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아들과 옥스퍼드에 가서 듣게 된 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갈 때면 되도록 그 나라의 대학을 일정에 포함시킨다. 일본에서는 교토대학교를, 독일에서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를 방문했었다. 그리고 영국에서도 당연히 대학을 찾아갔다. 난 평소 문구점에서 이 대학의 이름이 적힌 공책을 자주 사곤 한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옥스퍼드.


이번 옥스퍼드 여행은 사실 아이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해주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 깔려있다. 한 학년에 3반 밖에 없는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인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학원의 방학 특강 대신 대학 투어를 선택했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줄로만 알았던 옥스퍼드 대학교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기도 했다. 대학 내 건축물들은 마치 문화 유산처럼 고풍스럽고 웅장했으며 학교가 어찌나 큰지 하나의 마을 같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공 외에도 ‘컬리지’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해리포터 촬영지로 유명한 ‘크라이스트 처치’도 여러 컬리지 중 하나다. 컬리지는 공동체나 커뮤니티 같은 것으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교류하고 생활하며 다양한 경험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 대학이 중시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아닌 교류와 네트워크임을 알 수 있었다.


옥스퍼드에서 가장 설렜던 곳은 보들리안 도서관이다. 이곳은 옥스퍼드의 중앙도서관으로 1610년부터 영국에서 출판되는 모든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학문의 산실이 바로 이곳인 것 같아 경외심이 들었다.


사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예약했던 ‘크라이스트 처치’도 기억에 남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무 곳이나 가면 돼.”라는 문장을 가슴에 오랫동안 품게 만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한다. 이 책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그레이트 홀에 들어서서 성화가 그려져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속에 숨은그림찾기처럼 작게 그려져 있는 앨리스를 찾았다. 마침내 발견했을 때 꼭 내 안의 앨리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투어 내내 가이드 가까이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설명을 들었던 나와 남편과는 달리 아이는 그저 무심하게 돌아다녔다. 이날 오전에 코츠월드를 다녀왔는데 오히려 그때가 더 밝고 신나 보였다. 아이는 "숙소 언제 들어가요?"를 몇 번이나 물으며 M&S 마트에서 산 냉동 라자냐와 스낵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고 싶다고 했다.


캠퍼스를 거닐며 아이에게 "이런 학교 다니면 어떨까?"라고 넌지시 물었더니 퉁명스럽게 "빡셀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며 내가 기대한 답을 끝내 주지 않았다. 내심 서운했지만 이것 또한 나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여행의 작은 부분이라도 아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옥스퍼드 얘기를 다시 꺼냈을 때 아이는 말했다.

“가보니 이런 데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긴 했어요. 그런데 벽이 높다는 것도 느꼈어요. 엄마, 인생은 갈수록 벽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반면 남편은 옥스퍼드 투어 내내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 다니면 진짜 공부할 맛이 날 것 같아.“

대학 졸업한 지 20년도 훌쩍 넘은 남편이 그토록 관심을 보이며 흥분해 있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마음에 학문에 대한 동경과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외였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교대에 들어가며 마주한 현실은 많이 아쉬웠다. 옥스퍼드에 와보니 내가 꿈꿨던 학문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이곳은 캠퍼스 구석구석 깊은 대화와 생각들이 흐르는 곳이었다. 그동안 해소되지 못한 갈증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옥스퍼드 거리에는 음악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중 하나인 바흐의 파르티타 연주가 다음 주에 열린다고 하는데 좀 더 머물며 옥스퍼드의 일상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 옥스퍼드 보들리안 도서관 광장에서 라틴어로 ‘SCHOLA MVSICAE’(음악 학교)라고 쓰인 문 앞을 지나던 남편이 나를 부르더니 “여기 서봐.”라며 먼저 사진을 찍어줬다. 음악은 내 삶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평소 남편은 그에 대해 무덤덤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날 남편의 사소한 행동에서 내 취향과 관심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한 사람으로서 나를 봐주는 그의 시선이 고마웠다.


옥스퍼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알아주고 함께 나누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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