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계 이야기
“호오~박! 내가 딸기님을 이길 것이다!”
“웃기고 있네, 딸기. 나는 언제나처럼 호박씨를 이길 거야. 후후.”
딸기님은 절대 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지금부터 고대까지 무려 셀 수도 없는 만큼 대결을 했다. 그리고 항상 성적은 비등비등해서 더 약이 오르는 숫자였다.
두 인형이 등을 돌리고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호박씨는 한참 동안 걷다가 뭘 해야할지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흠, 일단 호박씨가 가장 아끼는 친구부터 정리해야겠다, 호박. 귀요미에게로 가는 거야!’
딸기님도 그건 생각할 게 뻔했다. 그러나 한 짓이 있어서 직접 찾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제법 냉정해서 촐싹대는 아이들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랑이씨와 함께 있을 때 눈치를 좀 준 일이 있었다.
“앗, 무슨 일이세요? 귀요미, 너무 좋아요~!”
귀요미, 인형계의 절대 아이돌이자 몰랑이씨와는 달리 그 아이는 시작부터 엄청 다르게 시작했다. 이 작고 귀여운 갈색 곰인형은 110cm인 바디필로우의 아버지와는 달리, 무려 한 손바닥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항상 웃고 있는 눈과 입은 한눈에 호감상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시발점은 꽃거지였다.
“음, 호박씨가 오늘은 너의 상태를 보고 싶어서.”
“엑, 설마……괜찮아요. 그나저나 복수의 신들께 잡혀간 거 아니에요? 호박씨야말로 괜찮으세요?”
“호오박, 괜찮다. 오히려 그거에 관해 왔다. 그 분들께서 이 무지한 수성의 신도에게 협박, 아니, 아니지. 신성한 충고를 주셔서.”
“?”
꽃거지. 진짜 얼굴만 수지급 얼굴일 뿐, 부모도 없는 고아라 구걸을 하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런 그는 마계 지향 국가인 미룽에서 자랐다. 얼굴에 땟국물을 잔뜩 묻히고 헤헤거리며 돌아다녔는데, 그런 그는 걸어 다니던 중 발을 그만 잘못 디뎌 몰랑이씨의 엉덩이에 얼굴을 들이박고 말았다. 그는 누구에게나 상냥한 사람이었지만, 아끼던 수트에 흠집이 난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꽃거지를 당장 입양하는 동시에 스카우트해버렸다. 미룽의 아이돌로. 마침 비주얼도 되겠다, 귀요미는 트레이닝 받자 활짝 꽃이 피었다. 그는 노래도 춤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박씨는 노래는 재능이 있어도 춤은 잼병이라, 그런 면에서 가수의 길을 가는 그를 조금 부러워했다.
“인터뷰를 할까 해. 귀요미가 보는 몰랑이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의 업적을 정리해 일대기를 편찬하는 작업을 할까 해서.”
“으앗, 호박씨가요?! 그거 좋은데요! 우와, 복수의 신님들……최고이자 최악의 복수를 하시네요!”
“호오, 박. 그런 면에서 몰랑이씨의 라이벌이었던 난 정말 짜증난다고.”
“근데 그럼 딸기님은 안 오세요?”
핵심이었던 지점을 찔렀다. 호박씨는 사정을 얘기하고는 그녀와 대결 중이라고 말했다. 귀요미는 금세 이해하고는 좀 우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으음, 귀요미는 아버지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만나고 나서 확실히 엄격하면서도 다정한 분이라는 걸 알았어요. 일단 아는 것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먼 옛날, 아주 먼 옛날.
몰랑이 아버지는 어머니 레인님을 공녀로 모시는 가문 에이베르의 소속 기사의 종자였다고 해요. 그런데 에이베르에서는 정말 끔찍하게 레인님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데요. 레인님을 외롭게 방치하고 지하 방에 가둬뒀데요. 그건 왜인지는 몰라요. 그런데 몰랑이 아버지는 그런 레인 공녀님을 매번 지하방에 밥을 가져다줄 때마다 위로해줬데요.
레인님은 원래 복수의 신님이 될 만큼 독하지 않았데요. 아버지의 말로는 음, 오히려 비처럼 촉촉하고 아름다운 감성을 가져서 예술에 재능이 은근 있었데요. 그런데도……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 이야기만 물어보면 금세 시무룩해져서 말하지 않았어요. 근데 귀요미는 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렇게 매일 본 친구이고 그러다가 사랑에 빠져서 집안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는데도, 레인님은 집안을 버리기까지 했는데도 아버지는 죽임 당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아버지도 중세였고, 기사였으니까 인형들하고 싸워서 레인님을 지켰을 수도 있어요. 으음, 러브스토리는 이쯤하고 아버지의 업적에 대해 말해 달랬으니까 제가 다 자랑해줄게요! 엣헴, 귀요미는 아버지에 대해서 다른 입양아들보단 늦게 입양됐지만 다 안다고요! 아버지는 정말 멋진 인형신이었으니까요.
일단 인형계에서 최고로 멋진 인형신 예술의 신이세요!
근데 아버지가 말하길 자기는 진짜 모든 신을 다 해봤데요. 그건 믿을 수 없어요. 귀요미는 도대체가 이해가 안돼요. 아니, 어떻게 모든 신을 다 할 수 있어요? 그거 인형 맞아요? 인형이 인간과 다르게 신이 되는데 한계가 없다고는 하지만……재능의 편차는 있는 거잖아요. 근데 아버지는 다 해봤데요. 이건 제 생각에는 허풍 같아요.
호박씨는 거기까지 듣고는 그건 허풍 같다고 동감했다.
“흠, 몰랑이씨는 가끔 의뭉스러운 데가 있다니까.”
“맞아요! 아버지는 다 알면서도 말을 안하세요. 몰몰랑~하면서 혼내기나 하고, 맨날.”
“그건 네가 철딱서니 없어서 그렇지.”
“엑, 그런가요?!”
아무튼 더 있어요.
귀요미의 설명이 계속됐다.
으음, 아버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러브스토리랑 위대한 신으로서의 업적 말고도 인형 몰랑이라는 업적에 대해 말하자면, 글쎄요. 정말 많은데……일단 저와 고미고미 누나를 포함해서 미룽의 국회위원들과 함께 고아원을 운영하고 계세요. 전 그 분께 구원받은 셈이죠. 절 보고 뭐라나, 마계 지향 국가들에 이렇게 많은 고아들이 있는 줄 몰랐데요. 후우, 천계랑 다르게 마계는 늘 이런데.
아버지는 바보.
그렇지만 미룽을 위해서 일해주신 것도 있고, 그 이후에 마계 지향 국가들을 다 돌면서 순회공연과 함께 고아원, 아픈 인형들을 위한 자선공연도 하고 기부도 많이 했데요! 일단 신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지만 많이 했다고 하시니까…. 저 그거 알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뿅뿅위키도 쳐봤어요. 뭐더라, 컴퓨터가 생긴 근대부터 작성된 내용이긴 한데 예술의 신으로서 새 예술사를 뒤집을 만한 작품들을 몇 번이나 만들었데요.
원래는 피아니스트였다던데요? 1800년대 그쯤 언저리니까, 근데 아버지는 힙합이 생기고나서 몰랑이씨YA 노래 만들고는 너무 부끄러워서 힙합은 못한 거 같더라고요. 앗, 이게 아닌데!
귀요미가 몰랑이YA에 대해 언급하자 호박씨가 비웃었다.
“그 노래 정말 대박이었다! 호오박~ 너무 웃겨. 어떻게 그렇게 못만든 흑역사랩을 게시판에 공개글로 올려두냐.”
“아버지 왈, 난 몰랐단 말이다! 게시글이 비공개인 줄, 몰몰, 랑……. 수치야. 난 바보 같아!”
“캬캬캬캬캬! 너무 웃겨~~!!! 호박씨 배꼽 떨어져~~!”
호박씨는 동그란 인형몸으로 의자에서 배를 잡고 웃다가 바닥으로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는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몰랑이씨는 분명히 자기는 비공개글로 올렸다고 생각하고 뿌듯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로 얼마 뒤 전화가 오는 것이다.
「몰랑이님, 그, 뭔가 올리신 글이 있습니까?!」
「몰랑이님, 몰랑이씨YA는 도대체 뭡니까?」
신도들의 질문과 전화가 빗발쳤다. 가사를 떠올려보면 분명 초반이 이랬다.
「나는 몰랑이씨Ya. 너희들은 모두 나의 Hater~
나는 몰랑이씨Ya. 나는 최고, 너희들은 최, 저!」
그때 술을 먹으며 작사, 작곡 해서 앞부분이 가물가물하긴 했다. 이것보다 더 웃긴 거 같았는데…호박은 한숨을 쉬었다.
“그 때 얼마나 장난 아니게 비웃겼는지 모른다. 호박은 안다. 몰랑이씨의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레인님께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하여튼 간에 내가 부끄러워서 못살겠다고 몇 번이나 등짝을 맞았는지 모른다.”
“그 곡 파일 있어요?!”
귀요미의 눈이 반짝거렸으나 호박씨는 다시 엉덩이를 문지르며 의자에 앉아서는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인형 의태가 순간 깜짝 놀라 풀려 잘생긴 미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오렌지색의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잘 묶은 그는 회색 눈동자로 장난스레 씩 웃었다. 옷은 스포티한 캐쥬얼 복장이었다.
그는 요염한 딸기님의 모습을 떠올리다 귀찮아서 의태는 집을 나가기까지 안하겠다고 선언했다. 귀요미가 그럼 저도 그럴래요, 해서 두 인형은 나란히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구관 인형 모습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간에 무지하게 예뻤다. 호박씨는 청순하고 귀여운 미가 흐르는 갈색 머리의 호박색 눈동자인 귀요미를 보고는 등을 통통 두드렸다.
“그래. 업적이 있으면 흑역사도 써야지. 이대로 복수의 신님들에게 복수만 당할 수는 없어.”
“아앗, 괜히 말했네요!”
“캬캬, 호오~박은 모든 걸 쓸 것이다!”
호박씨는 거기까지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요미의 집은 성공한 10년차 아이돌의 집이라기엔 너무나 단촐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꽃거지일 때를 잊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정도면 신도감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도 검소한 편이라, 아버지를 워낙 대단한 분으로 뒀다고 해도 안심하긴 일렀다.
“아무튼 조심해라.”
“네! 항상 신경쓰고 있어욥!”
“어디 가서 그 말투를 들키지도 말고.”
순간 안타까운 눈빛으로 호박씨는 귀요미를 봤다. 가끔 너무 귀여운 척 하려는 꽃거지 때의 버릇이 문제였다. 저러니 팬들이 서른이 되어도 섹시 컨셉이 아닌 청량 컨셉만 하라고 하지. 인간과는 다르게 인형은 이게 좋긴 하다만.
호박씨는 밀려있는 설거지도 해주고, 요리도 해주며 다정하게 귀요미와의 한 때를 보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후 인터뷰를 기록하고는 자신이 기억하던 몰랑이씨와 레인님을 떠올렸다. 분명 긴 기록이 될 터였다.
“호오박, 일대기를 도대체 언제 다 쓰냐.”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딸기님이 집에 도착한 소리가 들렸다. 방에 와 노크를 하고 들어온 걸 본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안았다.
퐁.
의태가 또 풀렸다. 그걸 본 딸기님 또한 의태를 풀고 인간의 모습이 되어 두 인형은 서로를 껴안았다. 약간 오렌지빛이 도는 적발의 호박씨와는 달리 붉은 딸기씨의 적발은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와 동시에 빛나는 갈색 눈동자는 상냥하면서도 위험하게 빛났다.
“딸기, 오늘은 어땠어?”
“흐음. 그냥 괜찮았다.”
“후후, 내 생각엔 귀요미에게 갔다와서 이제 인터뷰 정리하고, 네가 아는 거 다 쓰려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
“호오~박, 도대체 어떻게 안 거냐?! 하겠지?”
호박씨는 자신의 볼을 통통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딸기님을 보고는 그냥 푹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졌다. 늘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읽는다. 그러나 오늘은 졌어도 다음에는 이길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몰랑이씨의 흑역사였다. 딸기님은 말했다.
“난 오늘 몰랑이씨의 지인인 땡땡이님에게 갔다왔어.”
“핫! 그 분이 있었지!”
“훗, 늦었어. 내가 선점했다고. 넌 대신 귀요미에게 가버렸지만.”
딸기님은 빙글빙글 웃은 뒤 호박씨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가볍게 뽀뽀를 했다. 그녀는 침대에 앉지도 않고 멀어져 갔다. 아쉬워. 방금 전 닿았던 입술의 감촉을 떠올린 호박씨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기님~~!!!”
와락.
그는 결국 오늘도 딸기님을 사랑하기 위해 그녀의 허리를 온몸으로 껴안았다. 가벼운 백허그가 아니었다. 뒤이은 입맞춤은 격하고 농밀했다. 인형들은 성관계는 안해도 애무는 한다. 그래, 오늘도 나는 너를 좋아할래. 비록 우리가 영원한 라이벌이라 해도.
호박씨는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 올렸다.
***
땡땡이님은 오늘도 죽음의 신의 신전에서 멍 때리다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요즘 몰랑이씨가 떠난 후로 이런 행동은 잦은 상태였다. 그래서 동료 신도들이 너무 힘들면 내가 일 대신 해줄까 제의할 정도였다.
사실 레인님이 찾아와 준 것이 고마울 정도였다. 그녀는 몰래 자신에게 찾아와 호박씨와 딸기님 부부를 잡아 복수할 테니 만약 인터뷰하게 되면 정말 모든 것을 다 털어놔달라고 부탁했다. 그 정도로 땡땡이님은 몰랑이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절친 중의 절친이었다.
“땡, 오늘은 마음이 무거운 하루가 되겠다, 땡.”
그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래서 딸기님이 찾아왔을 때, 자리에서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평소 그녀와는 사이가 별로였지만(몰랑이씨의 라이벌이 호박씨였으니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정말로 고마웠다.
똑, 딱, 똑, 딱.
교도소의 시계 바늘 소리가 오래갔다. 귀에 자꾸 맴돌아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침묵은 깊어져 어떻게 말을 시작하면 좋을지 알게됐다. 딸기님은 이 늙은 맹수의 말을 꺼내게 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똑.
마침내 시간이 2시가 되었을 때였다. 뛰어난 기자이자 마케터, 상인인 그녀는 땡땡이님을 슬쩍 떠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