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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디 Sep 04. 2023

갖고 싶은 것과 가져선 안될 것

 평소에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면 물욕이 거의 없는 편이다. 이불에 구멍이 뚫렸다거나 신발에 구멍이 뚫렸다거나 코팅팬에 아무리 기름을 부어도 계란이 들러붙는다거나 하는 '교체'의 의미를 가진 것들 위주라서 욕망에 기인한다기보다는 필요에 따른 필요이다. 그것마저 사기를 미루고 미루다 유나가 창피해서 두고 못 보겠다며 새 운동화를 사주는 식이다.(어제 유나가 운동화 사줬다. 양 뒤꿈치에 구멍이 두 개 뚫렸는데 그게 너무 창피하다는 거다. 하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므로 버릴 생각 따위 없다.) 옷도 그렇다.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에는 (2시간 반 정도 돌아다녀야만 찾을 수 있지만) 값은 싸고 품질은 좋(아보이거나)은 옷들이 많다. 신발은 만 원짜리가 너무 많아서 이만 원 이상 되는 걸 사기가 너무 아깝다. 개다가 나는 무슨 옷을 입어도 대충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이 있다. 또 뭐가 있었지, 아무튼 입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 사고 싶었던 게 뭐가 있었는지 곰곰이 헤아려야 할 정도니, 그렇다.


 그런데 요즘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우선, 나름 괜찮은 스피커가 탑재된 턴테이블을 갖고 싶다. 선물 받은 귀한 LP들을 49,000원짜리 포터블 턴테이블로 듣자니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다. 두 번째로는 놀라운 가성비를 자랑하는(값은 싼데 메이드인 스페인 이라던지) 나일론 기타가 갖고 싶다. 지금 쓰는 야마하는 70년대 빈티지로 이제껏 나온 곡들의 원천이자 결과인지라 내가 아주 애지중지하는 친구다. 그런데 저음이 다소 약하고 튠이 불안정한 단점도 있다. 맑고 까끌한 소리를 잘 내고 잔음도 예쁘지만, 좀 더 따뜻한 소리가 이제는 필요해졌다.(몇 주 전까지 일렉기타 알아봐 놓고 이러는 인간) 세 번째로는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 애플 워치. 아예 사과가 그냥 되고 싶나 봐. 꼭 아이패드에 필기하고 싶고, 캘리그래피도 해보고 싶고, 오로지 색으로 이루어진 커버아트도 직접 그려보고 싶다. 아이패드가 아니면 그릴 맛이 안 날 거 같다. 안나 안나. 절대 안나. 마지막으로 싱어송라이터 민수홍 씨가 사용하는 보컬 멀티 이팩터가 갖고 싶다. 설정해 둔 옵션대로 즉석에서 화음을 만들어주는 장비이다. 그것만 있으면 지금 라이브에서 하기 어려운 곡들을 재미있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렉기타를 팔아서 사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연주해 주자 하고 들고나간 날 '기타가 너무 멋지다', '소리가 너무 좋다', '잔디 목소리랑 너무 잘 어울린다' 등등의 말을 들어서 팔지도 못했다.(당근에 이미 내놨는데 팔리지도 않음)


 내가 욕심내면 안 되는 건 주로 사람의 마음이다. 우선, 상대방이 내가 그에게 해주는 대우와 똑같이 대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모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크게든 작게던 자동적으로 상대방을 판단(이것을 파악 정도로 생각해도 좋다)하기 마련이고, 그 기준은 내가 그를 대하는 태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금세 허무해진다는 걸 부쩍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상대를 대할 때도 적용되지만, 상대가 나를 대할 때도 적용된다. 나에게도 상대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몇 번 만나보고 나이스한 태도를 보았다고 해서 덜컥 마음을 주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착각을 가져선 안된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정해두고 무언가 하는 건 불가능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한다. 따라서 미리미리 해두지 않으면 내 인생은 쫄딱 망할 것이다. 나는 이미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하철도 거꾸로 타고 버스도 반대로 타고 어쩔 땐 아예 다른 번호 버스를 잘못 타기도 하는 인간이기에 나의 허당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약속이 있을때는 늘 30분 일찍 출발하고 중요한 일은 아이디어가 있을 때 바로 처리하기로 해 달라고 오늘도 스스로에게 사정한다. 세 번째는 컵라면이다. 마지막은 구슬프게도 평소와 다르게 이것저것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오늘의 말은 여기서 줄이기로 하겠다. 5분간 고개를 숙이고 있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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