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계 이야기
뚜-뚜루루-
몇 번의 통화음이 들리고나서, 덜커덕 대통령을 바꿔드릴까요? 하고 묻는 목소리가 나왔다. 직통 번호로 해도 되지만, 그러면 뭔가 너무 급해 보이잖아. 그런고로 호박씨는 느긋한 목소리를 꾸며댔다.
“호오박, 호박. 좋은 아침입니다, 멍멍이씨!”
“멍, 멍! 미룽의 대통령, 멍멍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지성의 신님! 그런데, 무슨 일로……”
말끝이 조금 흔들리는 게 불안해보였다. 그래서 호박은 약간 골려주기로 했다.
“아니~호박이 그냥 전화해봤다. 느물느물~해보이냐? 이히히히, 한 나라의 대통령을 이 지성의 신님이 약올려준다. 그것보다, 조금 수상한 게 있어서 말이지.”
다른 건 아니고 몰랑이씨에 대해 묻자 그는 아르웬 피커라는 한 인형이 중세 미룽 지역에서 자랐다고 했다.
“뭐? 그 녀석 천계 사람 아니었어?”
“그럴 리가요. 유서 깊은 마계 인형입니다요.”
“……하지만. 알았어. 끊습니다.”
수상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 따지자면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 녀석은 그러고 보니 늘 인간 세상의 신들의 일에 간섭하고 수호 인형이 되었다. 그 후 음악의 신과 예술의 신을 하고 나서도 그랬다. 인형신들은 이제 인간사에 질려서 누군가의 인형이 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유별난 아기 같은 인형신이 있었으니 바로 그였다.
어디보자, 누구더라….
원래 몰랑이씨는 인간계의 음악의 신을 수호하지 않았나? 호박씨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아무튼 듣기로는 지금 그는 잘 살고 있긴 했다. 그녀의 자식은 라나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던데. 호박씨는 별로 그 둘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이들에게 몰랑이씨의 행방을 물을 생각도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인형과 다른 유기생명체라 인형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형과의 대화 또한 그러했다.
그것보다는 미룽이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부분이 더 중요했다. 분명히 우리가 기억하기로 몰랑이씨는 천계의 헤븐이란 국가에서 자라났다고 했는데. 그건 근대까지의 이야기였던걸까? 고대의 몰랑이씨는 대체 어땠고, 어떤 길을 걸어왔길래 유서 깊은 마계 인형이라는 소리를 듣는가?
“마계 인형이면 나랑 다를 바 없이 범죄 저지른 거 아니야? 호오박, 그럴 리는 없는데….”
왜 그러냐고 해도 동류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호박씨는 천장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났다.
“흠, 일단…딸기님은 몰랑이씨를 잘 아는 사람 위주로 탐방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꼬맹이들부터 뒤져볼까?”
그는 어차피 만나게 될 거 나중에 봐도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딸기님은 하이힐질을 잘하는 소위 빙썅이라 남편이라고 해도 잘 말해줄 수 없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이런 면에서는 호박씨가 유리했다.
“감감이님부터 만나보는 걸로.”
사전에 감감이님과의 약속은 잡아뒀다.
“감감! 오랜만입니다. 호박씨!”
그녀에게도 물론 38,900원짜리 패키지를 잔뜩 판 적이 있었다. 그래서 둘의 만남 시작은 이랬다.
“갑니다, 감감!”
퍽!
“으아악! 아프다, 아프다, 호오바악~?!”
“자, 다음 갑니다요!”
꼬집꼬집.
“으아악! 호박 살려~!”
마지막으로 곡괭이까지 당하고나서야 호박씨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감감이님이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호박씨께서는 신이 된 후로 그런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지 않으셨잖습니까? 왜 갑자기 38,900원짜리 패키지를 파신 겁니까? 그러면 신좌에서 강등되어 다시는 신이 못되지 않습니까?”
“윽! 그, 그건 말이지….”
삐질삐질.
급작스러운 질문에 호박씨의 뒤통수에서 땀이 흐르는 허상이 보였다. 감감이님은 나이가 얼마 안됐는데도 예리해도 너무 예리했다. 그래서 호박씨는 대충 둘러댈까 하다가, 감이 좋은 고로 불운의 신님들께 또 보고가 들어가겠다 싶어 그냥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실은 좀 협박이 들어오고 있어서….”
“네? 협박이요?! 전대 지성의 신 부부에게 대체 무슨 협박이 들어온단 거죠!”
“그……내가 좀 어두운 과거가 있었잖니.”
혐오스러웠다. 감감이는 대놓고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쪽이군요. 안 그래도 호박씨와 딸기님이 내려온 이후로 씨프 그룹 보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항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뜯어먹었던 부하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달까. 은원 관계를 끊고자 다소 위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호박.”
“저 그 때 당시에 사기 맞고 호박씨랑 절연할 뻔한 거 아시죠?”
“그래.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호박.”
감감이님은 현재 대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애에게까지 그 웃긴 농산물 패키지를 팔았으니(품질이야 최상이다만), 사람들의 원성이 아직까지 귓가에 맴돌았다.
“그럼 그 이후로는 다시 안 찾아오는 건가요, 그 사람들?”
“물론이다. 내 사정을 취조한 후로 죽음의 신님의 경찰관분들께서 날 보호해주고 계시다.”
“인연을 끊었군요. 두 분 다.”
그래, 이게 바로 손을 씻는다는 거였다. 감감이님은 솔직히 호박씨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노력하는 자세가 보였기에 그를 대하고 있는 거였다. 인연을 끊으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지만 말이다.
“호오박, 정말로 끔찍한 인연이었다. 인터뷰 시작해도 되겠니?”
“물론입니다. 감감! 어떤 걸 듣고 싶으십니까?”
“으음, 내가 좀 수상한 게 있어서 말이야. 인형 중에 유서 깊은 미룽 출신이 누군지 아나 싶어서.”
“앗, 미룽이요?”
현재 두 사람이 머물고 있는 곳은 마계 지향 국가 중 해안과 인접해 있는 사르타나라는 곳이었다. 미룽은 좀 내륙쪽이었는데 감감이님은 전생부터 쭉 해군만 해왔던 출신이라 모를 수도 있었다.
“으음, 감감. 잘 모르겠는데요. 전 해양국가인 곳만 좋아했거든요.”
“그럼 혹시 미룽 사람들에 대해 알 수 없을까?”
“아, 그건 제 동생인 밤밤이에게도 물어볼게요. 밤밤이는 무역학과라 아시다시피 발이 넓거든요.”
“아하! 그렇겠군, 호박. 그럼 밤밤이님에게도 물어보는 걸로 부탁해.”
귀엽게 생긴 주황색 호박 인형이 의자에서 통통 튀며 물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볼게. 이전에 내가 귀요미를 만났는데 말이야. 몰랑이씨가 이상한 허풍을 하더라고. 모든 신을 다 해봤다나 어쨌다나. 혹시 전생에 기억이 있는지 싶어서 물었어. 내가 그 분께서 예술의 신을 한 기억까지는 있거든. 그런데 그 전의 행적은 잘 모르겠어서 말이야.”
“아, 몰랑이씨는 역대 음악의 신, 역대 예술의 신을 한 경험이 있으시죠. 그렇네요. 확실히 이상합니다. 그렇게 뛰어난 분이 어디서 퐁, 하고 튀어나오셨는지. 혹시 호박씨께서는 예술의 신일 때의 몰랑이씨를 기억하십니까?”
“알다마다! 내 귀요미에게는 걔가 신생아라서 안 얘기해줬지만 말이야, 진짜 예술의 신 중의 신은 몰랑이씨였어. 그 분이 맨날 몰몰랑-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말이지. 집념 있는 인형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였단다. 난 몰랑이씨가 그리고 의술에 그렇게 정통한 줄 몰랐어. 맨날 슈퍼마켓에서 딸기잼 보면 흐어억, 몰몰랑~ 딸기잼이 무섭다아~하는데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헉, 그런 모습을 보이셨다고요? 저에게는 한 번도 그런 헐렁한 모습 보이신 적 없으십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원하고 보고 싶은 모습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보여줬잖니.”
“그건……그렇군요.”
호박씨는 몰랑이씨가 무서운 인형임을 알았다. 그래서 절대 처음 만났을 때도 얕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정반대인 땡땡이님보다도 더 경계해야 할 인형이 아닐까? 자신을 천대하고 멸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는 저에게 호의를 보여줬다.
범죄자들은 참고로 은혜는 10배로 갚고 원한은 100배로 갚는 이들이다. 손을 씻기로 맹세했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는터라, 그는 그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몰랑이씨는 가는 곳마다 인기였고, 그래서 사실 그와 함께 있으면 득도 많이 봤다. 그래서인가, 이런 귀찮은 임무를 떠맡았는데도 그에 대해 알고만 싶었다.
감감이가 말했다.
“저 궁금합니다. 예술의 신인 몰랑이씨는 어떠셨습니까?”
“장난 아니었지. 사실 예술의 신님들은 우리 같은 범죄자 출신 신들을 혐오하시는데 그럴까봐 걱정됐다. 그런데 몰랑이씨만은 달랐다. 우리를 따스한 햇빛처럼 대해줘서……나는 그 녀석을 라이벌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호오~박은 그래서 전대 지성의 신님을 이겼으면서도 바로 지성의 신님이 안되고 악마신을 해봤지 않냐. 잠깐이지만 말이다.”
“아, 맞죠. 악마신이셨죠?”
“맞다. 악마신들은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는 무서운 신들이다. 측간신분들도 무섭지만, 그 분들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될 분들이야. 그런데 나는 마계의 악마신님을 해서 가뜩이나 무섭다는 이미지가 더 굳어져 버렸다. 테스트로 특산물까지 살려놨는데.”
악마신.
그걸 하기 위해서 그는 미친 듯이 흥미 없던 일을 해야만 했다.
임무, 미친 듯이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켜 보기
임무, 악마의 본질을 이해하고 논문을 일주일 안에 써오기
임무, 악마와 같은 살인자 범죄자들을 완벽히 이해하고 기한까지 500명 이상 잡아들이기
임무, 쓰레기 같은 사람들을 50명 이상 교화하기
그 외 등등.
그것 때문에 몇 년이 걸렸더라? 한, 5년?
딸기님은 그런 호박씨를 보고는 미친 재능이라고 불렀다. 다른 신들마저 그를 멸시하지만 그 재능은 무시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성의 신이 좋아서 얼른 최소 임기를 채우자마자 가버렸다.
아무튼 호박씨는 빠직 마크를 내보냈다.
“그 놈 때문에 내가 얼마나 5년간 빡세게 살아야 했는 줄 알아, 호박? 그런데 그 말대로 하니 사람들이 인정하더라. 와, 내 평생 그렇게 무서운 놈은 처음이었다, 호박. 이미 지성의 신 전으로 다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는데……그 녀석은 더 여러 신을 해야 한다고 악마신들 임기 끝나고 나올 때 조언까지 했다.”
“와, 대단하십니다. 예술의 신이셨으니 저도 기억합니다. 그 분께서는 의사로서 살린 인형이 무수했습니다. 외과 의사이시기도 했지만 본래 전공은 정신과를 제일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무려 조현병이 왔는데도 마도공학과 상담, 약물 치료로 고쳤다고 하시더군요.”
“맞다, 호박. 그 녀석은 무패의 변호사이기도 했다. 국선 변호사도 들어보니 엄청 많이 했다고 하던데. 왜 대통령은 도전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 보통 뭐든 신을 하려면 그쪽 길의 직업은 다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호박씨가 슬쩍 낚시바늘을 세우자 감감이님이 미끼를 턱 물었다.
“아, 그거 말인데 불운의 신님께서 몰랑이씨는 절대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뭐더라, 음악의 신에서 강등된 이유도 다른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뭐어?! 호오박, 그 녀석이 사람을 해쳤다고?!”
그럴 리가 없다. 자신과 정반대는 아니어도 동류의 느낌은 분명 아니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사실 몰랑이씨가 강등되었을 때도 몰래 카레를 먹다 강등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신이 되면 오*기 카레나 바*드 카레는 못 먹는 법이다. 왜냐하면 카레 먹다가 순식간에 미각레벨이 더 올라가 버리기 때문이다. 너무 자극적이라. 물론, 단순히 카레*왕 보다 별로여서는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엉뚱한 면이 있는 몰랑이씨도 절대 그런 짓은 평소에 안했다. 다들 신을 너무 오래 해서 하기 싫은가보다 하고 넘어가긴 했다.
그게 아니었다고?
호박 안의 몰랑이씨의 이미지가 살짝 깨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그를 굳게 믿었다.
“누굴 해친 거야? 대체.”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다만 몰랑이씨는 해치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에엥? 최근 일?”
“네. 최근 일이라네요. 그런데 과거에 있던 행적도 들켜서 강등되었다고 해요.”
미친. 이럴 수가. 여기까지 들은 호박씨가 생각했다. 과연 딸기님이 여기까지 알아냈을까? 그와 그녀는 일대기를 쓰기 전까지 절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는 두 사람이 쓴 일대기를 합치기 전까지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까지 그녀가 알아냈을 거라고 여겼다.
호박씨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