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5학년 아들과 영국 여행을 다녀왔다. 영국 여행의 진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과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될 수 있는 유용한 팁을 소개한다.
1. 여행 일정에 아이 의견 반영하기 : 물어볼 땐 객관식으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아이의 의견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한다. 부모가 모든 일정을 짜고 아이는 그저 졸졸 따라다니기만 한다면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 뭐 하고 싶어?"라고 묻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몰라요"나 "아무거나" 같은 답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가고 싶은 장소, 먹고 싶은 음식, 보고 싶은 공연 등을 정할 때 서너 개 정도의 보기를 주어 객관식으로 선택하게 한다.
나는 영국에서 볼 뮤지컬을 정할 때 <위키드>, <빌리 엘리어트>, <레 미제라블> 등의 보기를 주고 관련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준 후 아이가 직접 선택하도록 했다. 아이는 <위키드>를 골랐고, 본인이 고른 공연이라 더욱 기대하며 즐길 수 있었다. 작품의 인지도나 인기보다 아이의 선택을 고려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2. 구글어스로 미리 떠나보고 여행지도 신문 만들기: 설명은 한 줄만!
여행 전에 방문할 도시의 지도를 크게 출력하고 우리가 갈 곳을 별표로 표시해 본다. 그리고 각 장소에 대해 한두 줄로 간단히 설명을 적게 한다. 너무 길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트라팔가 광장: 1805년 트라팔가 해전을 기념해 만든 곳. 넬슨 장군 동상." 이 정도로만 적는다.
또한 구글어스로 가기로 한 장소나 숙소 주변을 살펴보게 하면 곧 여행을 떠난다는 게 훨씬 실감나고 현지 지리 감각을 미리 익힐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 우리가 묵을 숙소 위치를 찾아보게 하고, 근처 환경은 어떤지, 어떤 편의시설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아이는 숙소 근처의 마트와 공원을 사전에 파악해 두었고, 여행 중에는 ‘호텔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마트 있어요’ 라며 뿌듯했고 ‘지도에서 봤던 하천이 여기였구나’ 라고 하며 길도 능숙하게 찾아갔다.
3. 공부 NO! 현지 서점 책 OK!
여행 갈 때 교과 문제집을 가져갈까 고민했지만, 결국 챙기지 않았다. 대신 다이어리와 읽을 책 두 권만 준비했다. 여행 첫날 런던의 서점에 들러 아이가 직접 책을 고르게 했고,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하는 책을 사주었다. 아이는 그래픽 노블과 평소 좋아하는 작가인 데이비드 윌리엄스의 책을 골랐다.
문제집을 안 푸는 대신 매일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도록 했지만, 날마다 쓰지는 못했다. 며칠 밀렸다 싶으면 오전 시간을 숙소에서 보내며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아이만 시키지 않고 나도 같이 했다. 숙소의 통창 밖으로 이층 버스가 오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한 시간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던 순간은 뜻밖에도 여행의 충만함을 더해 주었다.
일기는 하루에 한두 쪽씩 쓰도록 했고, 아이는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며 테이트 모던 6층 레스토랑에서 세인트폴 성당을 그리기도 했다. 여행 첫날 워터스톤스에서 산 두 권의 책은 여행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 날까지 모두 읽었다.
4. 아이에게 여행은 완전한 휴식이 아니다. 유튜브 시청 자유 허용!
매일 아이에게 자유시간을 줬다. 아이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마트에서 산 냉동 라자냐, 피자 등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고, 맵거나 짭짤한 맛의 스낵을 와그작 와그작 먹으며 유튜브 보는 것을 가장 즐거워했다.
아이에게 여행은 좋긴 하나 완전한 휴식은 아닌 듯하다. 여행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야 하므로 평소 지키던 규칙들을 느슨하게 풀어줬다. 원래는 금토일에 3시간 유튜브 시청을 허용하는데 여행 중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그날의 여행 일정이 길어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저녁 6시 전에 숙소에 들어가길 원했다. 여행에 대한 아이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일정과 휴식을 균형있게 배분하는 것이 좋다. 아이는 런던의 그 어느 곳을 갔을 때보다 유튜브를 볼 때 더 많이 깔깔댔다.
5. 여러 군데 많이 돌아다니지 않기. 한두 곳에서 오래 머물기!
평균적으로 여행 일정을 오전에 하나, 오후에 하나 잡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하루에 하나씩만 다녔다.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여러 곳 찍고 오는 여행은 하지 않았다. 그런 여행은 돌아와서도 기억에 많이 남지 않는다. 한 군데 가면 그곳에 오래 머물렀고, 미술관도 모든 작품을 보려는 욕심을 버리고 관심있는 작품이 있는 공간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본 전시는 내셔널 갤러리, 코톨드 갤러리, 테이트 모던 그리고 영국도서관이다. 우리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영국박물관을 과감히 포기하고, 그 옆에 영국도서관에서 하는 <도서관의 보물> 전시를 관람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친필 노트, 제인 오스틴 습작 노트, 모차르트, 슈베르트 친필 악보, 셰익스피어 희곡 초판본, 등 전시된 작품이 어마어마했다. 또한 영국 역사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는 영상도 상영해줘 여러모로 유익했다. 물론 가지 못한 장소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남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음 여행을 기약하면 된다.
6. 공원에서 여유로운 시간 보내기!
영국에는 공원이 많다. 돌이켜 보면 가장 좋았던 시간은 공원에서 느긋하게 보냈던 시간들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나무나 잔디밭만 있으면 그곳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휴식을 즐긴다. 여행을 가면 현지 사람들의 생활 모습 중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배우게 된다.
커다란 나무 아래 철퍼덕 앉아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고, 도시락을 먹고,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하늘도 보고, 바람도 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앞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지,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다. 공원에 가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하이드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켄우드 하우스의 공원, 리젠트 파크, 그리니치 파크 등 여러 공원을 방문했는데, 숙소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도 충분히 좋았다. 특히 좋았던 공원은 아침 산책을 했던 리젠트 파크였다. 부유한 동네라 그런지 공원이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조깅하는 런더너들을 보며 현지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켄우드 하우스의 공원도 잊지 못할 곳이다. 이곳의 넓은 잔디밭에서 아이는 현지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땀에 흠뻑 젖도록 신나게 축구를 하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돗자리에 누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여행의 여유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여행에서 중요한 건 유명한 곳을 많이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여유로운 일정을 가지며 아이가 주체적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면 아이가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될 거라 믿는다.
아이는 영국 여행을 마치고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1. 라면, 햇반을 많이 싸가라! 영국 음식이 다 맛있는 건 아니다. 가끔 아니 많이 한국 음식이 그리워진다. 라면과 햇반이 있으면 언제든 든든하다.
2. 엄마, 아빠 싸움을 대비해 귀마개를 가져가라! 여행하다 보면 부모님이 의견이 안 맞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귀마개가 필수다.
3. 공을 꼭 챙겨가라! 영국엔 축구할 만한 곳이 많지만, 막상 공을 사려면 어디서 파는지 찾기 어렵다. 축구 좋아하는 친구라면 미리 챙겨 가자.