’라는 글자를 커서로 긁어 보았다. 잔디야, 잔디야, 잔디에게 부탁해, 잔디에게 묻고 싶어. 세상에 내 이름을 이토록 많은 글자로 적어낸 사람이 또 있었을까.
사랑에 빠졌던 단 한순간들을 기억한다. 가만 보니 내게 '이 사람, 보면 볼수록 참 괜찮네’는 없었다. 그냥 신발끈을 묶는 한 순간.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한 순간. 위스키를 음미하는 한 순간. 포장마차에서 머리를 긁적이는 한 순간 같은 말도 안 되게 작은 찰나에 믿을 수 없이 빠르게 부푸는 풍선 같은 마음.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걸 사랑이 아니라 기분이라 불러야 할까 보다. 한 사람에게 정성을 쏟는 시간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밉고 미워 베갯잇을 눈물로 세탁할 때도 있지. 그럴 땐 ‘잔디야’ 적힌 글자를 바라보며 마음을 쓸어내려 본다. 차마 지우지 못한 고양이 사진을 보며 이름을 불러본다. 남은 마음 중에 다정한 것들만 찾아서 맥주 거품과 함께 호로록 마셔본다. 마음은 남아. 다시 돌아가지 않을 길에 조명이 되. 돌아보면 언제나 거기 있었던 시간을 발견할 수 있게. 오늘은 메일함에 적힌 내 이름이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