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계 이야기
“전화에 응해주셔서 우선 감사드립니다, 땡땡이님.”
“……아닙니다. 저는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인걸요.”
“하지만 원래는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평생 말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질문이 다소 자극적이군요.”
“그렇습니다. 이렇게까지 안하면 이 정적이 계속될 것 같았거든요.”
딸기님은 상냥하게 웃었다. 그녀는 현재 인형계의 어느 잡지 편집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의 인터뷰어를 다정하게 대해줄 수는 없었다. 땡땡이님은 이런 사람이라 조금 날선 질문으로 유도하지 않으면 속 깊이까지 얘기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땡땡이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레인님의 사전 부탁이 있었으나, 상대방은 그걸 모를 터였고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사별한 친구의 얘기라 술을 먹지 않고서는 얘기를 꺼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장소를 잘못 잡았을 수도 있겠다. 원래 이런 이야기는 카페에서 한적하게 차를 마시면서 하던가, 술을 먹던가 하면서 얘기해야만 한다. 그러나 땡땡이님은 좀 고지식한 사람이라, 게다가 직업이 교도관인지라 시간도 없었고 음료, 술을 더더욱 잘 먹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사과 먼저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레인님이야 그렇다치고, 몰랑이씨가 인간이 되려 한 이유를요. 우리는 인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인간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돌고 돕니다. 우리 부부야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치더라도……몰랑이씨는 그러지 않아도 더 오래 인형계에 있을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해 우선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저는 이 건에 대해서는 너무 납득하기 힘듭니다. 감정적으로 저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술을 들이키고 싶군요.”
“정말 무례하군요.”
“무례하게 안하면 당신은 저를 정말 나쁜 인형으로만 볼 것, 아닙니까? 우리 예전에 그랬잖아요.”
“땡, 당신들은 인형도 아니야!”
딸기님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땡땡이님을 봤다. 물끄러미 올려다본 얼굴은 씨익, 씨익,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는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어떻게 씨프 그룹에서 일한 한 범죄자 인형들이 신이 돼! 어떻게 대형 냉장고까지 한 번에 슬쩍하는 손재주를 가진 사람이 신이 돼! 아무리 죄업을 다 청산한다고 해도 그렇지! 그 길을 걸어서, 인간이 되어도 불행한 녀석들이! 어떻게 양심도 없이!”
“흐, 우리는 그래서 악마신도 해봤습니다. 뭐, 어때서요?”
“이 땡땡할 것들이! 측간신님들에게 누텔라똥크림이나 맞아라, 땡!”
땡땡이님은 대노했다. 그럴 만 했다. 그야 그는 그녀와 남편인 호박씨의 예전 모습, 행보가 어떤 지를 모두 봤기 때문이었다. 교도소에 온 범죄자들은 대부분 범죄 조직 씨프 그룹에서 일한 이들이었다. 이 씨프 그룹이란 범죄자 인형들의 혈맹이나 마찬가지인데, 마계에서는 이 조직이 점조직으로 형성되어있어 잡기도 힘들뿐더러, 무려 대기업 같은 곳에도 들어가 있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었다.
호박씨와 딸기님은 그 범죄자 무리의 간부급에 있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에는 갱생도 안되고 그냥 처형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뭘해도 잘 할 사람이긴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기사의 하단을 보고 나서였다. 사형수였던 두 사람이 마계의 지성의 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마계에서는 신들에게 결투장을 내밀면 그 결투에 응해야만 했다. 주로 최악에 자리한 범죄자들이 이 방법을 썼고, 신들은 그때마다 결투장 한 장으로 범죄자 인형들을 잡고는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이 두 부부는 신감이었다. 미친 두뇌로 전대 지성의 신을 체스로 이기고 말았다.
1차 시험, 체스.
2차 시험, 기본 상식 시험
3차 시험, 마케팅 관련 시험
4차 시험, 판매 실전
5차 시험, 4차 시험과 연계된 지역 특산물 홍보
6차 시험, 관련 기사 모두 검토 및 작성
7차 시험, 실전 인터뷰 및 뉴스 보도(카메라 테스트 포함)
그 외 기밀.
여기까지.
공개된 내역은 미친 테스트였고, 그 모든 시험들을 모두 이긴 건 다름 아닌 전대미문의 대도 부부였다. 그렇게 이 부부는 화제를 모았고, 단 하나의 조건을 토대로 모든 마계의 신들이 원으로 둘러싸 부부를 축복하고 저주하며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모든 죄업을 청산하는 조건으로 신좌에 오르며, 동시에 그날 부로 호박과 딸기는 범죄자의 신분에서 탈피해 범죄자를 처단하는 처벌자의 위치로 오른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 두 사람은 마계, 천계를 할 것 없이 공적이 되어 다시 처벌될 것임을 알린다」
땡땡이님은 딸기님과 호박씨가 대단하다고는 여겼다. 두 인형이 전대 지성의 신을 찍어누르는 모습은 마치 영화와 같았다. 세상에 그런 천재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상식이 모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보다도 역겨웠다. 자신은 죽음의 신인 제 아무리 마계에 있는 신좌지만, 죽음의 순간 천칭에 죄업을 다는 역할을 하는 신의 신도였다.
그 말은, 자신은 마계에 있더라도 정의를 따르는 편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더더욱 그는 두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다. 실제로 교도소에 있으면서 두 사람으로 인한 피해자나, 양산된 범죄자가 끝없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인형들이 너무 짜증나고, 어떨 때는 인간이 되어서도 불행해야된다며 비웃고 불쌍하게 여기기도 하고, 차라리 신좌에서 밀려나 죽었으면 하는 원망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직접 대면했을 때 곱게 말이 나갈 리 없었다.
「안녕하세요, 땡땡이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딸기입니다.」
「호오~박. 호박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땡땡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만.」
그는 두 사람의 얼굴도 쳐다볼 수 없었다. 역겨워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사실 지금 이렇게 대면해 있는 것도 무척 심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상급 신도인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면서 범죄자들을 지켜봤는데! 그러나 돌아선 그에게 딸기님이 물었다.
「따님은 괜찮으세요?」
거기까지 들은 그가 폭발했다. 씨프그룹을 창설한 건 호박씨가 아니었다. 눈앞의 딸기님이었다. 그리고 그의 딸은 씨프 그룹의 인형에게 당해서 소중한 신의 목걸이를 잃어버릴 뻔했다. 신의 증표는 인형이 태어나는 순간 한 번 받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신과 연결되는 증표인데, 이건 집안과도 관련 있었다.
거기까지였다. 땡땡이님은 씨프그룹 때문에 자기 집안을 말아먹을 뻔 했다. 상급 신도라면, 그것도 죽음의 신님의 교도관 생활을 한다면 더더욱 그런 일들이 간혹 가다 있긴 했다. 그러나……이 순간 정말로 한 대 따귀를 날리고 싶었다. 그런 일을 딸기님은 가볍게 묻는 것이었다.
땡땡이님은 씩씩 거리다가 조용히 의자에 미끄러져 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딸기님은 조용히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본래 그녀의 대외용 미소는 정말 웬만해서는 풀리질 않았다. 그런 여왕, 여신님이었는데……오늘따라 정색하고 있었다.
딸기님이 물었다.
“그래서요? 우리, 만나기로 한 시간이 길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 말하지, 땡. 땡땡이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땡. 그러니 네가 찾기 어렵게 진실을 빙 돌려서 말해주겠다 땡.”
“딸기, 그러셔도 좋습니다.”
“욕지기가 나온다, 땡. 난 이렇게도 너희들을 역겨워 한다 땡. 본래 마계에서도 천계에서도 범죄자 출신 신은 경멸당한다, 땡. 그러니 딸기님은 몰랑이씨를 이해해야 할 거다, 땡.”
“네?”
땡땡이님이 말했다.
“몰랑이님은 한 번 살해당한 적이 있다, 땡. 그리고 한 번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복수한 적이 있다 땡. 그걸 들켜서 신좌에서 밀려난 거다. 그러니 너희 부부는 절대 그를 이해해야만 한다, 땡. 그 녀석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녀석이니까, 땡.”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어……?”
말하는 대로라면 분명히 레인님을 지키려다 한 번 죽은 걸 것이다. 그리고 레인님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복수한 적도 있을 것이었다. 기억으로 봤을 때 그는 예전에 공작가 아이베르를 모시던 기사였다고 한다.
또한 인형계는 결코 한 번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환생할 때 모든 기억을 잃는 인간과는 다르게, 인형계는 모든 기억이 주어졌다. 그래서 인형들은 인간이 무척이나 되길 소망했다. 기억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그 인간이 되는 것은 신에 도달한 소수였다. 딸기님이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도대체 그 지키기 위해서라는 건 누구고, 왜 죽은 거죠?”
“그러니까 빙 돌려서 말하겠다는 거다. 몰랑이는 말이지…….”
길고 긴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땡땡이님이 말하길, 몰랑이씨는 예전에 아주 작은 어린이였을 때부터 아이베르 가에서 기사의 종자로 일했다고 한다. 그 때마다 자주 히스테리를 부리는 공작가 안주인인 인형 레니아 퀴셔 아이베르님을 뵈었는데, 그 옆에 있던 레인님도 종종 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레인님은 어딘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레인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그는 비가 오는 날이면 종종 공녀님의 행방을 묻곤 했다.
「 님은 어디계세요? 요즘 통 보이질 않네요.」
그러면 그때 가서야 그를 가르치고, 돌보던 기사 오웬이 말했다.
「그야 공녀님께선 방에 계시겠지. 이런 비가 오는 날이면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니. 쯧, 소문으로는 레니아님께서 공녀님을 학대한다는 말도 떠돌지만, 아르웬- 너는 어디 가서 이런 말 하고 다니면 안 된다. 저번에 하녀들이 그랬다가 몇 명 축출되어서 다른 가문에 추천장도 없이 쫒겨 났잖니.」
「그것도 그렇지만요. 아, 저 옆집에 꽃집 아이랑 얘기 좀 하다 올게요. 혹시 몰라서, 공녀님 방에 좀 갔다드리라고 할까 하고요.」
「뭐어? 아르웬, 너 설마 공녀님 짝사랑 하니?」
그러면 땡땡이님은 늘 설레는 마음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꽃집으로 수줍게 들어서는 몰랑이씨를 봤다고 했다. 딸기님은 여기까지 들었을 때 기분이 새로웠다. 설마하니 레인 부부의 과거 얘기를 들을 줄이야.
그녀는 자신들과 정반대인 과거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베르베르. 땡땡이님의 중세 때 몰랑이씨를 만난 이름은 이거였다. 딸기님은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꽃집 아이였는데, 매번 1층 탑 창문에 앉아 턱을 괴고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공녀님 얘기가 왜인지 신기했다. 아르웬이 그녀를 은근 좋아하는 걸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으니까. 그래서 한때일 것을 알았다. 그것이 베르베르가 15세이고, 아르웬이 12세일 때였다.
레인님은 참고로 그때 13세였다. 그런 그녀를 어디서 어떻게 맨날 보는 거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서쪽 경비초소 탑의 1층. 그녀는 그곳에 앉아 책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 답했다. 아하, 얜 기사의 종자니까 그런가 보다. 그도 그런가 했다. 그래서 그때 반했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아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왜냐면, 애가 중증이 되어버렸으니까.
매번 아르웬은 꽃집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장미를 사갔다. 그것은 새빨간 장미였다. 아이의 용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 베르베르는 제 용돈과 매상으로 몰래 채워 그에게 은혜를 내리곤 했다.
그러면 아르웬은 그것을 공녀님에게 가져다 달라고 끊임없이 하녀들에게 바치고는 했다. 하녀들 사이에서 아이는 꽤 귀여운 곰인형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처럼 커다란 몸집이 아니었고, 낡은 듯 하면서도 외양은 같은 못생긴듯한 인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녀들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누군데 대체 이 장미 한 송이를 바치는 걸까, 우리 아가씨께? 결국 장미는 전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발에 짓밟혀지거나, 쓰레기통에 쳐박힐 뿐이었다. 베르베르는 그 꽃이 그렇게 될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이베르가는 인형계의 마계 지향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폐쇄적인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웬의 선물이 항상 사라지는 것만은 아닌 듯 싶었다. 하녀들 중 누군가가 몰래 전달하고 가거나, 오웬이 연무장에서 벗어나 공녀님의 방문 앞을 지키는 호위병들이 면서 더 편지와 꽃은 전달되기 일쑤였다.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레인은 공녀의 신분에서 벗어나 어느 날 자신을 몰랑이라 칭하는 인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녀의 어머니인 레니아가 그 편지를 알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아서,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상당히 오랫동안 교류했다고 했다. 공녀님은 자신을 레인님이라 칭했다. 중세 당시의 모습은 구름 모양인 인형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비를 상당히 좋아했다. 할 일이 없으면 탑으로 가 창문 밖을 구경하곤 했다고 한다.
베르베르는 거기까지 듣고나서야 딸기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